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룡M&C리서치 대표이사대학생 남녀 커플을 따라다니며 이들의 24시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커플이 극장에 가면 동행해 영화를 보고, 놀이공원에 가면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며 환호성을 지른다. 18~24세 소비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자동차 운전자의 옆자리에 일주일 동안 앉기도 한다. 자동차 구입자의 실생활을 조사하려는 의도에서다.이런 ‘동반 관찰 조사’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바로 한기룡 M&C리서치 사장(44)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한사장은 83년 한국갤럽에 입사, 90년까지 연구원으로 경력을 쌓았다. 85년 금강기획에서 일하기도 한 그는 90년 디자인포커스로 자리를 옮겨 기획실장직을 맡았다. 다년간의 리서처 경험을 밑거름삼아 91년 마케팅 리서치회사인 M&C리서치를 세웠다.“90년 이전에는 ‘트렌드’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습니다. 묶여 있던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다변화된 욕구가 나타날 수 없었던 거죠.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개개인의 소비실태가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점에 착안해 회사를 세웠죠.”소비자의 니즈와 구매방향, 트렌드를 분석하기 위해 리서치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서면이나 전화를 통한 설문조사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한사장이 선호하는 조사방법은 소비자의 잠재된 욕구를 파악할 수 있는 ‘동반 관찰 조사’다.“주부에게 ‘가장 최근에 무엇을 샀습니까’ 등의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주부 150명을 선정, 냉장고를 다일일이 열어봤고 할인점과 슈퍼마켓에도 동행했죠. 주부들에게 ‘이 물건을 왜 집었습니까’ 등 상세한 질문을 하며 하나하나의 행동을 모두 기록했습니다.”시간과 공을 들여 주부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이들의 식생활에 관한 보고서를 만든 이유는 뭘까. 고객사인 풀무원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이통통신회사, 화장품회사 등 10여개 회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한사장은 연말까지 자사의 의식주 문화를 총망라한 트렌드 전문 웹진(www. citystory.co.kr)을 개편할 계획이다. ‘훌륭한 리서처는 많은 것을 봐야 한다’는 지론을 펴온 그는 ‘많이 놀아보기’를 중요시한다. 조사연구원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는 한사장은 영화, 만화, 패션, 음식 등에 일가견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 미식가인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해장국이 먹고 싶은데 신사동 일대에 잘하는 집이 어디냐’ 등 맛집을 묻는 지인들이 많다.멀티플레이어인 그가 이끄는 M&C리서치의 비전도 남다르다. “리서치 회사 중 1위의 매출액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회사가 너무 커지면 심층적인 참여 관찰 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죠. ‘빅컴퍼니’가 아닌 ‘베스트 컴퍼니’가 비전입니다. 규모보다 품질 위주의 회사로 키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