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의 우열을 재는 잣대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외형, 다시 말해 매출이 크다고 좋은 회사로 부러움을 사던 시대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다. 투자자들은 속 빈 강정보다 고수익의 튼실한 회사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그러나 수익만 많다고 일류회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변화속도에 맞춰 어느 정도 매출도 늘어나야 하고, 물건을 팔 새로운 판로 역시 꾸준히 열려야 한다. 사람으로 말하면 신체 골격도 커지면서 동시에 적당한 근육과 튼튼한 심장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이 같은 기준으로 본다면 일본언론들이 뽑은 올해의 최우량기업은 과연 어디일까?꿈의 경상이익 1조엔대를 기록한 도요타자동차일까? 아니면 적자의 늪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닛산자동차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일본의 넘버원 브랜드로 왕좌를 지켜 온 소니일까?놀랍게도 누구나 쉽게 머리에 떠올릴 만한 이름의 기업은 정답에서 비켜 나갔다. 정답은 게임기 전문업체로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닌텐도’였다.<니혼게이자이 designtimesp=22891> 신문은 금융업체와 채무초과(자본잠식)기업들을 제외한 일본의 2,308개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자체 평가한 결과 닌텐도가 종합 1위에 올랐다고 9월 중순 발표했다.<니혼게이자이 designtimesp=22894>의 발표는 다변량해석법(多變量解析法)에 의한 기업평가시스템(NEEDS-CASMA)을 이용해 기업 실력을 측정한 것으로 규모, 성장력, 안전성, 수익성 등 4가지 잣대에서 각각 순위를 매긴 후 이를 근거로 종합순위를 결정했다. 발표는 지난 79년 이후 매년 한 차례씩 실시되고 있다.‘왕중왕’으로 뽑힌 닌텐도는 지난 99년에도 최우량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어 3년 만에 최우량기업의 타이틀을 탈환한 셈이 됐다. 뒤를 이어 일본 최대 제약회사인 다케다약품(2) 유니쿠로(3) 세븐일레븐재팬(4) 야마노우치제약(5) 일본오라클(6) NTT도코모(6) 사미(8) 롬(9) 파낙(10) 등이 각각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닌텐도는 100점 만점으로 평가한 4가지 항목 중 규모(82위)와 성장력(200위권 밖)에서는 발군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으나 안전성(2위)과 수익성(19)에서는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신문은 기업들에 들이댄 잣대 중 규모는 총자본, 종업원수, 캐시플로 등을 지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안전성은 자기자본비율, 매출액 대비 지급이자비율 등을, 수익성은 종업원 1인당 사업이익과 매출순이익률, 자기자본이익률 등을 토대로 평가했다. 성장력은 총자본증가율, 종업원증가율과 함께 매출액증가율을 지표로 활용했다.종합순위를 매기는 과정에서 <니혼게이자이 designtimesp=22903>가 부여한 4가지 항목의 가중치는 규모가 29.1%, 안전성 26.6%, 수익성 26.1%, 성장력 18.2%였다. 규모와 안전성의 가중치를 지난해보다 조금 더 높인 반면, 최근 4년간 30%대를 유지해 왔던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낮춰 재무건전성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평가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신문은 닌텐도가 왕중왕으로 뽑힌 배경과 관련, 재무건전성의 척도인 자기자본 비율에서 일본 재계 최정상급인 81%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이자를 내야 하는 유이자부채가 한푼도 없는 점이 최고 강점으로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닌텐도는 총자산이 지난 3월 말 기준(2001 회계연도) 1조1,567억엔에 이르고 있지만 순수자기자본을 빼고 난 부채는 19%에 지나지 않는다. 이마저 외상매입금이나 미지급금 등의 무이자부채일 뿐 유이자부채는 제로다. 안전성 2위에 조금도 손색없을 만큼 완벽한 무차입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닌텐도는 또 수익성에서도 2001 회계연도 중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소니의 선발제품 ‘플레이스테이션2’에 맞서 경쟁상품으로 내놓은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 큐브’가 비교적 판매호조를 보인 데 이어 휴대형 게임기 신제품 ‘게임보이 어드밴스’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변함없는 돈방석을 차고앉았다.닌텐도의 2001 회계연도 매출은 전년 대비 20% 늘어난 5,549억엔에 달했으며 세후 순익은 1,064억엔으로 약 100억엔 증가했다. 매출이익률만도 거의 20%에 육박할 만큼 엄청난 실속을 챙긴 것이다. 전체매출 중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인 외화수입이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7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 세계무대에서 흔들림 없는 명성과 신뢰를 누리고 있음을 뒷받침했다.1889년 교토에서 화투를 만드는 소규모 영세업체로 첫 간판을 올린 닌텐도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며 일본 최고의 우량기업 타이틀을 두 번이나 차지한 황금알의 면모를 과시했지만 기업경영에서도 적잖은 화제를 뿌렸다.창업자의 4대손이자 일본 게임기산업의 대부로 통해온 야마우치 히로시 전 사장은 ‘젊은피’를 수혈해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는다며 지난 5월 사장 자리를 스스로 물러나 재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가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한 사람은 이와타 사토루라는 40대 초반의 젊은 이사였으나 창업자 집안과 아무 관계도 없는데다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서 일하다 스카우트된 중도 입사자라 일본 재계와 닌텐도 직원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야마우치 전 사장은 현재 일본 게임산업이 소재 빈곤으로 새로운 고객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고급두뇌들이 절대 필요하다며 게임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한 학교설립을 준비 중이다.한편 닌텐도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성장력 부문에서는 기업역사가 짧고 시대흐름을 선도해 새로운 업종에 뛰어든 기업들이 대거 등장, 눈길을 끌었다. 소규모 정보통신업체와 드러그 스토어, 중고책 전문업체, 소화물 택배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신문은 종합순위 300위 이내의 303개 업체(299위가 5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우량기업이 가장 많은 업종은 서비스로 모두 50개사에 달했다고 밝혔다. 2위는 전기기기의 39개사, 3위는 소매업의 26개사로 나타났다.전통적으로 일본산업의 경쟁력을 떠받쳐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자동차, 기계, 화학 등은 각각 14개사, 15개사, 18개사에 그쳐 일반적 예상을 비켜갔다. 매출과 브랜드파워에서 일본을 대표해 온 슈퍼 자이언트 기업들의 종합순위는 도요타, 혼다가 공동 12위에 올랐으며, 닛산자동차 27위, 소니 47위, NTT가 59위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