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60만원씩 넣어야 20년 후 최저생계비 수준 연금 수혜
노후를 보장하는 돈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요즘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연금보험의 인기는 본래의 취지와는 무관하고 널리 알려져 있는 것과 다른 측면이 많다. 따라서 향후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적잖다는 경고가 자주 나온다.1. 연금보험은 세금탈루용으로 ‘딱’이다?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내과병원을 하고 있는 개업의 박모씨는 최근 평소 안면이 있던 A생명보험사의 모집인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연금보험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박씨는 “보험세일즈맨이 아예 ‘연금보험이란 7년짜리 비과세 적금이다’라고 정의했다”고 전했다. 세일즈맨은 박씨에게 이렇게 말했다.“요즘 의사들은 다 연금보험 드는데 당신만 모르고 있다니 말이 되느냐. 다달이 목돈을 넣으면서 7년 이상 해약 않고 유지하면 이자소득에 대해서 비과세된다. 비과세뿐만 아니라 개업의들이 이 상품에 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국세청에서 보험사에 넣어둔 돈은 파악을 못한다. 전산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득을 이 연금상품에 넣어버리면 매출을 숨길 수 있다. 월소득이 4,000만원쯤 되는 의사들은 이 상품에 매달 1,000만원씩 붓는다.”단지 이 영업인뿐만 아니라 비교적 재정상태에 여유가 있는 자영업자를 상대로 보험세일즈를 하는 이들이 대동소이한 논리를 전파하고 있다. 이보다 한술 더 떠 계좌이체를 통해 보험료를 내지 않고 아예 보험세일즈맨에게 보험료를 내도록 권유하기도 한다(이를 직납이라고 한다.) 은행 통장에 소득이 기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금융권 관계자들은 이 같은 보험세일즈맨들의 권유에는 사실과 사실이 아닌 부분이 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숨기려고 할 경우 장기상품인 연금보험에 돈을 묶어두면 효과가 있다는 것은 사실.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세무서에서 봉급생활자가 아닌 이들의 소득을 추정할 때 일반적으로 세금을 낸 것을 토대로 역산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비과세된 7년 이상의 납입보험료가 소득으로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보험사에 넣어둔 돈은 숨길 수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세무서에서 일부러 찾으려 할 경우는 보험계좌도 추적할 수 있다. 오히려 보험에 돈을 묻어둠으로써 지나치게 소득을 줄인 나머지 역으로 관할세무서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실제로 많은 보험세일즈맨들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유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보험 세일즈맨은 “워낙 바쁘고 자기 분야의 전문지식만 오래 쌓다 보니 세상물정에는 어두운 의사들이 의외로 많다”면서 “그래서 소득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말하면 솔깃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한편 재테크전문가들은 “실제로 소득을 감출 수 있느냐 여부보다 노후보장용이라는 연금보험의 본래 목적을 퇴색시키는 것이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연금보험이 엉뚱한 용도로 각광받는 현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의사나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A보험사 소속의 한 세일즈맨은 “한 계약당 월납입액 수백만원까지라는 제약이 있지만 한사람이 한꺼번에 여러 개의 연금보험에 가입하면 이런 제약은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계약을 여러 건 해서 한 달에 5,000만원, 3000만원씩 넣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만한 상품이 없다. 7년만 유지하면 평생 비과세에, 납입금액에 제한 없는 금융상품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라고 덧붙였다.2. 물가상승률 좇지 못하는 점 공지 안해연금보험을 크게 둘로 분류하면 정액연금과 변액연금으로 나뉜다. 이제까지 보통 연금보험이라고 하면 모두 정액연금을 말했다. 공시이율이나 약관대출금리 등 기준금리에 따라 얼마를 지급한다는 게 고정돼 있는 것을 정액연금이라고 한다. 은행으로 치면 예금에 가깝다. 반면 변액연금은 투자신탁회사의 펀드와 유사한 개념.소비자가 납입한 보험료를 각종 수단으로 운용해서 그 수익률에 따라 받게 될 연금이 달라지는 실적 배당형 상품이다. 역시 은행 상품에 비유하면 신탁에 해당한다. 외국에서는 변액연금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 변액연금이 선보인 것은 최근의 일이다.한 금융권 관계자는 “노후대비용이라면서 정액연금을 파는 것은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모럴 해저드에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금리시대를 맞아 연금보험이 보장하는 금액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금보험은 투자 원금이 100% 보장되는 안전한 투자이기 때문에 때로 인플레이션율보다 낮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금전적 손실은 없되 구매력은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보험사측 관계자는 “투자수익률이 인플레이션율을 따라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수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면서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맞는 상품이 있을 뿐 정액연금이나 변액연금 중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연금보험에 가입하면 보험세일즈맨들은 “매달 얼마씩 납입하면 몇 살부터 한달에 연금을 얼마씩 받게 된다”고 연금액을 예시해준다. 그런데 이때 제시되는 금액은 단순히 현재의 화폐가치 그대로 계산한 숫자일 뿐이다. 이 금액을 손에 넣게 될 시점에서의 실제 화폐가치가 얼마인지를 보여주는 보험세일즈맨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예를 들어 35세인 박모씨가 매달 15만원씩 20년 동안 납입하고 55세부터 연금을 종신지급받기로 계약했다. B사의 상품에 가입해 예상연금액을 계산해 보면 박씨는 55세부터 매달 48만5,000원을 지급받는다는 내용이 적힌 종이를 받게 된다.하지만 박씨가 55세가 되는 해는 지금부터 20년 후다. 20년 후의 48만5,000원을 물가상승률 4%로 계산해 보면 현재 돈 가치를 기준으로 약 22만원이다. 용돈밖에 되지 않는 액수다.그렇다면 노후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연금보험의 취지에 합당할 만한 금액을 20년 후에 연금으로 다달이 받으려면 현재 얼마씩 보험료로 납입해야 하는 것일까. 정부가 2003년 최저생계비로 예상하고 있는 금액은 104만원이다. 역시 물가상승률 4%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20년 후 이 금액은 227만원이 되어야 한다. 매달 최저생계비인 227만원을 연금으로 지급받으려면 박씨는 지금부터 20년 동안 다달이 60만원 이상의 연금보험료를 납입해야만 한다.한국펀드평가 우재룡 대표는 “변액연금이 늦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변액연금이라고 해서 모두 위험천만한 투자는 아니다”고 말했다. 변액연금 중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채권 중심으로 운용하는 종류가 있고,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고위험 고수익(High-Risk, High-Return)형도 있어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3. 올해 안에 가입해야 한다?최근 연금보험이 큰 인기를 얻게 된 데는 내년부터 새로운 경험생명표를 적용하게 된다는 점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많은 세일즈맨들이 이를 강조해서 영업을 하고 있고, 각종 매체도 ‘올해 안에 빨리 가입하세요’라고 보도하고 있다. “내년부터 새 경험생명표를 적용하면 연금보험금 지급기간이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보험료가 인상될 것”이라는 논리다.경험생명표란 보험료를 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통계표로, 이것이 바뀌면 적용되는 사망률이 변하기 때문에 보험료 역시 바뀌게 된다. 새 경험생명표는 평균수명이 늘어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대한생명 상품개발팀 직원은 “실제로 새 경험생명표가 적용되면 보험료가 오르는 것보다 받게 될 연금이 적어질 것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현재 30세인 사람이 10년 동안 월 30만원씩 보험료를 내고, 60세부터 연금을 지급받기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이 사람이 받을 금액은 현재 117만원이다. 새 경험생명표가 적용될 경우 110만원으로 줄어든다는 계산이다.하지만 경험생명표 조정에 의해 변경 적용되는 사망률보다 지급받게 될 연금액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적용이율이다. 보험사들은 연금보험에 공시이율이나 약관대출이율을 기준으로 한 변동금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이 이율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앞으로 금리가 더 떨어질 경우 받게 될 연금은 이보다 훨씬 더 줄어들 수 있다.또한 연금보험료에는 노후에 지급받게 될 연금뿐만 아니라 납입 도중에 가입자가 사망할 경우에 대한 보장도 포함돼 있다. 이 사망보장에 대한 보험료는 경험생명표가 바뀔 경우 오히려 내려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사망보장에 대한 보험료가 내려가는 것까지 고려하면 전체적으로 새 경험생명표 적용이 연금보험료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이처럼 연금 지급금액이 약간 줄어 들 가능성은 있으나 그 폭은 미미할 것으로 보이는데도 많은 보험사들이 이를 과장해 올해 안에 연금보험에 들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며 바람몰이 식으로 가입을 부추기는 영업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