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친구 김 : “대통령 건강이 안 좋다카데.”윤팀장 : “어, 아닌데.”동네 친구 박 : “니가 그걸 어찌 아노.”윤팀장 : “내 며칠 전에 봤거든. 보기에는 아무 이상 없고 좋기만 하든데.”모두 입을 모아 : “에이, 그거 생거짓말 아이가. 니가 어째 대통령을 보노?”지난 추석 때 윤승현 코엑스 컨벤션팀 팀장(42)이 고향에 내려가서 친구들과 나눈 대화 한 토막. “멀리서이긴 하지만 대통령을 종종 본다”고 아무리 말해도 친구들은 믿으려 들지 않는다. “제가 경주에서도 1시간은 더 들어가야 되는 촌 출신이거든요.”코엑스 컨벤션팀을 이끌고 있는 윤팀장은 국제회의 기획자로서 가장 큰 기쁨은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겸임교수로 나가는 경희대 대학원에서는 시장 등 ‘높으신 분들’을 제자로 거느리기도 한다.윤팀장은 컨벤션 기획과 우연히 연을 맺었다.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후 직장을 찾던 그는 공채로 코엑스에 입사했다. 그런데 해외 경험이 많은 회사선배가 그에게 “외국에서는 무역전시뿐만 아니라 컨벤션이라는 분야가 각광받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전망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이를 받아들여 90년대 초반부터 컨벤션 기획을 시작했다. 여기에 인생을 건다는 게 처음에는 도박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외국대학에서 나온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으면서 독학하고, 외국에서 열리는 큰 국제회의를 찾아가 세밀히 벤치마킹했다.코엑스 컨벤션팀은 매년 15~18개의 국제행사를 치러내고 있다. 요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월드컵 관련 행사들. 1만700명의 세계 기자들이 모였던 월드컵 국제방송센터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대규모 국제행사를 하나 끝내기 위해 국제회의 기획자가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행사 유치전에 뛰어드는 것부터 시작해 행사에 대한 기본계획을 작성해야 하고, 주관 기관과 협의해 예산도 처리해야 한다. 자질구레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저명한 석학들이 회의에 참석했는데 첫 번째 발표자는 프랑스인, 두 번째는 미국인, 세 번째는 영국인이라 합시다. 각 나라의 윈도 체계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고 조치를 취해 놓아야 발표에 지장이 없죠.”그러다 보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방송이라면 녹화할 수도, 찍은 후 편집할 수도 있지만 국제회의는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지금은 여러 개의 전시장과 회의장을 갖춘 코엑스도 지어졌고, 고양시를 비롯해 지방에도 대규모 컨벤션센터가 들어서게 된다. 그가 처음 컨벤션 기획에 뛰어들었던 시절에 비하면 사정이 많이 나아진 셈이다.하지만 윤팀장은 이 산업은 아직도 초기라고 말했다. “건물이 지어진다고 해서 컨벤션산업이 발전하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컨벤션이 활성화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돼요.”국제회의 기획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윤팀장이 주는 충고.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50여개의 전문업체 중 한 곳에 취직하는 것, 두 번째는 내년부터 생기는 자격시험에 응시하는 것. 하지만 학창시절 행사진행 요원 등으로 파트타임으로 참여,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