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빙하기’에 발목을 잡힌 일본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마음대로 열어젖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업종은 100엔숍을 중심으로 한 초염가 상품점이다. 경기 호전 소식에 고무돼 시장흐름을 잘못 읽은 상당수 업종이 염가상품 판매를 중지하고 중ㆍ고가 전략으로 선회했지만 소비불황의 찬바람은 이들의 시도를 보기 좋게 원점으로 돌렸다.평일 반액판매 전략을 포기하고 지난 2월 햄버거가격을 80엔으로 올렸던 맥도널드가 불과 6개월 만인 최근 59엔으로 가격을 대폭 낮추고 ‘초염가’로 복귀한 것은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유통업체들의 가격파괴싸움은 그러나 초염가 상품의 대명사로 불리는 100엔 균일 상품의 아성에 한층 강력한 경쟁력으로 무장한 상품을 등장시켜 향후 판도변화가 주목되고 있다. 주인공은 24시간 연중무휴의 영업방식과 박리다매 전략으로 일본 유통업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할인점 ‘돈키호테’다.돈키호테는 100엔 균일 상품점의 돌풍을 차단하고, 소비자들의 발길을 잡아끌기 위한 고감도 미끼상품 전략의 일환으로 50엔 상품 코너를 8월 말부터 기존 매장 내 열기로 했다. 50엔 상품코너가 설치될 매장은 도쿄 등 수도권 일대와 지방 대도시의 점포 등 60여 곳.돈키호테는 매장마다 약 2평 크기의 50엔 코너를 신설, 여기에 400여 종의 상품을 갖춰놓기로 했다. 50엔 코너에 집중 투입할 상품은 주방용품과 미용 관련 소도구 및 위생용품, 선글라스, 전기용품, 자명종 등 구조가 간단하면서도 고장이 잦지 않은 것들로 정했다.상품은 약 90%를 중국에서 들여오기로 하고 이를 위해 중국 상하이에 지난 8월1일 대형 물류창고를 확보해 놓았다. 현재 중국에서 직수입하는 상품이 전체 매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지만 50엔 상품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30%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경쟁자 출현 가능성 희박 예상돈키호테의 50엔 상품사업은 여러 면에서 일본 유통업계와 전문가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고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지만 100엔숍도 채산성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판에 50엔짜리 상품을 팔아 어쩌자는 것인지가 첫 번째 물음이다. 또 유통업체간의 가격싸움이 50엔대까지 내려온 이상 앞으로 돈키호테의 뒤를 따를 경쟁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인가 역시 의문이다.돈키호테측은 50엔 상품사업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50엔 판매의 대상으로 잡고 있는 상품의 마진율이 지금까지 너무 높았다며 소비자들에 대한 이익환원, 즉 서비스 차원에서 50엔 상품을 공급하겠다는 계산이다.다른 100엔숍들과 달리 50엔 판매의 대상이 되는 상품에서는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고객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여 다른 상품에서 보충하는 전략을 밀고나가겠다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50엔 상품사업 결심을 굳히기 전 100엔숍과의 경쟁을 위해 일부 점포에서 최저 85엔짜리의 염가상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그러나 성과는 예상보다 부진, 파격적이고도 획기적인 초염가 전략을 동원하지 않는 한 소비자들은 매장선택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돈키호테측은 알아냈다.돈키호테의 선례를 좇아 50엔 상품사업에 뛰어들 경쟁자의 출현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에 박리다매로 무장한 돈키호테처럼 염가상품 전문업체의 인상을 단시간에 심어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조달선 확보와 품질보장 등 여러 조건을 감안할 때 50엔 상품은 한계를 안고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59엔짜리 햄버거에 이은 50엔짜리 상품의 등장은 일본의 만성적 소비불황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나 다름없어 출현 사실 자체가 일본경제의 자존심을 또 한 번 깎아내린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