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이 될 만한 빌딩을 발굴하는 게 제 역할이죠. 관리가 소홀해 보석 같은 빌딩들도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게 허다하거든요.”BHP코리아의 이지현 대리(28)는 수백억원짜리 빌딩을 사고판다. 투자자를 위한 현장답사나 빌딩의 수익성 분석은 물론 거래 당사자간의 가격흥정도 그녀의 몫이다. 지금까지 그녀의 손을 거쳐간 빌딩만 해도 서울파이낸스센터를 비롯해 벽산125빌딩, 로담코타워, 프라임빌딩 등 자산가치로 따지면 모두 1조원이 넘는다.“저 혼자 했다기보다 팀원으로서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여자인데다 나이가 어려 눈길을 끄는 것 같아요.”이대리의 전공은 통계학이다. IMF 한파가 불어닥친 지난 98년, 그녀 역시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고도 좌절해야 했던 일반 취업준비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부동산컨설팅회사에 입사하게 되면서 인생의 색깔이 달라지게 되었다.휴가 반납하고 일에 매달려통계학을 공부하면서 갖춘 분석적인 사고방식이 부동산 업무에 큰 도움이 됐다. 또 학부에서 배우지 못했던 부동산 전문지식을 쌓기 위해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다녔다.첫해는 휴가까지 반납한 채 오로지 일에만 매달렸을 정도. 궁금한 점이 생기면 일일이 직장선배들을 쫓아다니면서 물었고, 틈만 나면 사내 도서관에서 부동산 관련 서적을 읽었다. 지금은 경영 관련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아주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부족한 점이 많았던 게 오히려 장점이 된 것 같아요. 어떤 분야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전문적인 지식은 두 번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관심이 있고 열의가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 같아요. 지식과 경험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이런 열정 때문인지 이제는 업계에서 인정받는 빌딩매각전문가가 됐다. 팀 내 홍일점이지만 하루 종일 그녀를 찾는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아 ‘인기스타’로 통한다.빌딩주와 투자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게 인기비결에 대한 설명이다. 빌딩주의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투자자의 입장을 너무 배려해 빌딩주들에게 불만을 듣는 것도 그녀에게는 예삿일이다.“부동산컨설팅회사에 근무하면서 빌딩주와 투자자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부동산 투자 펀드를 직접 운용하는 부동산 펀드매니저가 되고 싶습니다.”‘지금은 결혼보다 일이 우선’이라고 밝히는 그녀에게서 꿈을 향해 조금씩 다가서는 당찬 신세대의 모습이 엿보인다.손용석 기자 soncine@kbizweek.comKB부동산신탁 차상란 전략사업팀장부동산신탁업계 최초 여성팀장…자격증만 5개차상란 KB부동산신탁 전략사업팀장(41)의 프로필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서울여상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덕성여대 경영학과를 거쳐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공인중개사(91년), 경영지도사(91년), 주택관리사(92년), 미 선물거래사(APㆍ92년), 감정평가사(99년) 등 5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79년 7월 씨티은행에 입사해 11년을 근무한 뒤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3년, 건설회사 디벨로퍼로 3년 6개월, 감정평가사로 1년 2개월을 일했다.그리고 지난해 7월 신탁업계 최초로 여성팀장이 됐다. 정훈식 KB부동산신탁 사장이 중개, 관리, 건설, 개발 등 부동산 전 분야를 경험한 그녀의 경험과 도전정신을 높이 사 직접 영입했다. 차팀장 또한 “감정평가사로 일할 때보다 연봉은 적지만 경험을 더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선뜻 응했다.차팀장의 프로필이 말해주듯 그녀가 부동산업계의 ‘파워우먼’이 되기까지는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이룬다’는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우선 금융에서 부동산으로 말을 갈아탄 경우가 그렇다. 차팀장이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씨티은행 담보대출심사역으로 일할 때다.“부동산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부동산의 종류가 무척 다양하고 금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금융과 부동산을 결합한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녀는 주저 없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을 그만두고 과감하게 부동산중개사무소로 일터를 옮겼다.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아예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두 달 동안 24시간 책만 들여다본 끝에 그 어렵다는 감정평가사 시험에 거뜬히 합격했다.감정평가법인에서 일할 때도 해당 부동산에 대한 완벽한 사전 준비와 신속, 정확한 일처리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새벽 4시30분에 호텔로 달려가 대기하고 있는 것은 물론 고객과 함께 전국을 일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특히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부동산업체들의 구애에도 시달렸다. 금융과 부동산 분야의 현장경험을 두루 거친데다 외국인과 거리낌 없이 사업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하지만 남성들이 주도하는 부동산업계에서 여성으로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을까. “부동산서비스업은 스피드와 정확성을 요구하는 지식산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꼼꼼한 여성이 강점이 있는 분야”라는 자신에 찬 답변이 돌아왔다.차팀장은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양한 실무경험을 더 쌓아 또 한 번 도약을 꿈꾸고 있다.“신탁회사에서 4~5년간 경험을 쌓은 뒤 중개, 개발, 관리 등을 서비스하는 종합부동산 서비스회사를 설립해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권오준 기자 jun@kbizweek.com대림산업 민간사업부 최미혜 사원주택개발 사업성 검토 ‘중책’ 맡은 홍일점대림산업 민간사업부 사업3팀에서 조합주택 사업성 검토 파트를 맡고 있는 최미혜 사원(29)은 총 9명인 소속팀에서 홍일점이다. 32명으로 구성된 민간사업부 내에서도 서무직원 2명을 제외하면 유일한 여자. 수많은 경쟁사 중에서도 자신과 같은 임무를 가진 여성인력을 만나 본 적이 없다.“건축 시공, 설계 분야에는 여성들이 꽤 많이 진출해 있지만 주택개발 실무 분야에는 거의 없어요. 사업성 검토를 통해 프로젝트의 시작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남자들이 주로 맡곤 하거든요. 아직까지 건설업계가 남성 중심적인데다 보수성도 강해 여성들에게 중요한 일 맡기기를 주저하는 것 같아요.”건국대 부동산학과 재학시절 성적 장학생을 놓치지 않았던 최씨는 지난 97년 졸업과 동시에 대림산업에 입사, 오는 12월이면 입사 7년차 ‘대리’로 진급한다. 그동안 오피스빌딩, 주상복합건물 분양 파트에서 경력을 쌓다가 지난 99년 5월부터 조합주택 사업성 검토 담당으로 일해 왔다.최씨가 맡은 일은 조합아파트 건립을 원하는 지주나 시행 브로커를 만나 사업내용을 검토하고 건설사 입장에서 수익성을 가늠하는 것. 수천평의 땅과 수백억원의 돈을 주무르는 만만찮은 일이다. 특히 실사부터 설계, 견적, 분양가 책정, 수익성 검토까지 사업의 가부를 결정하는 실무 열쇠를 최씨가 쥐고 있다. 여린 외모와 달리 맡은 일은 ‘터프’하기만 한 셈.“주로 나이 지긋한 남성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곤욕을 겪기도 합니다. 실무 담당자임을 밝혀도 막무가내로 팀장, 부서장부터 찾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그런 건 별 문제 아니에요. 선입견을 가졌다가도 일을 통해 더 깊은 신뢰감을 가지게 되니까요.”최씨는 자신의 일이 지극히 남성적이지만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과 차가운 분석력이 필수인 만큼 ‘여성’에게도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앞으로 부동산학이나 도시공학 분야 대학원에 진학, 이론적 바탕을 더 다져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