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교, 중국 한류열풍 불 지펴...최근 화교계 자본 급속 유입, 부동산 등 매입
‘밥 짓는 곳에는 차이나타운이 있다.’ 세계 구석구석 침투해 탁월한 현지 적응력을 자랑하는 화교들을 일컫는 이 말도 국내에는 무색할 지경이다. 오히려 한국의 경우 잘 성장하던 차이나타운마저 강압적인 경제정책으로 없애버린 유일한 나라라는 오명을 지니고 있다.실제 과거 10만명에 육박했던 국내 화교들은 현재 2만여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정부의 강압정책에 못이겨 한국을 등졌던 화교들 사이에서 최근 한국으로 귀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과거에 비해 화교들에 대한 각종 규제가 완화되고 부동산 소유제한, 주식 보유 등 화교들이 한국에서 재산을 취득하고 증식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넓어졌기 때문이다.원국동 한국화교경제인협회 회장은 “얼마전 졸업 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한성화교고등학교 동창회를 열었다”며 “절반 이상이 대만이나 중국 등 해외에 나가 있지만 한국으로 다시 오려는 친구들도 다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화교 역시 규제 완화와 맞물려 과거 요식업에서 이제는 다양한 직종에 포진해 중국과 동남아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국내 화교기업인들의 공통점이라면 어떤 업종이든지 화교들의 비즈니스는 대부분 업계 모임인 ‘협회’와 연결돼 있다는 것. 여행업은 여행업대로, 포장업은 포장업대로 소규모의 조직을 만들어 업계 동향을 공유한다. 결국 국내 화교들의 활동 모습 역시 중국인들이 가장 중요시 한다는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업종별로 끈끈한 네트워크 형성“화교가 경영하는 중국음식점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서울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교민회 한성화교협회의 양덕반 회장은 요식업보다 여행업계에 종사하는 화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중국, 홍콩, 대만 등지의 관광객들 중 90%가 화교가 경영하는 여행사를 이용합니다.여행업의 경우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전보다 개방화가 이뤄진 것이 기회가 된 것이죠.” 화교하면 떠오르는 요식업은 수적인 증가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느껴지는 변화가 크다.소규모의 음식점을 경영하던 유형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호텔 중식부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화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의 맨하탄호텔이나 코리아나호텔의 경우 중식부는 아예 아웃소싱 개념으로 화교들이 꾸려나가고 있다.요식업에 진출한 화교들이 ‘전문화’ 바람을 타고 있다면 여행업을 비롯해 최근 화교들 사이에 주목받는 몇몇 업종들은 언어를 활용한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여행업은 크게 국내에 해외여행객을 유치하는 인바운드 회사와 해외로 나가는 국내 여행객을 연결해주는 아웃바운드 회사로 나뉜다. 화교의 진출이 활발해 경쟁이 치열한 분야는 인바운드다. 중국이나 대만 현지 여행사들과 제휴해 관광객을 유치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한 가이드, 잡화점 등이 이들이 주로 진출해 있는 분야다.특히 중국관광객들이 좋아하는 자수정이나 홍삼, 동충하초 등을 취급하는 관광기념품점 역시 화교들이 활동하는 빼놓을 수 없는 비즈니스 아이템이다.여행업과 더불어 틈새공략에 성공한 업종의 하나로 ‘포장센터’가 있다. 서울 회현동과 연남동 일대에 약 70개의 업체가 모여 있는 포장센터는 역시 화교의 언어구사력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다.최근 10년 사이에 동대문 대형상가의 의류나 액세서리가 동남아권의 주요수출품으로 부각되면서 함께 등장한 것이 이들 포장센터다. 옷을 포장해서 수출국가로 보내는 것이 포장센터의 주요업무다. 제품을 전달받아 부치면서 발생하는 약간의 수수료가 수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 사업도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소연한다.동대문 제품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높은 품질로 대만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최근에는 더 저렴한 중국제품에 밀려 인기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포장수출 종사자들의 수입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회현동에서 포장센터를 경영하는 한 화교는 “그래도 아직까지 액세서리와 아동복이 대만인들에게 인기가 있어 견딜 만하다”면서 “그러나 중국경제의 급격한 성장세는 이 업종에 종사하는 화교는 물론 한국경제도 위협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중국 현지에 공장을 세워 생산ㆍ가공한 농수산물을 들여오는 등 생산업까지 진출하기 시작했다. 현재 주목받는 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게임업도 화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온라인 게임 뮤를 서비스하는 국내 게임업체 웹젠과 계약을 맺은 대만의 이지건 인스리아 사장은 크게 화제가 됐었다. 특히 그는 <가을동화 designtimesp=23237>와 <겨울연가 designtimesp=23238> 등의 드라마를 대만에 공급해 한류열풍을 일으킨 ‘화려한 전적’이 있다.화교자본 부동산 투자 급증국내 화교들에 대한 규제가 자유로워지고 한국 IT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세계화교자본의 한국진출도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국내 진출 화교자본 중 두드러진 분야는 부동산을 통한 직접투자 형태다. 한해 1,000억달러(약 120조원)의 운영자금을 자랑하는 싱가포르투자청(GIC)이 대표적인 예다.GIC는 2000년 말 서울 송파구 한라시그마타워 1~11층을 330억원에 매입하면서 국내에 첫 발을 내디뎠다. 지난해 6월에는 서울 중구 국내 최대 규모인 파이낸스센터를 3,550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7월에는 서울 회현동 아시아나빌딩을 500억원에 매입해 국내 부동산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GIC의 국내 진출을 돕고 있는 부동산컨설팅회사 BHP코리아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도 꾸준히 국내 빌딩매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며 “조만간 본격적으로 매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99년 서울힐튼호텔을 사들여 주목을 끈 홍룡그룹도 대표적인 싱가포르계 화교기업이다. 힐튼호텔을 2억2,000만달러에 사들인 이 그룹은 힐튼호텔 외에도 서울시티타워, 명동 센트럴빌딩 등을 보유하고 있다. 대만계 화교회사들의 투자도 눈에 띈다.2000년 말 르위에구앙사가 모토로라코리아의 파주 공장을 인수하는 데 1억6,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대만 국민당의 재산을 관리하는 중국개발신탁은행(CDIB)은 지금까지 벤처캐피털 등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금융권에서도 화교자본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올해 초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주식 중 세계 화교자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싱가포르(3.2%), 말레이시아(5.2%), 홍콩(2.3%) 등 중화권이 소유하는 비중이 10%가 넘는다. 특히 채권의 경우 화교자본의 힘은 무서울 정도. 전체 비율 중 2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이렇게 화교자본이 서서히 밀려오면서 국내 화교들도 해외 화교자본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99년 설립된 한국화교경제인협회가 대표적인 예. 이 협회는 산업자원부에서 직접 나서 세계 화교 네트워크를 활용, 화교자본을 국내에 유치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99년부터 세계화상대회에 참가해 전세계 80여개국의 중화총상회와 자매결연을 맺는 등 국내 화교자본의 유입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