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화섬업에서 정보통신업 전환 후 후속 아이템 없어 상장폐지
업종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이 부각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주력업종을 바꾸면 실패하기 십상인 현실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역으로 핵심역량을 신규업종에 집중했지만 그 시도가 실패로 끝난 사례도 있다.지난 97년 화섬직물ㆍ견직물업체인 중원은 정보통신분야로 전환했으나 스페이스비전(PC 위성 TV수신카드) 등 초기 제품 외에는 이렇다할 후속 아이템을 내놓지 못해 99년 상장폐지되고 말았다. 당시 중원은 화섬 부문 채산성 악화와 신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96년 58억원의 당기손순실을 내는 등 3년 연속 적자를 기록,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이런 상황에서도 한솔PCS(현 KTF)에 80억4,500만원, 한국통신프리텔(현 KTF)에 47억8,000만원을 출자하는 등 무리한 사업을 벌였다. 중원은 기존 사업을 방만하게 운영한 상태에서 무작정 업종전환을 시도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업종전환에 실패한 낯익은 대기업들도 있다.쌍방울은 지난 97년 탄탄한 중견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자금난으로 화의를 신청했다. 의류전문메이커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왔던 쌍방울이 무너진 주요인은 새 업종인 무주리조트 투자에 대한 실패 때문이었다.당시 금융계에서는 무리한 무주리조트 투자로 인해 재무구조가 튼튼했던 쌍방울까지 도산 위기에 몰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단기성 부채인 제2금융권 자금을 마구잡이 식으로 신규사업에 쏟아붓다 실패한 것이다.쌍방울개발은 최근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문제의 싹으로 작용한 무주리조트를 운영하는 쌍방울개발에 대한 M&A(기업 인수 합병) 절차가 완료돼 회사정리절차가 조기 종결됐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방울개발은 올 5월 볼스브리지 컨소시엄의 인수대금으로 채권자의 채무 일부를 변제하고 나머지는 출자전환 또는 면제하는 내용의 정리계획을 인가받았다.대농 좌초는 무리한 사업다각화가 원인유통업 미도파를 인수한 대농은 70년대까지는 주력업종인 섬유수출이 활기를 띠면서 재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잘나가던 기업이었다. 계열사였던 미도파의 성장에는 모기업 대농의 지원도 한몫 했다.그러나 80년대 들면서 롯데와 현대 등 신흥 백화점들이 잇달아 사세를 확장한데다 신세계도 유통전문기업으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면서 미도파는 업계 1위를 지키기 어렵게 됐다. 유통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사업다각화라는 명문 아래 다른 업종에 발을 넣었다. 이후 80년 롯데에 백화점업계 선두자리를 내준 데 이어 81년에는 신세계, 80년대 후반에는 현대백화점에도 밀렸다.이런 와중에 섬유산업이 침체기를 맞으면서 모기업 대농의 지원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89년 박용학 명예회장에 이어 취임한 박영일 대농그룹 회장은 면방과 유통에 주력하는 대신 금융과 정보통신, 언론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돈을 끌어들였고 이는 전계열사의 부실로 이어져 무너지고 말았다.전통중소기업에서 첨단벤처기업으로 탈바꿈, 화제를 모았던 이지디지탈은 지난 2000년 신규진출했던 통신네트워크사업을 현재 거의 접은 상태다.이영남 대표이사(한국여성벤처협회장)가 지난 88년 설립한 후 이지디지탈은 계측기제조업체로 정평이 나 있었다. 창업은 당시 범용 계측기의 제조부터, 2000년에는 인터넷 인프라에 사용되는 네트워크장비 쪽으로 전환을 했던 것이다.미국 거대 통신업체인 ADC텔레콤과 기술이전 및 마케팅 제휴를 맺으며 통신장비 분야 진출의 계기도 마련한 바 있지만 통신사업 부문은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 현재 계측기 제조에 충실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자제어기기와 계측기기 전문업체에서 통신네트워크사업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려는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하이텔·나래앤컴퍼니 고전중시대의 흐름과 함께 사양길로 접어든 업체들도 있다. 한때 정보통신(IT)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던 PC통신 업계가 바로 그것. 천리안, 나우누리, KTH(구 하이텔) 등 주요 PC통신업체들은 분사, 가입자 증가율 정체, 기업인수합병(M&A) 등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환경에 적극 대응하기로 하고 대규모 시스템 및 서비스 개편, 신규 수익사업 진출, 통신서비스 업체와 전략적 제휴 등을 추진하고 있다.PC통신 업체들은 특히 기존 서비스체제로는 종합포털화하고 있는 인터넷서비스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궁극적으로 유·무선을 포함한 종합 포털업체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이중 하이텔은 인터넷 콘텐츠와 서비스를 종합제공하는 인터넷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면서 KTH로 이름을 변경했다. 그러나 KTH는 올해 1분기에만 매출액 112억2,000만원에 31억6,000만원의 적자를 보이는 등 적자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무선호출업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나래이동통신은 2000년 7월 무선호출 사업면허를 반납했다. 97년 270만명에 달했던 무선호출기 가입자가 휴대전화 보급으로 10만명 이하로 줄면서다.회사이름도 나래앤컴퍼니로 바꿔 투자 및 인터넷사업에 주력했다. 2000년 나래앤컴퍼니는 B2C 전자상거래와 벤처 인큐베이션사업, 엔터테인먼트 등 3개분야를 축으로 인터넷사업을 전개키로 했다. 그당시 나래는 겟(GET)이라는 시리즈 명으로 PC 전자상거래 사이트 ‘겟PC’, 사이버 증권거래 사이트 ‘겟모어’, 인터넷 음악방송 사이트 ‘겟뮤직’ 등 3개 사업을 펼치며 인터넷 업체로 거듭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지난해에는 70% 이상의 대대적인 감원 태풍에 휘말리는 등 무선호출업 전성기 시절과는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 당기순이익은 98년 120억6,100만원에서 99년 63억1,000만원 2000년 88억6,600만원으로 2001년에는 44억5,400만원으로 감소됐다. 2002년 상반기에는 41억9,500만원의 적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2002년 펜티엄4 CPU의 보급과 새 PC 운영체제인 윈도XP 등에 기대를 걸었으나 국내외 IT산업 경기침체와 경기불안 상황을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이다.돋보기 / 업종변경한 상장업체들섬유·의복업체 너도 나도 업종 “바꿔바꿔”‘이제 주력업종이 바뀌었어요.’지난 99년부터 올해 8월까지 2년6개월간 증권거래소 상장업체들 중에 업종을 변경한 업체들은 모두 37개다. 업종변경은 지난 2년간 매출기준으로 주력업종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37개 업체 중에는 섬유제품업체가 7개사, 화합물 및 화학제품 제조업체가 4개사, 도매 및 상품중개업체가 3개사, 조립금속제조업과 의복 및 모피제품 제조업체들이 각각 2개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업종변경업체들이 섬유, 의복, 조립금속 등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에 속하는 업체들로 나타났다.특히 효성, 코오롱, SK케미칼 등 대다수 섬유업체들은 화합물 및 화학제품 제조업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이는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약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섬업계의 생존전략으로 풀이된다. 즉 일반섬유제품인 폴리에스테르 원사 등 기존 주력사업에는 시설 개·보수에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만 실시하고 대신 부가가치가 높은 자동차용 소재, 산업자재 필름 등 화학섬유제품에 투자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반면 올 5월에 업종변경을 한 호텔신라는 기존의 숙박매출보다 면세점 매출이 더 늘어나면서 숙박업에서 소매업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지난해 지주회사로 전환한 녹십자도 의약품 제조업에서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 업으로 업종을 바꿨다. 올 8월 음식료품 제조업에서 어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오양수산은 21척에 달하는 어선 선단의 실적이 오양맛살, 참치햄 등 음식료품보다 좋아지면서 업종변경을 신청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