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초. 롯데제과 제품개발팀에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1997년 8월 ‘빅히트’를 기대하며 출시했던 자일리톨껌의 판매실적이 저조해 시중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영업팀의 보고서가 올라왔기 때문.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편의점 ‘세븐일레븐’에만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면서 대안 찾기에 나섰다.제품개발팀은 1년여에 걸친 관찰 끝에 3가지 실패원인을 찾아냈다. 기존 껌 케이스에 담았기 때문에 차별성을 꾀하지 못했고 성분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으며 당시 껌값보다 비싸다는 가격 저항감 등으로 인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롯데는 2000년 5월 자일리톨껌을 다시 내놓았다. 케이스를 바꾸고 껌에다 코팅처리도 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컨셉의 제품이었다. 물론 이전에 부족했던 성분에 대한 홍보도 적극 펼쳤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180도 달라지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지금은 월 150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롯데제과의 효자상품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았다.반면 롯데제과와 비슷한 시기에 자일리톨껌을 출시했던 경쟁업체가 있었다. 이 업체는 롯데제과와 마찬가지로 매출부진이 계속되자 시중판매를 아예 중단했다. 그리고 이제껏 그래왔듯 수많은 실패 중의 하나로 치부하고 새로운 제품개발에 나섰다.두 업체는 똑같이 실패했지만 실패에 대해 태도가 달랐고, 이로 인해 결과도 상반되게 나타난 것이다.실패는 소중한 자산 인식 필요실패학 종주국 일본에서는 요즘 ‘실패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패야말로 ‘소중한 자산’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패에 대한 개념도 새로 정립했다. 사토 후미오 도시바 전 회장이 대표로 있는 일본 실패지식활용연구회는 실패를 ‘일어날 수밖에 없고 경험할수록 좋으며 성공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로 정의하고 있다.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면 결과적으로 실패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실제로 일본의 일류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실패활용법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져왔다. 예컨대 히타치가 1,000개의 자회사와 30만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린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을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실패보고서 제도’에서 찾는 것도 이런 사회분위기 때문이다. ‘실패보고서 제도’는 사소한 실수(실패)도 보고서로 남겨놓는 제도로 ‘실패경험분석회의’에서 원인규명을 통해 생산현장의 노하우 개선으로 연결하는 것이다.국내 기업들도 최근 실패를 자산으로 여기는 기업문화가 차츰 자리잡는 상황이다. 특히 SK텔레콤, 포스코, 국민은행, 웅진식품 등 해당업종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들 업체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고 이를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인 케이스다.SK텔레콤은 1995년 700억원을 들여 위성통신 전화서비스를 하는 이리듐코리아를 설립했지만 지난 11월 청산했다. 설립 당시에는 ‘꿈의 전화’로 불릴 정도로 각광받았지만 휴대전화의 기술발전과 고성장에 밀린 것. 비록 큰돈을 날렸지만 ‘기술변화와 소비자의 니즈를 읽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포스코의 ‘미니밀’도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통한다. 그러나 포스코는 실패를 일찍 인정하고 제2 미니밀 공장 건설을 중간에 중단했다. 철강전문가들은 포스코가 과잉 투자자산을 조기에 정리하거나 정상화시키지 못했다면 손실액이 엄청났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은행은 ‘오토론’이라는 신상품을 의욕적으로 내놓았다가 6개월 만에 약 1,000억원을 떼일 위기에 처해 판매를 중단한 아픈 경험이 있다. 이후 국민은행은 신규시장 진출 때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치는 등 신중을 기하고 있다.웅진식품은 실패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995년 ‘가을대추’의 성공 이후 10여개의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기존 시장에 뛰어들어 메이저업체들과 정면대결을 펼친 것이 실패원인으로 분석되자 ‘곡물음료’라는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해 ‘아침햇살’이라는 성공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그러나 아직도 대다수 기업들은 실패에 대한 인식이 일천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외식업체 A사는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중국시장에 진출했으나 9개 점포 중 6개가 문을 닫았다. A사 관계자에게 실패의 원인을 묻자 “아직 3개 점포가 남아있기 때문에 실패라는 용어를 쓰면 곤란하다”고 불쾌해했다. 실패를 드러내고 투명하게 원인규명을 하기보다 숨기기에 급급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반응은 단지 A사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일반적인 풍토로 해석해도 무방할 정도다.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작은 실패에 대한 적극적인 분석이 큰 실패를 막을 수 있다”며 “이제 국내 기업들도 실패활용법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