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맥주 인수 뒤 공격경영 강화
‘한국맥주의 대명사에서 외국계 기업 7위까지.’지난 10년간의 오비맥주의 내력을 표현한 구절이다. 지난 90년대 초반만 해도 오비맥주는 가히 ‘한국맥주의 대명사’였다. 맥주하면 누구나 오비를 떠올렸고 그만큼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하이트, 카스 등의 경쟁 브랜드가 등장하며 점유율 하락 등으로 오비맥주는 큰 위기를 맞는다. 지난 93년 첫 출시된 하이트맥주는 ‘암반천연수’를 무기로 첫해에만 30%의 시장점유율을 올려 오비맥주의 ‘철옹성’을 강력히 위협했다.경쟁자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듬해인 94년에는 진로쿠어스에서 카스를 출시, 2년 만에 시장점유율 15%를 기록하며 큰 경쟁자로 성장했다. 이런 이유로 결국 96년에는 40여년 동안 지켜온 맥주시장 1위 자리를 하이트맥주에 내주었다. 이후에도 점유율은 계속 낮아져 지난 97년 IMF 위기 당시에는 30%대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기록했다.‘인터브루’ 인수 후 재기 발판 마련높은 부채비율, 낮아져만 가는 시장점유율로 경영난을 겪던 오비맥주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이를 타개하려는 시도를 했다. 당시 모그룹인 두산의 재무건실화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오비맥주 지분 절반을 벨기에 맥주업체인 ‘인터브루’에 넘기면서 합작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6월에는 나머지 지분 중 45%를 네덜란드 투자회사인 ‘홉스’에 매각, 외국계 기업으로 완전 탈바꿈했다.외국계 기업이 된 오비맥주는 요즘 성장의 원동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무제표를 봐도 이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회사가 올린 올해 상반기 매출은 6,500여억원.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5%나 증가한 수치다. 안정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한층 높이고 있다. 지난 97년 IMF 위기 당시 600%를 웃돌던 부채비율은 지난 6월 말 현재 110%에 불과하다.그렇다면 매출증대, 재무안정 등의 성과를 올린 비결은 뭘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카스맥주와의 합병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카스는 20대 젊은층의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 벨기에 인터브루의 두산 맥주 부문 사업양수 이후 자금력이 탄탄해지자 지난 99년에는 국제공개입찰을 통해 경쟁업체인 진로쿠어스맥주(현 카스맥주)의 주식을 인수했던 것. 마침내 지난해 합병을 완료할 수 있었고, 이 덕에 매출증대, 재무구조안정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카스맥주 합병 이후 한때 20%포인트 이상 벌어졌던 하이트맥주와의 시장점유율 격차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실제 지난해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은 카스맥주까지 포함해 45%를 기록해 1위인 하이트맥주와의 격차가 불과 9%포인트밖에 나지 않는다.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맥주시장에서 점유율 1%를 높이는 데 드는 마케팅 비용은 줄잡아 200억원 선”이라며 “오비맥주에는 부담이 되는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앞으로 성장을 유지하려면 ‘자금력’이라는 큰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오비맥주의 성장에는 ‘월드컵 특수’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지난 월드컵 기간에 국내 맥주 소비는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특히 오비맥주는 축구국가대표팀 공식후원, 국내 프로축구팀 협찬 등 스포츠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많은 성과를 올렸다.회사측은 “오비라거가 국내 최고 브랜드의 위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카스에 대한 젊은층의 폭발적인 사랑이 계속될 수 있도록 마케팅 및 품질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또한 카프리 브랜드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맥주시장에서의 판매성장과 해외수출시장 확대에도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소개한다.돋보기 / OB 역사1등 달리다 ‘하이트 맹폭’에 주인 바뀌어오비맥주의 모태가 된 것은 ‘소화기린맥주’이다. 지난 1933년 창립된 소화기린맥주에는 당시 포목상으로 대성한 ‘박승직 상점’이 주주로 참석했으며, 총자본금은 당시 돈 300만원이었다. 당시 고가였던 맥주는 선물용이나 명동, 무교동 등지의 번화가에서 주로 소비되었다.2차대전 종전 후 일본인 철수에 따라 종업원으로 구성된 자치위원회에서는 연고가 있는 경영자를 추대했고 ‘박승직 상점’의 상무이던 박두병이 선임돼 45년 결산서류 및 공장설비 일체를 일본인으로부터 인수받았다. 이때가 바로 오비맥주의 본격적인 출발점인 셈이다.한국전쟁 당시인 52년 상공부와 매매계약을 체결, ‘동양맥주’라는 민간기업으로 정식 출범한다. 60년대 들어 가정 수요의 증가와 군납, 외국항공기, 관광접객업소 등 특수판매부문 개척 등으로 65년 처음으로 맥주판매 100만 상자를 돌파하게 된다. 수요가 워낙 몰리다 보니 오비맥주는 전 공정에 걸쳐 생산능력을 세 배로 확장하는 등 대폭적인 증설을 서두른다. 판매량에 있어서도 60% 이상의 시장점유율로 줄곧 선두를 고수한다.지난 77년은 오비맥주의 황금기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수출 100억달러 달성과 중동 건설경기 붐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졌으며, 이에 따라 맥주의 판매량이 급증해 급기야 품귀현상까지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후 오비맥주는 순매출액이 연 51%씩 증가하고, 이익도 100% 이상씩 신장하는 기록을 세웠다.하지만 경기침체를 맞이한 80년에는 매출액이 전년 대비 10%나 감소했으며 순이익은 무려 84.5%나 격감하는 등 위기를 맞는다. 이 당시 경영여건을 개선하고 새로운 맥주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체인점이다. 이런 체인점 열풍은 다른 경쟁사와 더불어 오비맥주를 뜨겁게 달군다.해외의 유명맥주가 본격적으로 우리 시장에 유입된 지난 90년대 초반, 오비라거를 비롯해 카프리, 오비라이트, 오비사운드, 버드와이저 등 고객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내는 등 시장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계 2위 맥주업체인 ‘인터브루’와의 합작 및 국내 3위의 ‘카스맥주’까지 합병한 현재, 오비맥주의 횡보가 주목된다.돋보기 / 오비맥주의 ‘괴이한’ 홍보전략올해 <한경BUSINESS designtimesp=23198>가 선정한 외국계 100대 기업의 ‘뜨거운 감자’는 오비맥주다. 지분구조상으로는 분명 외국계 기업이지만 ‘오비맥주는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이 회사 홍보실도 바로 이 점에 신경을 쓴다.“오비맥주가 외국계라는 인식이 퍼지면 매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이클 글로버 대표이사가 주류업계 전문지를 제외한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지 않으며 언론사에 사진조차 제공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현재 오비맥주는 어느 외국계 기업보다도 현지화 전략에 앞장서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지역연고가 크게 작용하는 주류업계에서 외국계 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마케팅을 펼친 점은 다른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