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언젠가는 신화(神話)가 되는 모양이다. 나스닥은 한낮 종이조각이 되었고, 한때의 코스닥지수도 이제는 신화에 새겨진 글씨들이 되고 말았다. 기세 좋던 독일의 노이어 마르크트(신시장)나 일본의 나스닥재팬은 아예 문을 닫아버리기로 작정한 터다.시장경제의 신전(神殿)처럼 받들어지던 증권시장은 이미 기둥뿌리가 뽑혔고, 제관들이며 신녀(神女)들도 보따리를 싸고 있다. 한때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것 같았던 신경제 열풍이었지만 돌아보니 17세기 네덜란드의 그 광적인 ‘튤립 뿌리’ 투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을 지혜라고 하는 모양이다. 튤립 뿌리 하나가 지금 시세로 최고급 승용차와 고급 아파트에 맞먹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언제나 잊고 있다.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 가격에 필적했다는 것이 튤립 구근의 놀라운 투기적 가격이었다. 이제 나스닥이 무너지고 코스닥이 무너지고서야 그것들의 상당부분은 다만 가공의 숫자들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치솟는 주가를 정당화하던 그 모든 암호들이며 비의(秘儀)들이며 신비로운 숫자들이 한낮 가공의 허수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 그리고 다만 모래성이며 사막의 신기루에 불과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현대판 연금술의 종언이기도 했다.조지 소로스는 스스로 ‘금융의 연금술’(Alchemy of Finance)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지만 소로스와 더불어 쇠를 녹여 금을 만드는 ‘연금의 술’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긴 줄에 서있는 것이 분명하다.여러 가지 종류의 금속을 적당한 비율로 녹이고 배합해 놀랍게도 금덩어리를 만들어 낸다는 연금술은,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불행하게도 사기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금술사들은 스스로 도취해서건 아니면 순전히 사기를 치기 위해서건 복잡한 화학도구들을 휴대하고 자금을 댈 물주를 찾아 유럽을 헤매었고 적잖은 왕족과 귀족들이 이 사업에 빨려 들어갔다.물론 연금술이 전혀 유용성이 없지는 않았다. 연금술 덕분에 근대화학의 기틀이 잡혔고 금속에 대한 연구가 진일보했으며 물질에 대한 탐구가 촉진되었다. 현대판 연금술이라고 하는 증권시장의 비술(秘術)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증권시장을 설명하던 그 복잡한 미분학이며 로켓의 궤적을 끊임없이 잘게 쪼개며 무한의 예각을 추구하던 파이낸스 엔지니어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결국 주먹만한 크기의 튤립 뿌리와 무엇이 달랐던 것인가.튤립은 그것이 뿌리를 내릴 땅값보다도 더욱 비싸졌고 주식은 그것이 돌려줄 투자의 대가, 즉 배당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진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이 신기술 주가였고,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는 지금도 여전히 배보다 큰 배꼽들이 널려있다.처음 ‘배당 수익률’을 제치고 ‘주가수익비율’(PER)이라는 투자지표가 등장했던 시기가 지난 1929년 주가대폭락을 목전에 둔 때였다는 점을 신경제 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은 모두 잊었을까. 새로운 주가분석의 도구라고 해본들 다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주가를 정당화하는 숫자의 연금술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그렇게 주가는 언젠가는 꺼져버릴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주식이 중산층, 심지어 근로자들의 안정적인 생애 자산이 될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이나 증시를 통해 기업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선진금융의 유일한 활로인 것처럼 말해왔던 그 모든 과장된 주장들도 검증받을 때가 왔다.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제야말로 진정한 신경제 시대”를 주창하며 또다시 마방진의 해(解)를 찾아 증권시장으로 꾸역꾸역 되돌아올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