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회사와 음료회사의 관계는 그다지 좋다고 보기 어렵다. 적어도 어린이 고객이 관련된 시장을 놓고 본다면 더욱 그렇다. 같은 고객을 놓고 경합관계에 처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코 뭍은 돈 몇 푼으로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사야 할 상황이라면 대다수의 어린이들은 과자와 음료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그러나 일본 식품시장에서는 최근 제과회사와 음료회사의 공생(共生)이 화젯거리의 하나로 떠올랐다. 같은 상표를 음료와 제과회사가 각기 다른 상품에 공동으로 쓰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서다.두 업종간의 공생은 청량음료에서 인기 상품으로 탄탄한 입지를 굳힌 상표(브랜드)를 제과업계가 초콜릿, 캔디 등의 과자류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스포츠음료의 빅 히트 상품 ‘123’ 브랜드를 이용해 ‘123’ 캔디를 내놓는 식이다.과자업계 1위 메이커인 롯데는 술ㆍ음료메이커인 산토리의 인기 상품명 7개를 빌려 초콜릿 등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봄부터 본격적으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한여름에 일부를 더 추가했다. 산토리로부터 빌린 브랜드는 건강음료 ‘DAKARA’, 주스의 ‘낫쌍’, 레몬음료 ‘C.C 레몬’ 등이다. 한결같이 일본 음료시장에서 정상을 달리는 브랜드들이며 경쟁업체들로부터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인정받고 있는 것들이다.롯데는 음료브랜드를 과자에 사용한 이유와 관련, 소비자들에게 이미 친숙한 브랜드를 앞세워 신제품을 순조롭게 시장에 침투시키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쟁회사들이 철옹성을 구축해 놓은 시장에 무명의 브랜드로 도전하는 것보다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같은 회사에서도 수백종의 제품을 내놓고 있는 제과회사의 특성에 비춰볼 때 음료브랜드로 포장한 제품은 기존 자사 제품과의 충돌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롯데는 밝히고 있다.음료회사와 손잡은 것은 롯데뿐만이 아니다. 메이지제과는 미국의 코카콜라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일본 코카콜라의 우유음료 ‘칼-킹’ 브랜드를 캔디와 과자 등에 사용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미국 넘버원의 음료회사와 일본 대형 과자회사가 호흡을 맞춘 사례라며 미ㆍ일연합군이 탄생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시장 관련 정보 상호교환해 체크전일본제과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과자시장 규모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출산 기피로 과자를 먹어줄 최대 고객인 어린이들의 절대수가 감소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연간 약 3조5,000억엔에 달했던 과자 시장은 2001년의 경우 3조2,000억엔 수준으로 오그라들었다.사정이 이러니 과자회사들은 어깨가 처지고 배짱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비를 넉넉히 쓸 수도 없고, 마케팅 비용을 펑펑 쏟아붓기도 힘들다. 음료회사들의 빅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사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신제품 투입에 따른 비용과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한편 기존 음료브랜드의 등에 업혀 판로를 손쉽게 넓혀 보자는 것이다. 음료브랜드는 과자와 마찬가지로 맛있는 ‘먹거리’라는 인식이 박혀 있으므로 갖다 쓰기도 수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하지만 두 업종간의 공생이 모든 면에서 수월한 것은 아니다. 음료회사가 무턱대고 브랜드를 빌려주는 것도 아니다. 같은 브랜드를 쓰는 이상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사고는 다른 쪽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양측은 수시로 소비자 불만이나 사고, 시장 관련 정보를 상호교환하며 서로를 면밀히 체크하고 있다. 상대방 회사가 우수한 제품,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무언의 자극을 주고 있는 셈이다.UFJ연구소의 사사키 가나 주임연구원은 “브랜드사용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은 적을지 모르지만 과자회사측에는 안전운행을 보장하고 있다”며 불황한파가 거세질수록 공생방식은 인기를 끌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양승득 한국경제·도쿄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