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수박ㆍ해커스 등 수명 6개월 미만 수두룩 … 소비자 니즈 읽은 ‘아침햇살’로 부활
“매각을 추진해야 합니다.”“안됩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오.”“회사를 파산시킬 작정입니까.”“승산은 충분하다니요.”1999년 1월, 웅진그룹 중역회의에서 3년간 450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하며 그룹의 계륵으로 전락한 웅진식품에 대한 처리로 격론이 벌어졌다. 대다수 임원들은 “매각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당시 37세의 젊은 나이로 대표이사에 오른 조운호 웅진식품 사장(40)은 “쌀로 만든 ‘아침햇살’이 웅진식품을 살려낼 것”이라며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상품 출시를 밀어붙였다.조사장의 모험은 대성공이었다. 아침햇살은 출시 첫해인 99년에 400억원의 매출을 올려 대히트의 전주곡을 울렸다. 2000년에는 두 배가 넘는 900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음료시장에 ‘곡물음료’라는 새로운 장르(카테고리)를 개척했다.조사장이 사장단회의에서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침햇살’의 성공을 자신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가을대추’의 성공 뒤 2년 동안 후속제품이 연이어 실패한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의 길’을 알면 ‘성공의 길’도 보이는 법.왜 실패했나웅진식품이 음료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95년. 웅진은 원래 연간매출액 50억~60억원대의 중소인삼제조업체. 게다가 만년적자 상태였다. ‘살길 찾기’의 한 방편으로 음료사업에 뛰어든 것. 처녀작인 ‘가을대추’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인삼회사에서 음료회사로 연착륙했다.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성공 뒤에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비락식혜’의 히트로 한때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음료시장에 진입한 비락이 대형 경쟁업체의 집중견제와 후속품 개발의 소홀로 한국야쿠르트에 음료판매권은 넘겨줬던 것. 이 사건을 계기로 전통음료 시장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95년 1,200억원에 달했던 시장규모도 96년 800억원대로 줄어들었다.웅진 역시 가을대추의 명성을 이어갈 스타상품을 내놓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2의 가을대추를 기대하며 ‘여름수박’ 등 계절음료를 잇달아 출시했지만 모두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당했다.주요 실패원인은 사전조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소비자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대충대충 상품을 출시했다.보통 제품을 내놓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름수박의 경우 4개월 만에 뚝딱 내놓은 상품이다. 또한 우리 고유의 입맛에 맞는 자체 향이 아닌 서양수박 워터메론향을 쓴 것이 까다로운 소비자들로부터 냉대를 받은 이유였다.족히 1~2년은 걸리는 수박향의 개발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워터메론향을 쓴 이유였다. 대박을 기대하고 초도 상품을 100만개나 찍었지만 시중에 깔린 지 한 달이 지나고부터 반품이 ‘정신없이’ 들어왔다. 이어 미투(Mee-Too)제품인 ‘겨울식혜’ ‘봄 딸기’ ‘가을단감’ 등 계절식품을 이용한 음료들을 잇달아 출시했으나 ‘여름수박’의 뒤를 이어 실패를 거듭했다. 출시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로 인해 300억원의 적자를 짊어지게 됐다.국내 음료시장은 주스류와 탄산음료가 주류다. 게다가 롯데, 해태, 네슬레 등 대형업체들이 시장의 80% 이상을 과점하고 있다. 자금력은 물론 유통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웅진이 틈새를 공략하지 않고 메이저 업체들과 대등한 경쟁을 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다.그러나 ‘여름수박’ 등 계절식품에 실패한 뒤 안정적으로 음료시장에 정착해야 한다는 전략을 폈다. 이에 따라 시장규모가 큰 탄산시장에 뛰어든 것. 대표적인 제품이 젊은층을 겨냥해 만든 ‘해커스’다. 콜라에 커피를 섞어 만든 음료로 커피를 선호하는 소비자와 콜라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입맛을 결합시켜 만든 저탄산음료다.그러나 커피 또는 콜라를 선호하는 개별적 선호도가 높은 젊은층에게는 이 컨셉이 먹혀들지 않았다. 여기에다 웅진이 음료사업을 시작하면서 표방했던 ‘우리 마실거리를 담아야 한다’는 제품개발 철학에도 크게 벗어난 제품이라는 것이 웅진 관계자의 설명이다.웅진은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연이어 저탄산음료 ‘데킬라’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멕시코 전통주인 데킬라를 0.1% 함유해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탄산과 과즙, 그리고 알코올이라는 소재를 접목시킨 것으로 가수 박진영을 모델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이 또한 소비자의 잠재된 욕구를 좇기보다 단순히 매출확장을 위해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한 것으로 결국 시장에서 실패하고 만다.이밖에도 기존 대기업의 집중견제도 웅진을 어렵게 했다. 또 계절음료의 경우 브랜드 자체의 역기능이 문제가 됐다. 계절 브랜드가 인지도 제고에는 유리하지만 음료소비를 해당 계절에 한정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어떻게 활용했나거듭되는 실패로 웅진의 적자는 450억원이 넘었다. 여기에다 IMF 위기까지 겹치면서 회사는 문닫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바로 이 시점에서 웅진은 과거를 냉정하게 되돌아보았다. 그 결과 정확한 소비자 조사와 함께 소비자들의 잠재된 욕구에 부응하는 음료를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조사장은 “음료를 담는 용기가 서양에서 발명된 만큼 당연히 서양인들이 즐겨 먹는 오렌지, 포도, 커피 등을 담기에 적격이라고 보고 용기와 음료 제조기술은 받아들이되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은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소재를 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이처럼 웅진의 뼈아픈 실패의 경험에서 나온 제품철학은 곧 ‘아침햇살’과 ‘초록매실’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웅진은 올 10월 450억원의 누적적자를 모두 털어냈다. 웅진은 앞으로도 곡물음료시장에서 승부를 걸 계획이다. 조사장은 “수요는 있으나 상품화되지 않은 것을 출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실패에서 배우는 교훈1.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라.‘가을수박’은 사전조사가 미비했다. 소비자들이 여름에 수박을 즐겨먹지만 워터메론향이 아니라 국내 수박향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사전조사를 통해 확인했어야 했다.2. 주류 트렌드를 좇지 마라.웅진은 자금력이나 유통망이 대형업체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다. 이런 상황에서 메이저 업체들이 점령한 시장에 같은 제품으로 뛰어드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3. 수요는 있으나 상품화되지 않는 것을 찾아라.가을대추, 아침햇살 등은 이제까지 상품화되지 않은 것을 개발해 성공한 제품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