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한ㆍ일월드컵 열기가 일본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지난 6월. 대회를 치른 10개 도시에서는 시합이 열리는 날마다 경기장 밖에서 또 다른 열전이 뜨겁게 펼쳐졌다. 싸움의 주인공은 일본축구대표팀의 유니폼을 만들어 팔던 스포츠용품 회사 ‘아디다스재팬’.이 회사는 한몫 잡기 위해 경기장 주변에서 좌판을 벌린 가짜 상품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단속하느라 5~6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투입, 힘겨운 숨바꼭질을 벌여야 했다. 일본에서 열린 모든 시합에 전담팀을 출동시킨 이 회사는 모두 40건의 경고서한을 모조품 판매업자들에게 띄웠다. 그리고 경고서한에 응하지 않은 업자들을 경찰에 고발, 모두 4군데를 구속시키도록 했다.그러나 아디다스재팬이 단속활동을 통해 적발한 모조 유니폼은 200장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었다. 모두 61만장을 제작해 이중 50만장을 일본 국내에서 판매한 것에 비하면 티끌에 불과한 소량이었다. 어찌 보면 별 소득도 챙기지 못한 채 행차만 요란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었다.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이 회사가 모조품 판매업자들과 벌인 숨바꼭질은 일본 유명기업들, 특히 소비재메이커들이 모조품 때문에 앓고 있는 속병을 생생히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지난 98년에 설립된 아디다스재팬이 일본시장에 진출하면서 본사로부터 부여받은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모조품 대책이었다.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하더라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산 저가 모조품을 막아내지 못하는 한 헛장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아디다스재팬은 세관과 시장을 통한 감시ㆍ단속활동을 동시에 전개했다.세관에 모조품의 특징과 구별법을 낱낱이 기재한 증빙서류와 수입중지요청서를 제출해 가짜가 일본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했다. 직원들은 모조품이 많이 나도는 시장과 노점을 뒤지고 다니며 제조ㆍ판매루트를 끈질기게 파헤치고 다녔다. 제조ㆍ판매를 중지하라는 경고서한을 받고도 응하지 않는 업자들을 가차 없이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이 모조품 업자들을 구속하는 현장에 아디다스재팬 직원들이 출동해 조사활동을 도와주기도 했다.이 두 가지 대책이 주효한 덕인지 몰라도 세관에 압수된 아디다스의 모조품은 98년 33만916점에서 99년 29만8,584점으로 줄어든 뒤 2001년에는 1,822점으로 급감했다. 다른 의류와 잡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조품 만들기가 쉬운 것으로 알려진 스포츠용품이었지만 감시의 눈이 매서운 것으로 소문나자 전문업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일본 반입을 줄인 것이다. 아디다스재팬측은 월드컵 기간 중 단속망에 걸린 모조품이 극히 적었던 것도 결국 그동안의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산리오 ‘헬로 키티’ 각국마다 상표등록이 회사의 한 임원은 “쾌거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경이적인 판매실적을 올린 배경에는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모조품을 단속한 효과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아디다스재팬의 사례는 모조품과의 전쟁에서 우수한 전과를 올린, 극히 드문 케이스로 분류되고 있다.일본 전문가들은 거액의 돈과 인력을 쏟아가며 모조품과 숨바꼭질을 해도 모조품의 공세를 좀처럼 차단하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로 시티즌 시계를 꼽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94년 전세계에서 유통되는 가짜 시티즌 시계가 연간 25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내고 대책마련에 힘을 쏟아왔다.모조품이 집중적으로 나도는 홍콩과 중국을 중심으로 제조ㆍ판매루트를 세밀히 조사하는 한편 현지 인력과 전문조직을 동원, 제조현장을 덮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모조품을 판매하는 시계상에게 상품을 대량 발주하는 방식으로 미끼를 던져 꼬리를 잡으려고 했다. 이를 위해 조사비용과 발주계약금 등 800만엔을 한꺼번에 지불하기도 했다.하지만 결과는 헛수고였다. 시티즌 시계는 공장을 덮친다는 정보가 새어나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지 조사업자와 모조품 제조업자, 그리고 단속 당국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다면 아무리 외국업체가 발버둥 쳐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게 시티즌 시계의 판단이다.시티즌 시계가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홍콩에서 대규모 전문조직을 적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으며 대만의 판매업자에게 신문에 사과 광고를 게재하도록 했다. 하지만 가짜시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유통량이 94년에 비해 거의 배에 달할 만큼 훨씬 더 늘어났다는 것이 시티즌 시계의 하소연이다.모조품의 증가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으로 시티즌 시계는 분석하고 있다. 모조품 제조기술의 발전속도가 눈부신데다 모조품이 대량 유통되는 지역이 중국, 홍콩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남미 등으로 광범위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전문가들은 모조품의 단속, 적발이 회사에 유형의 이익을 안겨주는 생산적 활동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를 방치할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안길 것이 분명하다고 전제, 모조품과의 싸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내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전문가들은 모조품으로부터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거액의 돈을 쏟아가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또 다른 케이스로 산리오를 들고 있다. 고양이 모양의 ‘헬로 키티’ 캐릭터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이 회사는 지적재산권의 확립, 보호를 위해 연간 15억엔의 거금을 쓰고 있다. 연간매출액의 1.2%와 맞먹는 수준이며 영업이익의 20%가 넘는 돈이다. 산리오가 거액의 돈을 모조품과의 전쟁에 투입하는 이유는 물론 캐릭터 보호 때문이다.캐릭터를 지키기 위해 쏟는 이 회사의 집념과 열의는 무섭도록 지독하다. 캐릭터 자체는 저작권관련법 적용대상이 되지만 ‘Hello Kitty’라는 문자는 국가마다 상표등록을 하지 않으면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이 회사는 모조품이 나올 만한 지역에 모조리 안전판을 설치해 놓고 있다.등록신청 건수가 너무 많다고 홍콩 당국이 처리를 거부하자 산리오 직원 한 명이 비행기로 수백 개의 상품을 싣고 날아가 하나하나 증거물로 제시하며 상표권 승인을 받아낸 일화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또 사원수첩에 직원들이 모조품을 발견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기재해 놓을 정도로 회사와 직원들이 합심해 가짜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해외의 경우 싱가포르에서는 일반 소비자들이 모조품을 신고할 경우 산리오의 상품을 반값에 살 수 있는 쿠폰을 증정하는 방식으로 자발적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모조품 판매업자에게 500만엔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신문 1면에 사과 광고를 게재하도록 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또 외국기업들이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것으로 소문난 중국에서도 전문판매업자들을 상대로 승소를 한 적도 있다.일본 전문가들은 중국의 눈부신 공업화와 모조품 제조기술의 발달로 유명 기업들의 가짜로 인해 치르는 고생이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공업 제품은 물론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조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국에서 이를 차단할 자금과 인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일본무역진흥회(JETRO)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이 모조품 대책을 위해 마련한 예산은 1개사당 2,000만엔 미만이 전체의 약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로세 마사시 변리사는 “중국은 모조품의 해결방식을 행정당국의 적발형 방식에서 당사자간 법적처리 방식으로 바꿀 전망”이라고 지적하면서 “소송비용, 증거수집 등을 감안할 때 모조품과의 싸움은 앞으로도 수월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