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 경영성과 극대화 벗어나 사회구성원과 이익 공유하는 시스템 정착 시급
명품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명품은 단지 높은 수준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제품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기능에 더하여 ‘상징’이 담겨져 있어야 인정받는다. 따라서 가격이 높더라도 자신을 타인과 ‘구분 짓는’ 상징적 소비심리를 만족시켜야 한다.제품에 명품이 있다면 가문에는 명문가라는 것이 있다. 명문가는 단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컬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높은 지위나 재산에 더하여 이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만 진정한 명문가로 인정받는다.그렇다면 기업에 있어 이러한 명품이나 명문가에 상응하는 개념은 무엇일까. 그 답을 찾자면 우리는 ‘존경받는 기업’(Admired Company)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존경받는 기업은 단지 최고의 경영이익을 내는 기업만을 지칭하지 않는다.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진정한 존경받는 기업인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성과가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의 수행은 그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보조장치 아닌 지속적 활동으로 이어져야최근 엔론과 월드컴 등 미국 기업들의 잇단 회계부정 파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내 기업들의 입장은 난감하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경영서적들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강점을 우리가 배우고 따라가야 할 모범으로서 소개해 왔고,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투명경영을 핵심으로 하는 미국식 경영기법을 급속히 도입했기 때문이다.결국 외환위기 이후 과거 경제개발 단계에서부터 오랜기간 본받아온 일본식 기업경영 방식이 폐기되고 다시 미국식 방식으로의 대체를 진행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준거집단의 상실에 아노미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식 경영기법은 이제 끝이며 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미국 선진기업들의 전통적인 상은 ‘경영의 투명성과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되 사회정서를 고려하여 지역사회 지원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경영성과의 극대화 부분만을 주목했을 뿐 그들이 그 경영성과를 어떻게 사회와 함께 나누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돈을 많이 버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돈을 값지게 쓰는 방법’ 또한 간과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사회 환경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다루어졌다. 따라서 여론을 주도하기보다 사회로부터 부정적 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보조 장치 역할을 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수동적인 사회공헌활동은 사회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격려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이다.비록 당사자인 수혜자들은 고마워할지 몰라도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여론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차원에서 그치고 만다. 사회와 수혜자들로부터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은 비용의 낭비일 뿐이다.경제성장 과정에서 불거진 국민, 기업, 정부 사이의 불신구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악순환돼 왔다. 정부와 기업은 서로 불신하고 국민들은 양자에 대해 양비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사회를 구성하는 이들 핵심 주체간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의 증대를 가져온다. 갈등해소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기업이 앞장서 나가야 할 분야가 바로 사회공헌활동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받는 신뢰를 높여 결과적으로 기업이 가지는 사회적 자본을 증대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 designtimesp=23004>에서 인류의 역사를 진보시켜 온 힘의 원동력은 ‘남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인간의 욕구’라고 보았다. 기업도 사람같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인식한다면 사회로부터의 칭찬을 마다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도 존경받으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여기서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우리는 기업규모도 작고 존경 안 받아도 좋으니 돈이나 많이 벌고 싶다.’ 좋다. 하지만 나중에 돈 많이 벌게 되면 그때서야 소외받는 이들을 돕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 중 몇 퍼센트(%)가 실제 실행에 옮기는지를 보라. 돈을 값지게 쓰는 것도 평상시에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이상민한양대 사회학과 졸업.미국 메디슨 위스콘신대 사회학 석사.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사회학 박사.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수석연구원.한국사회학회 정회원.미국사회학회 정회원.©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