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가전제품 전세계 공장에 수출...전세계 소니공장 중 품질 1등상 받아

지난 11월1일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있는 한국소니전자는 특별한 손님들을 맞이했다. 북측 경제시찰단이 이 회사를 찾아왔던 것이다. 시찰단은 한국소니전자와 일본 본사인 소니와의 관계, 경영진 선임 문제, 노동자 임금수준 등에 관심이 많았다. 신의주에 이어 개성공단 특구화를 추진 중이라 외국인 투자유치에 깊은 관심을 가진 북측시찰단이 한국소니전자를 찾은 것은, 이 회사가 성공적인 외국인 투자의 모범사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한국소니전자는 마산자유무역지역 초기부터 터를 잡아온 ‘고참’이다. ‘수출한국’의 경제성장 견인차 역할을 했던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입주회사들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수출기업이다. 2001년에는 (2000년 7월~2001년 6월) 10억3,000만달러 어치 제품을 수출해 지난해 11월 ‘10억불 수출탑’인 은탑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처음 이 회사는 소니 제품에 사용되는 부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하청업체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72년 설립됐을 때의 회사이름은 한국동양통신산업이었고, 거대한 가전메이커 소니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직원 10명으로 어렵게 시작한 작은 공장일 뿐이었다. 하청공장이라 일본 본사로부터 감시의 눈길도 많았다.그러나 집중적인 품질개선과 기술개발 덕에 단순한 하청공장에서 벗어나 위상을 바꿀 수 있었다. 오늘날의 한국소니전자는 한국동양통신산업과 또 다른 국내 소니 자회사인 SOWA가 92년 합병해 만들어졌다. 98년에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1,142개 소니 제조법인 중 품질이 가장 우수한 공장으로 뽑힐 정도로 소니 본사로부터 인정도 받았다.한국소니전자는 매년 25%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초기에는 TV튜너 등을 주로 생산했지만 이제는 완제품까지 자체 생산하는 가전메이커로 발돋움했고, 생산된 가전제품들은 전세계 소니 공장에 100% 수출한다. 때문에 한국소니전자에는 영업 부문이 없다. 우리나라에 판매되고 있는 소니의 각종 가전제품은 또 다른 소니의 한국 자회사인 판매법인인 소니코리아에서 유통한다.세계적인 가전메이커 소니의 히트상품들도 한국소니전자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들이 많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현재 이 회사의 매출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주력 생산품인 광픽업이다. 광픽업은 소니의 세계적 히트상품인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나 DVD플레이어, CD롬 등에 들어가는 부품. CD나 DVD에 기록된 디지털 신호를 재생하는 장치로, 전축의 레코드판 소리를 재생하는 바늘과 같은 역할을 한다.소니가 전세계 광픽업시장의 70%를 차지하며, 그 절반을 한국소니전자에서 만든다. 더욱이 한국소니전자의 광픽업 제조원가는 세계 다른 소니의 공장들과 비교할 때 3분의 2 수준이다. 효율성에서도 최고 수준인 것이다. 이처럼 광픽업 생산효율이 높은 것은 우수한 생산설비 덕분이다. 광픽업의 주요 부품인 ‘μ-2축’을 자동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자동생산시스템을 자체 개발함으로써 생산원가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광픽업 이외에 주요 생산품은 부품이 아닌 완제품 DVD플레이어와, 미니 컴포넌트, 헤드폰, 카오디오 등이다. 2000년 1월 세상에 나온 DVD플레이어 모델 DAV-S300은 미국 인터넷 사이트인 ‘ZD Net’에서 별 다섯개를 받아 최우수 등급으로 평가받았다. 2001년 내놓은 DAV-S500모델은 영국의 <홧 하이 파이 designtimesp=23162>지에서 ’올해의 제품‘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 두 모델은 모두 한국소니전자에서 자체 설계해 제조까지 맡고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애착이 더욱 크다.한국소니전자는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통한 고부가가치 상품을 제조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경영진의 신조에 따라 제품의 연구와 설계에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한 덕에 단순한 부품공장에 머무르지 않고 종합가전메이커로 도약할 수 있었다.제품에 그치지 않고 기술까지 수출지난 90년 처음으로 카세트테이프 레코드 제품을 독자적으로 설계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끊이지 않고 제품을 개발해 내놓았다. 94년에는 CD플레이어가 장착된 카스테레오를 설계했고, 96년에는 적외선 및 고주파 전송 무선헤드폰을, 99년에는 미니 컴포넌트를 설계했다. DVD플레이어도 2000년부터 내놓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 이렇게 자체에서 개발해 생산하고 있는 이 제품들은 이제 모두 한국소니전자의 주력 생산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 같은 개발에 대한 투자는 단지 제품의 수출뿐만 아니라 기술수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니 컴포넌트의 경우는 품질을 인정받아 제품이 아닌 설계를 동남아시아에 수출하고, 광픽업 생산 자동화설비도 수출한다. 현재 설계개발 관련 인력은 200여명에 이르며, 전재철 사장은 개발 부문은 여전히 직접 결재를 하고 챙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다.이 회사는 종업원과 회사간 갈등이 적기로 유명하다. 일본 기업 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이직률이 낮고 장기 근속자도 무척 많다. 회사측은 합리적인 인사 제도 때문이라고 한다. 명문대 출신, 고학력자가 아니더라도 승진에 상관이 없다. 성과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고졸이사가 1명, 중졸의 부장도 3명이 일하고 있다.기업이 지방에 있을 경우 우수한 인재를 뽑는 데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 그러나 이 회사 최점수 교육홍보과장은 “인근 지방대학에서 전자공학, 기계 등을 전공한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결과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CEO 탐구 / 전재철 사장26년 한우물 판 ‘테크노 CEO’전재철 사장(55)은 이직률이 매우 낮은 회사 내에서도 손꼽히는 장기 근속자다. 1976년 한국동양통신공업에 사원으로 입사해 오늘까지 한우물을 팠다. 설계 부문 책임과 전무이사 등을 거친 그는 2001년 3월 한국소니전자 사장으로 취임했다.오늘날 한국소니전자가 단순한 부품공장에서 종합가전메이커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는 전사장이 기여한 몫이 컸다. 그는 회사 내에서 처음으로 일본 소니에 설계연수를 다녀왔던 인물이다. 그가 물꼬를 트고 난 후 이제는 설계업무를 맡는 사람은 누구나 일본에 설계연수를 다녀온다. 설계자로 일하던 시절 사흘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꼬박 밤을 새우면서 기술개발에 매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사장이 된 지금까지도 줄곧 개발과 설계 부문을 강조하고 있다.등산을 좋아하는 전사장은 무박 3일의 산행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길 정도로 ‘극한’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한계상황에 몰아넣어야 인간 능력의 가능성이 더욱 올라가고, 목표를 높게 잡아야 성취도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