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통신’에서 ‘실패한 통신’으로 전락 … 고객 니즈 파악 못한 게 화근
‘사막이든 남극이든 전세계 어디에서나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있습니다.’ 1995년 3월 출범한 (주)이리듐코리아의 이리듐(용어설명 참조)은 ‘꿈의 전화’로 통했다. 당시 이리듐은 전세계 통신업계를 발칵 뒤집은 매혹적인 사업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든 휴대전화로 통화가 가능한 환상적인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것처럼 보였다.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0년 3월. SK텔레콤은 위성전화 이리듐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주)이리듐코리아를 청산했다. SK텔레콤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것처럼 여겼던 이리듐사업의 마침표를 찍고 실패를 공식선언한 것이다.그럼 이리듐이 ‘꿈의 통신’에서 약 700억원(지분투자비용 8,700만달러)을 날려버린 ‘실패한 통신’으로 전락한 요인은 뭘까.왜 실패했나우선 SK텔레콤이 휴대전화 등 이동통신의 급속한 성장성을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애널리스트들은 보고 있다. 1998년 이리듐이 첫선을 보였을 때 국내 휴대전화업계는 급격한 성장을 거듭했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위성휴대전화의 등장에 맞서 일반 휴대전화업체들은 단말기가격을 대폭 낮췄다. 일부 업체는 가입자에게 단말기를 무료로 제공했다.휴대전화사용료도 50~70% 떨어졌을뿐더러 전국에 기지국이 설치되면서 통화품질도 예전보다 좋아졌다. 게다가 휴대전화업체들이 무게가 120g 이하의 초경량 단말기를 속속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리듐은 500g에 달하는 탱크 수준의 단말기를 고집해 이동전화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이리듐이 내세우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통신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휴대전화업체들이 해외에서도 단말기 사용이 가능한 ‘로밍’ 기술을 속속 개발하면서 빛을 잃었다. 소비자들이 굳이 350만~400만원 정도의 비싼 이리듐 단말기를 구입할 까닭이 없어진 것이다. 당시 이리듐사업에 참여했던 최효진 SK텔레콤 상무는 “이리듐사업을 2~3년 정도 빨리 시작했더라면 성공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이와 더불어 서비스 일정이 연기되고 단말기 공급이 지연되면서 소비자들에게 불신을 안긴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1998년 9월 상용서비스를 개시하겠다고 대대적인 홍보 및 마케팅을 펼쳤지만 서비스는 그해 11월로 연기됐다. 11월에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단말기의 공급이 차일피일 지연되고 위성과 단말기 고장이 잇달아 발생했다. 게다가 당초 약속과는 달리 실내 통화도 불가능할 정도로 기술적인 문제가 드러났다.1999년 작성된 SK텔레콤의 자체보고서에서도 ‘(이리듐) 인지도 상승곡선은 1998년 10월 광고비 동결 이후 급격한 망각을 야기했다’며 ‘(통화품질 불안 등으로) 예약가입자는 물론 대중의 부정적인 대이리듐 이미지가 형성됨에 따라 마케팅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이밖에도 기술만 보고 시장성은 보지 못했던 것이 실패의 주요원인이었다. 이리듐은 저궤도 인공위성 50개를 띄우는 등 기술개발과 관련해 총 50억달러를 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 이리듐 본사의 총부채가 30억달러에 달했다. 초기투자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것이다. 특히 위성통신의 성격상 완벽한 시스템이 되기 전에는 서비스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운용자금을 댈 만큼 수입을 내지 못했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아 투자에 비해 매출이 형편없이 적었기 때문이다.그러다 보니 이리듐 본사는 영업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운용자금이 끊겨버리고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SK텔레콤은 사업성에 대한 냉철한 검증 없이 대박을 노리고 뛰어들었다가 후폭풍을 맞은 셈이다.이에 대해 SK텔레콤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면서 “다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타이밍에 대한 계산이 잘못됐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이리듐이 1999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서 당시 국내 언론들이 “이러다간 970억원 가량의 손실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하자 SK텔레콤은 “모토롤러 같은 튼튼한 회사가 이리듐사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파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모토롤러나 일본 교세라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사업이 설마 실패하겠느냐는 안이한 태도가 투자 실패를 불러온 셈이다.SK텔레콤은 이리듐 본사가 파산한 이후 단말기 가격을 50만원대로 낮춘 ‘메트로 서비스’ 등 신기술과 다양한 마케팅 기법으로 늦게나마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어떻게 활용했나SK텔레콤은 청산과정에서 이리듐 위성전화, 위성페이저, 메트로서비스 등에 가입돼 있는 1만1,156명에게 단말기 구입비를 비롯해 가입비용 전체를 환불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기술진보와 소비자의 니즈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업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밝혔다.이리듐코리아의 실패는 SK텔레콤의 투자패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투자사업의 투자여부 평가 및 투자 후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있어 좀더 신중하고 실질적인 평가 및 분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최첨단 기술로 통하는 이리듐사업을 수행한 경험이 향후 SK텔레콤의 첨단사업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실패에서 배우는 교훈1. 이동통신의 변화속도를 읽어라.SK텔레콤 관계자는 휴대전화의 급성장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이리듐사업 실패의 주요원인으로 파악했다.2. 소비자와의 약속은 꼭 지켜라.단말기 공급이 지연되고 실내 통화가 되지 않는 등 약속이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소비자들의 불신을 자초했다.3. 첨단기술도 시장성이 없으면 사라진다.세계 어디서나 하나의 휴대전화로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업아이템이었지만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시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용어설명이리듐(Iridium)이란 ?미국의 모토롤러사가 제안한 시스템으로 지상 780㎞ 높이의 극궤도에 66개의 위성을 발사해 전세계를 하나의 통신망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 이 시스템을 개발할 당시 총 77개의 저궤도 위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원소번호 77번인 이리듐(Iridium)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러나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위성수는 66개로 줄어들었다.이리듐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위성체 내에 교환기가 탑재되고 위성간의 직접 링크 기능이 있어 전세계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 서비스 종류는 음성전화, 무선호출, 팩스, 데이터, 위치확인 등이다. 25억달러를 투자한 미국 모토롤러를 비롯해 독일의 페바콤, 일본의 교세라, 우리나라의 SK텔레콤 등 15개국 18개 업체가 참여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