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한금융그룹은 지난 20년 동안 얼굴색 역할을 해 온 초록색을 버리고 블루를 채택했다. 로고 역시 파란색의 공 형태에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황금색 무늬를 넣은 모양을 선택했다. 한빛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우리금융그룹 역시 지난 5월 기업이미지(CIㆍCorporate Identity) 교체작업을 했다. 특히 우리금융은 이미지 색깔을 빨간색에서 프렌치 블루로 변경했다. 롯데백화점도 오랜 기간 고수해 온 로고(L자가 3개 겹친 모양)를 버리고 L자를 단순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도록 디자인한 새 로고로 ‘얼굴’을 교체했고, 신도리코 역시 최근 새로운 CI를 선보였다.국내 기업들 사이에 회사이름이나 로고 등을 바꾸는 CI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권과 건설업체, 정보통신회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CI를 발표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벤처기업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최근 들어서는 대기업들도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의 경우 올 들어 회사이름을 바꾼 업체가 지난해에 비해 무려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금융권의 경우 신한금융과 우리금융 이외에 기업은행도 ‘파인뱅크(Fine Bank)’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은행이름은 그대로 두고 ‘파인뱅크’라는 이미지 네임(Image Name)을 별도로 만들어 ‘파인뱅크 기업은행’이미지를 심고 있다.주택은행과 합병한 국민은행 역시 오는 10월 새 CI를 선보일 예정이다. 상징색을 초록색에서 회색으로 바꾸고 일선 지점의 간판도 모두 교체할 예정이다. 또 국제화재해상보험과 대한재보험도 그린화재해상보험과 코리안리재보험으로 새롭게 태어나며 대대적인 CI 교체작업을 벌였다.건설사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LG건설의 경우 아파트 브랜드 ‘LG빌리지’에 이어 주상복합아파트에 에클라트(ECLAT)를 선보였다. 또 SK건설은 오피스텔과 주상복합아파트 등에 사용할 새 브랜드 ‘SK HUB’를 만들었다. 삼성중공업 역시 아파트와 주상복합 브랜드인 쉐르빌 외에 별도로 주거형 오피스텔에 ‘퍼스티’(FIRSTY)라는 새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올 들어 상장사 중 31개사 이름 바꿔최근 증권거래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상장회사 가운데 올 들어 8월까지 이름을 바꾼 회사가 무려 31개사(월 평균 약 4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상장사가 678개사임을 감안할 때 5% 가까운 회사가 이름을 바꾼 셈이다. 이는 지난해 회사이름을 바꾼 업체가 35개(월 평균 약 3개사)였던 것에 비해서도 크게 늘어난 수치다.상장사 가운데 이름을 바꾸며 대대적인 CI 작업을 벌인 대표적 회사로는 KT와 POSCO(포스코)를 들 수 있다. KT의 경우 지난 4월 한국전기통신공사라는 다소 긴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고, 포스코 역시 4월 기존의 포항종합제철이 주는 지역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출발을 다짐했다. 또 리젠트증권이 브릿지증권, 굿모닝증권이 굿모닝신한증권, 삼미특수강이 비앤지스틸, 창원기화기공업이 모토닉으로 각각 회사이름을 변경하며 새 로고를 선보였다.코스닥 등록기업들의 변신은 더욱 눈에 두드러진다. 올 들어서만 8월까지 무려 41개(월 평균 5개사) 회사가 새로운 이름을 채택하는 등 변화에 적극적이다. 이는 지난해의 39건(월 평균 3.3개사)을 넘어선 것으로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60여개 회사가 간판을 바꿔달 것으로 전망된다.구체적으로는 고려특수사료가 코스프, 미래케이블TV가 큐릭스, 태인테크가 파루로 각각 이름을 바꾸는 등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또 한국통신하이텔이 KTH, 한국해저통신이 케이티서브마린으로 변경했고, 비테크놀러지는 엔플렉스로 새출발했다. 코네스 역시 에듀박스로 이름을 바꾸고 거듭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상장기업과 코스닥 등록기업이 잇달아 이름을 변경하면서 생소한 이름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도 적지 않다. 특히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하루 걸러 하나씩 이름이 바뀐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이에 따라 옛 회사이름이 헷갈린 나머지 증권사 등에는 이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증권사에 전화로 매매주문을 할 때 실수를 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일부 기업의 경우 바뀐 영문이름이 다른 회사와 혼동되는 경우도 있어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불평까지 나오고 있다.많은 기업들이 CI 작업에 적극적이지만 일부 기업은 여전히 예전 이름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대가 바뀌고 주력업종이 크게 변했지만 기존의 전통을 그대로 살린다는 차원에서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이다.T사의 경우 한때 계열사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CI를 생각했지만 지금은 흐지부지된 상태다. J사 역시 로고 등은 새로 만들었지만 회사이름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오너의 생각이라 ‘옛 것’과 ‘새로운 것’을 적절히 조화시켜 사용하고 있다.하지만 앞으로도 기업들의 사명 변경 트렌드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CI 전문업체인 인피니트 고재호 부사장은 “세계경제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에서 통할 때 유리한 방향으로 회사이름이나 로고를 바꾸는 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요즘은 CEO들도 이에 대한 필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CI 교체비용은 얼마?회사의 이름이나 로고 등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무엇을 바꾸고 어느 회사에 맡기느냐에 따라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예컨대 회사이름만 바꿀 경우 비용은 비교적 적게 든다. 수십만원으로 새로운 이름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CI업체의 규모가 크고 의뢰한 기업이 대기업일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이름 하나에 3,000만~4,000만원이 들기도 한다.회사이름을 형상화하는 로고작업은 이름을 짓는 것에 비해 복잡하다. 디자이너들이 수백장의 시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들고, 작업 자체도 상당히 고되다. 이에 따라 국내 톱클래스 CI업체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억대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도 있다.지금까지 국내에서 CI 작업을 하면서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한 케이스로는 조흥은행을 들 수 있다. 조흥은행은 전면적인 CI 작업을 하면서 5억원을 썼다. 다른 금융기관들의 CI 교체 비용 역시 거의 5억원 선에 육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경우 기본적인 로고 이외에 각 지점의 간판 등 일이 많아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만약 외국의 유명업체에 의뢰하는 경우는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몇 년 전 미국 업체에 CI 작업을 맡겼던 삼성과 LG는 20억원 이상을 지불했다는 후문이다.하지만 이런 것들은 약과다. 전국에 수백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은행 등은 각 지점의 간판을 교체하는 데만 200억원 이상을 써야 한다. 정작 ‘큰 돈’이 들어가는 곳은 따로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