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금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3%대로 떨어졌다. 우리나라도 일본형 초저금리시대로 진입하는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연 3%라면 거의 물가상승 수준과 비슷한 것으로 예금이자가 더 이상 소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자본, 지대, 노동의 3대 요소 중에서 자본에 내려진 재앙이라면 재앙이다.은행 예금금리 3%대의 내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확히 3.98%다. 그러나 은행들이 예금상품에 대해 평균적으로 3.98%의 금리를 지급한다는 뜻은 아니다. 은행이 실제 지급한 이자를 합치고 은행 예금의 평균잔고를 모수로 해서 계산해 보니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잇달아 금리를 내렸기 때문에 생긴 현상은 아니다. 오히려 예금자들이 고금리 상품에 돈을 넣지 않아서 생긴 현상이다.금리는 시간의 대가다. 기간이 길면 그만큼 금리도 높다. 국내 은행의 1년만기 예금금리는 아직 7% 후반에 머물러 있다. 물가는 3% 범위에서 안정되어 있다. 문제는 예금자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되 상당수가 이자를 거의 주지 않는 상품에 돈을 넣고 있다는 것이다.금리는 기간의 등가물이기 때문에 맡기는 기간이 짧으면 금리도 낮아진다. 예를 들어 저축예금은 금리가 연 1.38%에 불과하다. 기업자유예금도 2.69%에 그친다. 은행들로서는 기간이 짧은 예금에 대해서는 금리를 높게 쳐줄 수 없다.예금자의 거의 절반이 놀랍게도 이자를 거의 주지 않는 상품에 돈을 넣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전체 예금의 절반에 가까운 46.5%, 금액으로는 353조원이 6개월 미만 단기저축성 상품에 들어 있다. 왜인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불안해서다. 은행 예금이 10% 이상 충분히 높으면 물론 다른 기회를 희생해서라도 장기예금에 돈을 넣겠지만 부동산이며 주식시장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은행에 돈을 길게 넣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그래서 시중자금이 단기부동화한다. 시중자금의 부동화라는 것이 돈들이 하늘을 떠다닌다는 뜻은 아니다. 은행에 들어오지만 전부 방안에 들어서지 않고 문간에 기대어 서성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자는 필요 없고 일정기간 돈을 보호만 해달라는 식이다.일본형의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인지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라는 말은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그의 유동성 선호이론을 설명하면서 세웠던 개념이다. 이자가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투자자들이 이자가 되올라갈 것으로 믿고 보유채권을 모두 팔아치우는 대신 오직 현금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용어의 의미가 최근에는 약간 달라졌다. 금융시장이 금리정책에 도통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해 이자가 너무 떨어져 이자로서의 기능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 됐다.실제로 일본은 이자가 워낙 떨어져 더 이상 금리를 가지고 경기를 부양하는 등의 방법을 써볼 도리마저 없어진 상황이다. 일본은 1억엔 미만 정기예금금리가 0.20%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재할인율은 0.25%다.지난 95년만 해도 예금금리가 3.60%는 되었으나 지금은 아예 금리가 없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상황으로 몰린 것 같지는 않다. 금리동향에 따라 시중자금 흐름도 적절하게 반응하며 출렁거리고 있다. 이자가 충분히 낮다고는 하지만 채권시장은 오히려 강세다. 국고채와 회사채 모두 수익률이 내리는(채권값은 올라가는) 상황이다.대출금리도 최근에는 올라가고 있다. 은행 문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엄살만은 아니다. 통화문제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한창 여울목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내수부양을 위해 마구 풀어놓았던 돈이 조금씩 걷히는 중이라는 말도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일본형 초저금리라는 재앙이 기다릴 것인지, 아직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