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가동,고객만족 . 투명성 확보...외풍 막을 수 있는 시스템 정착 '시급'

포스코가 민영화 2주년을 맞았다. 포스코는 2000년 10월 정부 및 산업은행이 보유지분 26.7%를 완전히 매각해 국영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포스코는 주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국인보다 외국인(2002년 6월 말 현재 60.4%)의 지분이 더 많은 독특한 형태의 민간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하드웨어’(겉모습)의 변화다.그렇다면 ‘소프트웨어’(속사정)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포스코 사람들은 “현대의 저돌성과 삼성의 치밀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기에 좀체 바뀔 것 같지 않았던 국영기업의 틀이 하나둘씩 빠르게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과연 그렇게 변했을까.변화사례 1서울 강남구 포스코빌딩 18층 열연판매실. 이곳은 철강업체 및 종합상사들의 애간장을 태우게 하기도 하고, 그러다 간혹 공급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는 기업들로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당하기도 하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부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되는 열연제품을 독점판매하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떼돈을 벌 수 있는 이 부서가 몇 해 전부터 ‘고객만족’을 통한 고객확보에 나서 눈길을 끈다.황은연 열연판매실 열연판매팀장은 “고객만족을 통해 고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면서 “오죽하면 우리가 고객이탈방지시스템까지 만들었겠느냐”고 말한다.포스코가 98년 말에 시작해 올 상반기 작업을 마친 ‘PI’(Process Innovation:프로세스 혁신)를 열연판매실 직원들은 ‘고객이탈방지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포스코의 납품가 및 물량이 고객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고객들은 중국, 일본 등지로 거래처를 옮길 것이다.하지만 대부분 이들 나라로부터 제품을 받으려면 두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래도 이것이 이득이라면 거래처를 해외로 옮길 것이다. 때문에 포스코는 PI를 통해 납기일을 30일에서 14일로 줄였다. 고객이 거래처를 옮기느니 포스코의 물량을 기다리는 편이 시간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런 이유로만 납기일을 줄인 것은 아니다.하지만 독점생산 및 판매하는 포스코의 막강부서가 고객만족경영에 나선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청난 마인드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열연제품의 독점공급에 따른 폐해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도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황팀장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팀원들의 회사별 판매현황 및 판매금액이 매일 실시간으로 뜬다고 한다. 또한 고객이 주문한 제품이 현재 어느 공정을 지나고 있고, 완성된 제품은 어디에 쌓여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을 정도다.더욱이 사내외 감시시스템이 잘 짜여져 있다. 황팀장은 “어느 누구도 우리의 속살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비리니 횡포니 하는 것이 과연 통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그러면 공급부족에 따른 시비가 왜 아직도 일고 있는 것일까. 황팀장은 “국영기업 시절에는 국내 업체들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수익보다 최대생산, 최대판매 쪽에 치중해 왔지만 민영화 이후에는 민간기업들이 지향해 오고 있는 적정생산을 통한 최대이익을 남기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했기 때문이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수요자 측면에서 보면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21세기 민간기업들의 공통적인 생존방식 측면에서 볼 때 ‘소프트웨어의 대전환’인 셈이다.변화사례 2포스코에는 일반 이사회와 달리 ‘영보드’(Young Board)라는 게 있다. 99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영보드는 포스코 임직원 평균연령 40세 전후의 차ㆍ과장급 20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분기마다 1회씩 모임을 갖고 회사의 전반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결론이 나면 영보드 전원이 회장 및 임원들에게 이를 보고하고 회사는 이를 경영에 반영한다. 환경사업의 신규진출, 희망퇴직제 실시 등은 바로 영보드에서 제기돼 이뤄졌다.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여 회사를 젊게 가져가겠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직원들이 의견을 인터넷에 자유롭게 올릴 수 있도록 만든 포스비라는 시스템도 있다. 회장까지 볼 수 있도록 만든 포스비는 직원들의 의견에 대해 때에 따라서는 해당부서가 설명하도록 돼 있다.이 같은 직원들의 자유로운 의견개진과 함께 인사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김영헌 경영지원실 경영인사팀장(부장)은 “능력 및 성과에 따라 연봉을 최고 13%까지 차등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니즈를 맞추지 못하는 5%는 자연 도태되도록 해 인사적체를 해소토록 했다”고 설명한다.예컨대 인사시스템을 고여 있는 웅덩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유연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등기임원의 임기를 3년에서 3년 이내로, 집행임원의 임기는 3년에서 2년 이내로 줄였고, 직원들을 대폭 승진시켜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한 것은 바로 이의 일환이다. 예전에 직원들 사이에서 한직으로 여겨져 왔던 인재개발원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직원교육을 확대한 것은 민간기업처럼 인재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비쳐진다.그러나 능력우수자에 대한 발탁승진,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외국인 등 우수인력의 과감한 채용 등은 민간기업에 비해 다소 미흡하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팀장은 “업종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갑작스러운 인사시스템의 변화는 직원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다”고 강변한다.민영화 2년 & 과제지난 6월 유상부 회장은 명예에 치명상을 입었다. 유회장은 타이거풀스측의 해태 타이거즈 야구단 인수 추진 명목으로 계열사에 타이거즈 주식 20만주를 구입토록 지시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정확히 가려지겠지만 이로 인해 포스코는 아직도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기업이라는 인상을 남겼다.이는 지배구조가 외부의 입김을 막아낼 만큼 탄탄하게 정착되지 않은 까닭이다. 재계 관계자는 “주인이 없는 지배구조 아래서는, 특히 영향력이 큰 포스코의 경우 정치권 등 파워 집단의 입김이 으레 작용하기 마련이다”며 “이를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내부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현재 포스코의 지분은 기업은행 2.27%, 기타 금융권 15.68%, 외국인 60.4%, 기타 21.65%로 구성돼 있다.이와 관련, 포스코측은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가져가고 ‘보이지 않는 힘 있는 손’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시스템들을 이미 가동해 곧 결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단 포스코는 TJ(박태준 전 명예회장) 이후 세대의 직원들이 50% 이상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여기에다 자체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한 데 이어 책임 회피용이라는 비난을 들어온 경영위원회를 없애고, 대표이사가 책임지고 의사를 결정토록 시스템을 구축한 데 이어 경영에 관한 모든 사항을 국민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투명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이 같은 ‘국민 감시시스템’이 세밀하게 짜여져 있기에 어떠한 외부의 입김도 뻗칠 수 없을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CEO 및 직원들의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재계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