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 후반 포스코는 선재강판류를 하도급 받는 중소업체들을 불러모았다. 향후 중국 등지에서 저가로 치고나오면 승산이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고급화 전략으로 주력업종을 바꾸라고 조언하기 위해서였다.그리고 포스코는 이를 위해 매분기 공급량을 1%씩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공급 중단에 따른 업체들의 부담을 줄이는 차원이었다.하지만 납품업체들이 이에 반발하는 바람에 선재류 공급을 지속시켰다. 90년대 중반 10여년 전에 경고했던 일이 그대로 벌어졌고, 이에 버티지 못하는 기업들은 줄도산을 하고 말았다.당시 포스코의 조언을 귀담아들은 업체들은 업종을 고부가가치 쪽으로 바꿔 아직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업종전환에도 시기가 있는 법. 이를 놓치면 죽음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대기업들은 이미 회사 내 ‘신사업준비팀’을 두고 5~10년 뒤 먹고살 수 있는 신사업 찾기에 골몰해 왔다. 삼성, LG, SK,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그룹들은 ‘2003년 경영계획’을 통해 차세대 성장엔진 찾기에 그룹 역량을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올 상반기 3조2,000억원의 순이익을 낸 삼성전자는 요즘도 정기적으로 대전 대덕밸리를 순회하며 신사업을 찾고 있을 정도다.CJ그룹과 동양제과 등은 엔터테인먼트와 외식산업 분야로 사업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코오롱, 삼양사 등 중견그룹들도 구조조정과정에서 확보한 풍부한 실탄을 무기로 M&A시장에 안테나를 세워놓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IT벤처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서점 예스24, 소모성자재 기업간 전자상거래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 인터넷포털 프리챌 등은 최근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한 ‘전위조직’(신사업팀)을 잇달아 신설했다.발상의 전환·혁신이 ‘업종전환’ 무기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차세대 성장엔진 찾기에 매달리는 것은 미래형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업변신을 서두르는 기업들은) IMF를 거치면서 잘나가는 기업도 자만하면 한순간에 도태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연구원은 “부가가치가 높은 신사업을 준비할 때 불확실한 미래 환경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제 일반화됐다”고 덧붙였다.이미 ‘업종전환’에 성공, 21세기형 체질을 갖춘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직물ㆍ패션에서 화학ㆍ전자소재로 전환한 제일모직, 쌀통에서 직선운동시스템(LM) 가이드로 바꾼 삼익LMS, 호출기에서 홈쇼핑으로 말을 갈아탄 아이즈비전, 기념주화를 생산하다가 주얼리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화동양행 등이 대표적이다.이들 기업은 발상의 전환과 끊임없는 혁신을 무기로 업종전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미래를 보는 눈, CEO의 신속한 판단, 발빠른 조직운용, 그리고 불협화음을 없앤 인간경영이 밑거름 됐다.신업종이 연착륙 할 수 있도록 기존 업종을 기술개발 등으로 지속시켰던 것도 발판이 됐음은 물론이다.이뿐만 아니라 섬유에서 생명공학 분야를 주력으로 삼은 SK케미칼, 화약ㆍ석유화학에서 최근 대한생명을 인수하며 금융업을 주력으로 삼은 한화 등은 서서히 업종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예전의 수출역군이었던 종합상사들도 패션사업, 외식업 등 이제까지 영위하던 사업과 전혀 다른 업종으로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업종전환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업종전환을 ‘보물찾기’에 비유했다. 5~10년 후에 어떤 업종이 뜰 것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업종전환’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업종전환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권구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관련성이 전혀 없는 사업으로 업종전환을 하는 것은 현재의 핵심역량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실제로 무리한 업종전환으로 기존 사업마저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섬유에서 유통으로 바꾼 대농, 의류에서 건설ㆍ리조트로 변경한 쌍방울 등이 대표적인 실패사례다.김대욱 (주)제네틱스홀딩스(전자화폐업 및 솔루션업체) 전 사장은 올 초 성전환수술로 널리 알려진 연예인 하리수의 성공비결에 빗대어 ‘하리수에게 배우는 기업생존전략 10계명’을 내놓은 적이 있다.그중의 하나는 ‘필요하다면 성까지도 바꾼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필요하다면 성까지 바꾼다는 자세로 업종전환에 나서야 할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