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는 올해 3개 큰 관문을 넘었다.’ 베이징의 한 신문이 올 중국경제를 돌아보면서 뽑은 제목이다.중국경제가 넘은 첫 번째 관문은 국내총생산(GDP) 10조위안(약 1,450조원)이다. 중국은 올해 약 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GDP 10조위안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 관문은 연간 외자유치 500억달러(실제투자 기준) 달성이다.중국은 이로써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외자유치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세 번째는 교역액 6,000억달러 돌파다. 올 10월까지의 교역량은 전년 동기 대비 20% 정도 증가했다. 이는 곧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주년의 거시경제 성적표이기도 하다. 중국언론들이 이를 보도하고 있는 것 역시 WTO 가입 1주년의 긍정적 효과를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WTO 가입은 거시경제뿐만 아니라 산업경제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ㆍ산업 전체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 WTO시대에 맞게 변하고 있다.가장 빨리 반응을 보인 것은 역시 기업이었다. 최근 중국에서 불고 있는 ‘MBA운동’은 WTO 가입 이후 중국기업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허베이성 철강업체인 청더강철은 처장(부장)급 이상 간부 전원에게 MBA 이수를 요구하고 있다. 국영기업인 이 회사는 선양 동베이대학과 제휴, 간부 MBA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간부들은 회사의 지원으로 1년 동안 이 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게 된다. 간부들은 관리학, 서방경영학, 회계학 등을 배우게 된다. 개방화ㆍ국제화 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영 노하우 얻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WTO 가입으로 야기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사영기업의 활약 역시 두드러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사영기업이 생기고 있는가 하면 일부 사영기업은 국영기업과 중국 내 외국 투자기업을 인수하기도 한다. 올 들어 6개월 동안 중국 전역에 설립된 사영기업수는 약 20만개.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하루 약 1,000개꼴로 사영기업이 생겨나는 것이다.외국 선진기업 R&D센터 설치 붐특히 중국 공산당은 지난 11월 개최한 제16차 당대회에서 사유재산 인정, 사영기업가의 당원 영입, 자본이익 인정 등 사영기업 육성책을 발표, ‘사영기업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사영기업 위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쓰촨성의 정보기술(IT) 분야 사영기업인 린펑그룹은 중국 사영기업 성장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미국 투자업체인 자링전력공사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파산한 미국 엔론이 소유하고 있던 지분을 모두 인수한 것. 이 회사는 지분 공개매각에서 굴지의 동업종 국영기업을 따돌리고 자링전력을 손에 넣었다.WTO 가입 이후 외국기업의 중국공략에도 질적 변화가 오고 있다. 투자액이 크게 증가하는 한편 투자분야가 기존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 금융, IT 분야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세계 최대 소매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11월에 베이징에서 ‘2003 중국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중국 내 매장을 현재 20개에서 내년 44개로 확대하겠다는 게 뼈대였다. 월마트 중국본부 관계자는 “이제 중국은 세계에 남아 있는 가장 잠재력이 큰 소매 유통시장”이라며 공격적 경영의지를 밝혔다. 경쟁자 까르푸 역시 매장을 현재 27개에서 오는 2007년 60개로 늘릴 계획이다.중국에서 불고 있는 외국 선진기업의 중국 R&D센터 설립 붐은 WTO 가입 이후 중국투자의 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중국에 설립된 선진 외국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는 약 100개. 특히 올 들어서만 약 30개가 문을 여는 등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모토롤러의 경우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지에 18개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한국기업으로는 삼성이 베이징 중관춘에 R&D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LG전자, SK 등도 최근 베이징과 상하이에 각각 R&D센터를 개소했다.다국적 기업의 R&D센터가 중국으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이다. 중국 R&D센터에서 거대한 중국 현지시장에 맞는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자는 취지다. 특히 이동통신, 가전, 자동차, 화공 등 중국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또 다른 이유는 인재활용 차원이다. 중국에는 값싸고 질 높은 IT인재가 풍부하다. 게다가 최근 미국, 유럽 등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해외유학파 인재들이 많아 기술의 국제화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델컴퓨터의 켄 랑세 상하이R&D센터 소장은 “270명 연구원 중 전원을 중국인재들로 채용했다”며 “이들의 평균연봉은 약 1만2,000달러로 미국에 비해 9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연구원들은 기술 습득 능력이 뛰어나다”며 “앞으로 5년 내에 연구원을 1,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다국적 기업은 또 중국 R&D센터를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다. 중국 R&D센터를 아시아시장 공략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R&D센터에서는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형’ 기술이 개발된다.중국대외경제무역부 다국적기업연구소의 왕즈러 소장은 “WTO 가입 이후 중국시장은 국제시장 조류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며 “사영기업과 외국 투자기업이 이를 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WTO 가입 이후 정부 역시 변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식량, 에너지 등 전략적 분야를 제외한 모든 일반상품에 대해 가격지도제도를 과감히 철폐했다. 그런가 하면 반독점법을 제정, 일부 기업의 독점을 막았다. 중국은 지난 9월 말 현재 WTO 규정에 위배되는 법규 830건을 폐지하기도 했다.중국정부가 최근 손대고 있는 분야는 금융개방. 외국인도 상하이 및 선전 주식시장에 상장된 ‘A주’(내국인 전용주)를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로써 중국은 자본시장 개방의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