최근 들어 뉴욕 월가에서는 ‘주가바닥론’에 대한 논쟁이 거세다. 일부에서는 미국 경기가 뚜렷하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들어 아직까지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주가바닥론에 힘이 실리고 있어 주목된다.최근 들어 주가바닥론이 강하게 대두되는 것은 무엇보다 시장움직임이 전형적인 ‘트레이더 장세’(Trader’s Market)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트레이더 장세란 주가변동성이 심한 점을 겨냥해 매수와 매도 공방을 치열하게 전개해 투기적인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시장을 말한다.8월 들어 미국 증시는 하루 주가변동폭(다우지수 기준)이 300포인트나 웃돌았다. 정상적인 시장에서 40억주에 불과하던 공매도 거래량도 70억주에 달했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트레이더 장세가 나타날 때는 미국 증시가 추세적으로 전환된 적이 많았다. 이번에는 ‘하락’에서 ‘상승’으로 추세전환을 의미한다.그동안 미국 증시를 짓눌려 왔던 3대 악재들도 점차 해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14일에 끝난 미국 기업들의 재무제표 인증에서는 대상 기업의 약 93%가 서약했다. 마감시한이 촉박해 부진할 것이라는 종전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다. 우려했던 대대적인 회계수치 조정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일부에서는 이번 서약결과를 추가적인 주가하락을 방지하는 정도로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하고 있으나 분식회계 문제는 더 이상 악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뉴욕 월가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설령 분식회계 기업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미미할 것이라는 게 시장참여자들의 판단이다.우루과이, 브라질에 금융지원이 잇달으면서 최악의 상황에 몰렸던 중남미사태도 어느 정도 진정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 금융기관들은 중남미 지역에 대한 대출로 중남미사태 진전 여부에 따라 부실채권이 우려됐었다.중남미사태가 불거진 이후 미국 증시에서 금융주의 움직임을 보면 중남미사태 진전 여부에 따라 등락이 심했다. 다시 말해 중남미사태가 악화될수록 뉴욕 증시는 금융주를 중심으로 다우지수가 크게 하락했다. 반대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 이후 중남미사태가 진정되면서 금융주를 중심으로 뉴욕 증시가 안정된 움직임을 보였다.이 밖에 사실상 마무리된 2/4분기 미국 기업들의 실적도 예상외로 괜찮다. 지금까지 발표된 미국 기업들의 62%가 당초 예상 선을 웃돌았다. 비록 완전치는 않지만 미 달러화 가치도 안정세를 찾고 있어 최소한 미국 증시 내에서 자금이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이중침체 여부 찬반논쟁 뜨거워문제는 미국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 주가바닥론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판단요소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 증시의 최대 재료는 신뢰문제에서 경기문제로 넘어간 상태다. 갈수록 미국 증시참여자들의 관심은 ‘과연 미국 경기가 이중침체(Double Dip)에 빠지지 않고 언제 회복될 수 있는가’에 쏠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현재 미국 경기의 이중침체에 대한 시각은 두 가지다. 여전히 미국 경제의 여건이 괜찮다는 ‘미국판 펀더멘털론’(Fundamentals)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부시 경제각료들이 주축이 된 낙관론자들이다. 반면 민주당을 중심으로 비관론자들은 이미 미국 경제가 이중침체에 빠져 있다고 판단하고 부시 행정부가 낙관론에 젖어 정책실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물론 이 같은 인식차에 있어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한 정치적인 색채가 짚게 깔려 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측면이 많지만 뉴욕 월가의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로 나뉘어 있는 상태다.이번에 이중침체를 우려하는 가장 큰 배경에는 주가하락에 따른 역자산효과(Anti Wealth Effect)다. 아직까지 이번 경기사이클의 저점이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3개월 주가평균상승률, 경험적 확률, 채권시장에서 형성되는 장ㆍ단기 금리스프레드 등 미국 경기를 파악하는 방법을 종합해 보면 이번 경기는 올 1/4분기를 저점으로 회복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추정된다.과거 회복기와 다른 것은 이번 경기회복은 수출과 기업의 설비투자가 아니라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주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의 효과라 하는 것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경우 소비성향이 높은 자산소득이 늘어 민간소비가 증대되고 이를 통해 경기가 회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하락되면 역자산효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중침체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해된다.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주가가 20% 하락하면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까지 미국 주가(3대 지수 거래량 가중평균)는 올 최고치에 비해 약 30% 정도 하락했다. FRB가 추정한 역자산 계수를 감안한다면 그동안 주가하락으로 약 0.7~0.8%포인트 성장둔화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다행히 올 상반기 성장률이 3.5%에 달해 비록 주가하락에 따른 역자산효과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미국 경제성장률은 잠재수준을 웃돌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중침체에 빠지느냐 여부의 임계수준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낙관론을 펴온 부시 행정부 경제팀들이 최근 들어 한발 후퇴해 경기진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FRB는 향후 통화정책 기조를 ‘중립’에서 ‘경기둔화 우려-완화’ 쪽으로 선회했다.부시 행정부도 최근 열린 와코 경제포럼에서 토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조만간 경기진작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별히 이번 대책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부시 행정부가 경기진작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증시안정을 위한 대책 이외에는 별다른 정책수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조만간 발표될 부시 행정부의 경기진작책은 각종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방안과 그동안 투자자들의 주식투자를 가로막았던 자본소득세와 주식배당에 대한 이중과세를 폐지하는 방안 등 증시안정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정책대응으로 미국 경기의 이중침체를 방지하고 회복세가 언제 가시화되느냐에 따라 주가바닥론의 진위 여부가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현재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 증시가 ‘상승’이든 ‘추가 하락’이든 어느 한쪽으로 방향성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성급한 판단이 될지 모르나 이제 미국 증시는 바닥을 지나 추세적으로 상승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schan@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