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단기위주 정책 벗어나 수급조절 등 장기정책 시급" 지적

지난 1월8일 투기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실시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1ㆍ8대책’ 발표 이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억제책’ 중심으로 흘러왔다. 외환위기 이후 분양권 전매 자유화, 민영주택 분양가 자율화 등 부동산경기 부양에 치중했던 정책이 불과 3년 남짓 만에 180도 바뀐 것이다.이뿐만 아니라 1ㆍ8대책 이후 5차례에 걸쳐 굵직한 ‘안정대책’이 쏟아지면서 부동산시장은 ‘안정’보다 ‘혼란’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11일 발표된 ‘6억원 이상 주택 실거래가 기준 양도세 과세’ 방침의 경우 서울 강남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반발세마저 나타나고 있는 상태다.일선 부동산중개업소나 부동산전문가들 역시 쏟아지는 정책 따라잡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8월9일 이후부터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형 안정대책이 발표되는 통에 제도변경 내용과 시행시기 숙지에 어려움이 많다는 호소다.서울 강남구 도곡동 K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안정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수시로 외우고 있지만 솔직히 정리가 안된다”고 토로했다.1·8대책부터 10·11대책까지 다섯 번에 걸쳐 발표된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의 핵심내용을 살펴보자.1ㆍ8 안정대책 = 급등 조짐을 보인 서울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투자자와 분양권 전매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발표 이후 강남구 대치동 등 재건축아파트 밀집지의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임시휴업에 들어갈 정도로 위축됐다.또 집값 급등 지역의 양도소득세 기준시가를 수시로 고시해 시가대로 과세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어 1월10일에는 서울시가 강남지역 아파트 재건축 승인요건을 엄격히 적용하고 각종 가격인상 요인도 없애겠다는 발표를 했다. 5개 저밀도 아파트지구에 대해서도 ‘무분별 재건축 불가’ 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이밖에 1가구 2주택일 때 먼저 구입한 주택의 양도세가 면제되는 매각기간을 종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3ㆍ6 안정대책 = 투기과열지구 지정 제도가 만들어졌다. 청약경쟁이 과열되는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이 지역 내에서는 주택공급 관련 제도가 바뀐다는 내용. 이에 따라 4월19일자로 서울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고, 신규 아파트 분양권은 계약 후 1년 및 중도금 2회 이상 납부 후 전매가 가능하게 됐다.또 전용면적 25.7평 이하 분양물량은 50%를 무주택 세대주에게 우선 분양토록 했다. 과거의 무주택자 우선 분양제도가 부활된 셈이다.이밖에 주상복합건물과 오피스텔의 사전 분양을 금지하고 공개추첨을 통해 분양하도록 했고, 재건축아파트는 시기조정심의위원회를 통해 착공시기를 분산토록 했다.8ㆍ9 안정대책 = 투기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에 이어 자금흐름이 불명확한 고가 아파트 구입자에 대해 자금출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 서울에 이어 수도권에서도 집값 급등 지역에 대해 양도세 기준시가를 상향조정한다고 발표했다.강도 높은 억제책에도 가격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재건축시장에 대해서는 재건축 절차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시도지사가 사전에 도시계획 절차에 따라 재건축 구역을 지정하도록 개선했고, 서울시의 사전 안전진단평가를 제도화하기로 했다. 통상 안전진단 이전에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던 것을 사업승인을 받은 후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선정하도록 바꾸었다.특히 재건축 추진시 의무적으로 수립해야 하는 지구단위계획 수립 대상을 확대, 절차 요소를 강화했다.9ㆍ4 안정대책 = 재당첨 금지제도 부활이 핵심. 가수요를 억제한다는 측면에서 아파트 청약제도에 대해 직접적인 규제가 시작된 것이다. 투기과열지역에 한해 1가구 2주택인 가구와 가구주가 아닌 1순위자에 대해 아파트 청약자격을 제한했다.또 최근 5년 내 해당지역에서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은 청약통장 가입 후 2년이 지나도 1순위가 아닌 2순위 자격이 주어지도록 개정했다.강남의 주택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판교 등에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하고, 분양시기도 앞당긴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더불어 70~85% 수준인 주택담보대출의 비율을 60% 수준으로 끌어내린다는 내용도 포함됐다.10ㆍ11 안정대책 = 고단위 ‘세제처방’이 골자를 이룬다. 현행 세법에서 최고 60%(미등기 전매시)를 물리게 돼 있는 양도소득세율에 15%포인트를 더 과세할 수 있도록 세법을 개정했다. 부동산 매매를 통한 이익실현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또 부동산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등할 소지가 있는 지역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기로 하고, 투기지역에서의 부동산거래는 실거래가액 기준으로 과세하기로 했다.특히 현행 고급주택 면적 기준인 전용면적 45평 이상에 미달해도 6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실거래가액 기준으로 과세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발표 후 강남 주택시장에서는 ‘조세형평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반발이 거세다. 이밖에 토지거래허가대상 면적을 330㎡ 초과에서 200㎡ 초과(녹지 기준)로 하향 조정했다.강도 높은 정책 나와도 반응은 미미총 5차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 발표와 잇따른 시행령개정 등이 맞물리면서 올해 부동산 정책은 시시각각 변했다. 그러나 강도 높은 억제책에도 시장의 반응이 미미하다는 게 문제. 오히려 빈번한 정책변경에 혼란만 더한다는 우려가 크다.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단기 위주 정책, 세제 처방 중심의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 공급 부문, 금리 문제 등 가격과 직접 연관이 있는 사안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건설업체나 수요자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책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결국 가격상승을 부추기게 됐다”고 밝혔다.즉 공급 및 수요의 변화 등 질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과 장기적인 주택정책에 대한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용어설명투기지역소득세법에 따라 재정경제부가 지정한다.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물려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한 것이다. 투기과열지구의 지정기준이 청약과열 여부라면 투기지역의 기준은 부동산 가격 상승폭이다. 내년 초 지정할 예정이며,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투기과열지역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건설교통부가 지정한다. 최근 2개월간 청약경쟁률이 평균 5대1이 넘으면 지정대상이 된다. 계약 후 1년 또는 중도금 2회 이상 납부할 때까지 분양권 전매가 금지된다.토지거래허가구역국토이용관리법에 따라 건설교통부가 지정한다. 토지투기를 막기 위한 장치다. 현재 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 판교 등 개발예정지역이 지정돼 있다. 거래 전에 관할 시장, 군수로부터 토지거래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올해 발표된 부동산시장 안정대책 주요내용1월8일- 투기혐의자 세무조사- 양도소득세 기준시가 수시 조정- 1가구 2주택 양도소득세 면제 기간 단축3월6일-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지정- 무주택자 우선분양제도 부활- 분양권 전매 부분 제한- 주상복합·오피스텔 공개추첨 분양 실시- 아파트 재건축 심의 강화8월9일- 아파트 구입 자금 출처 조사- 집값 급등 지역 양도소득세 기준시가 상향 조정- 재건축구역 지정 절차 개선-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 변경- 지구단위 계획 수립 대상 확대9월4일- 아파트 재당첨 금지제도 부활- 판교 등 신도시 건설 계획 발표- 주택담보대출 비율 하향 조정- 양도소득세 면제사유 조건 추가- 종합토지세, 재산세 강화10월11일- ‘투기지역’ 새로 도입- 6억원 초과 주택에 실거래가액 기준과세- 투기우려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 토지거래허가대상 면적 하향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