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한 건으로 600억원을 번다. 게다가 원가도 극히 낮고 양질의 노동력만으로 이런 수익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하이닉스가 지난해 봄 12억5,000만달러의 해외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할 때 발행 주간사였던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SSB)가 받은 수수료는 무려 5,000만달러(약 650억원)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금융(Investment Banking)이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이렇게 투자금융이 뜨는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부채비율이 줄어든다는 것은 대출을 ‘파는’ 은행 입장에서는 영 물건이 안 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대기업 대출은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여 지난 4월에는 전달에 비해 2,187억원 줄었고, 5월에는 3,793억원, 6월에는 1조2,173억원이 줄었다.기업대출 감소는 우량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잘 갖다 쓰지 않으려 하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97년 이후 대기업 여신에서 엄청난 부실이 발생하면서 톡톡히 쓴맛을 본 은행들이 ‘웬만큼 우량한 데 아니면 기업에는 가급적 팔지 말자’(기업대출을 줄인다)는 기조로 돌아선 것도 한 이유다. 예전에는 기업금융에 강한 은행과 개인고객을 주로 상대하는 소매금융에 강한 은행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느 은행 구분할 것 없이 소매금융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기업금융으로 특화됐던 우리ㆍ조흥ㆍ외환은행 등은 2년 전만 해도 전체 대출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도 미치지 않았으나 지금은 40%를 훌쩍 넘기고 있다.하지만 가계대출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데 은행 관계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이 은행과 저축은행 등 41개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출태도지수(DI)에 따르면 이런 상황이 잘 드러난다. 가계주택담보대출 DI는 지난 1/4분기 19에서 2/4분기 -17로 돌아선 데 이어 3분기에도 -14로 나타났다. DI는 대출태도를 지수화한 것. -100이면 대출 심사를 매우 엄격히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100이면 적극적으로 대출세일즈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더구나 최근 부동산값 버블이 꺼질 경우 이처럼 크게 늘어난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충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하나은행은 아파트 담보 대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연체율과 경락률(주택가격 대비 경매가격) 등을 분석해 전국을 3개군으로 나눈 뒤 금리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이 은행은 부동산 버블이 앞으로 수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해 부동산 담보 비중을 낮추기 위해 담보비율에 따른 금리 차등폭도 확대하고 있다.금융지주사 되면 투자업무 활성화될 듯이 같은 ‘진퇴양난’ 상황을 맞아 최근 은행 경영진들은 투자금융 업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새로 출범한 굿모닝신한증권과 같이 하나의 금융지주회사 아래 증권사와 은행의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지면서 투자금융에 쏠리는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은행은 높은 신용도와 자금력이 있고, 증권사는 증권 발행ㆍ인수를 할 수 있는 라이선스가 있어 양자가 결합하면 투자은행 업무가 한결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전통적으로 은행의 투자금융은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강한 편이다. 이는 도로나 항구, 철도 건설과 같이 대규모 자금조달이 필요한 SOC에 소요되는 비용을 조달하는 것. 안정된 수익이 발생하는 편이지만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컨소시엄 형태로 여러 금융사가 동시에 참여하고, 또 정부의 개발계획에 따라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발굴하기는 애초에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다. 또 조흥은행 투자금융부 관계자는 “최근 참여 금융사가 늘면서 수수료가 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따라서 다양한 투자금융기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지난해 UBS컨소시엄이 해태제과를 4,150억원에 인수할 때 조흥은행을 중심으로 한 국내 채권단이 2,900억원을 대출했다. 차입매수(LBOㆍLeveraged Buy Out)로 불리는 기법으로, 회사를 인수할 때 현금을 조금만 갖고 나머지는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는 것. 은행 입장에서는 출자전환과 대출을 섞으면 이자 수익, 자본이득, 수수료까지 동시에 벌어들일 수 있어 투자금융 업무 중에서도 가장 수익성이 높다.최근 미국 투자그룹인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이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금호산업 타이어사업부문 인수도 올해 손꼽히는 빅딜이다. 인수금액은 1조5,000억원 정도로 예상되는데 이 중에서 70% 정도를 국내 은행에서 차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조흥은행, 국민은행 등이 주도하고 있다.8월 초 하나은행은 부동산 투자업체 로담코아시아가 동아시티백화점을 인수하고 이 지역에 쇼핑몰 건설사업을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교보생명과 함께 주간사로 참여, 전체 소요자금 1,800억원 중 70%를 조달했다. 이 밖에도 M&A, 부동산개발 프로젝트, 벤처투자 등도 은행권의 투자금융부서가 하는 업무.옛 장기신용은행의 전통이 남아 있는 국민은행은 높은 은행신용도를 바탕으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다양한 업무에 골고루 진출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투자금융업무를 시작했고 M&A쪽이 강한 편. 조흥은행은 은행권 중에서는 한발 앞서 회계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인력을 영입하는 등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 투자금융 부서를 분사해 아예 투자은행으로 만들 계획도 거론되고 있다. 한빛은행은 다른 은행들이 투자금융팀 부서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아예 흩어져 있는 관련 업무 부서를 모아 종합금융단을 만들었다.일부 은행은 전문인력을 영입하기도 하지만 투자금융부서 인력을 은행 내에서 공모를 하는 경우가 아직 대부분이다. 1인당 생산성이 어느 부서보다 높지만 아직 은행 내에 성과급제가 자리잡지 못해 보상은 다른 은행원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은행 내 인력공모를 실시하면 경쟁이 치열해 투자금융의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이렇듯 투자금융이 강조되고 있으나 은행의 캐시카우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국민은행 윤원철 투자금융팀장은 “은행 전체 대출자산 중 투자금융은 1조원 가량으로 비중이 매우 낮다”면서 “은행의 수익원 다양화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손색이 없는 방안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주요 수익원이나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투자금융을 강조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고 있다. 한 은행이 새로운 영업이나 상품을 개발해 재미를 보면 죄다 따라하거나 상품을 베끼고 있어 경쟁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주택담보대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소매금융 업무를 개척하기도 한다. 최근 씨티ㆍ신한ㆍ국민ㆍ한미ㆍ은행 등이 고금리 소액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대금업 회사를 차렸거나 만들려고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은행이 웬 고리대금업이냐’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설 은행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