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행장 '자식에게 도배시켜' , 엄길청 교수 '공짜 용돈 없다'

‘경제교육은 생활교육이다.’ 아이들에게 경제교육을 제대로 시키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부모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아울러 어릴 적부터 생활 속에서 아이들이 지켜야 할 룰을 만들어 따라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경제마인드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그렇다면 우리 주위에서 자녀 경제교육의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인사들은 어떻게 할까. 경제교육에 관한 한 부모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녀를 대해야 하는지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유명인사 4명의 ‘우리 가정 경제교육’ 스토리를 소개한다.김정태 국민은행장김행장의 독특한 자녀교육법은 금융계에서 유명하다. 특히 김행장은 은행장다운 경제교육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행장이 자녀의 경제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은 ‘홀로서기’다.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도록 다각도로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김행장은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자 ‘독립적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다. 이후 아들이 대학 2년 때 이사를 했는데 도배를 직접 하라고 시키고, 김행장이 직접 시장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 대략적으로 알아봤다. 도배에 필요한 비용은 시장에서 조사한 것보다 10% 적게 주었다.아들은 며칠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더니 돈이 모자란다고 손을 벌렸다. 하지만 김행장은 “가진 돈의 범위 안에서 해결하라”고 나무랐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돈이 모자라면 항상 이런 식으로 할 거냐”고 물었다.대학원생이던 아들이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들에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을 분명히 전달했다. 결혼 후 생활비로 매월 100만원을 주고, 학교 근처에 전셋집을 마련해주는 대신 결혼식과 결혼비용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강조했다. 결국 아들은 무료인 구민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대학원을 졸업한 아들이 직장을 다니고 전셋집을 옮길 때도 김행장은 철저히 원칙을 지켰다. 돈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보태주지 않았다. 대신 “요즘 은행에 좋은 금리의 대출상품이 많으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아들은 두말 없이 은행에 찾아가 대출을 받아 전셋집 문제를 해결했다.이시형 신경정신과 박사이박사의 자녀 경제교육의 핵심은 ‘아이 판단에 맡겨라’다. 아이들 스스로 모든 일을 알아서 하고, 경제적인 것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직접 해결하도록 한다는 것. 이 박사는 “지금껏 아이들에게 용돈다운 용돈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이박사는 1남1녀의 자녀들에게 학창시절 거의 용돈을 주지 않았다. 대학 때뿐만 아니라 중고교시절에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주지 않았다. 다만 등록금은 직접 건네줬다. 자연 아이들은 늘 용돈이 부족했지만 그다지 불평은 하지 않았다. 고교를 졸업한 후에는 스스로 벌어서 쓰는 눈치였다.이박사는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 종자돈으로 500만원씩 줬다. 건네주면서 마지막으로 주는 돈임을 분명히 하고 “신발값이나 하라”고 말했다. 결혼을 하건 집을 장만하건 앞으로는 더 이상 돈을 주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결국 아들 결혼식 때도 일절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다. 패물 하나 사주지 않았다. 이박사는 “아들의 결혼식날 나는 그냥 하객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집 장만도 그동안 번 돈으로 능력에 맞게 하라고 말했다. 아들 역시 부모의 뜻을 잘 헤아려 스스로 결혼식을 준비하고, 집 문제 역시 해결했다.이박사는 자녀들에게 유난히 책임감을 강조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고, 스스로 알아서 모든 일을 처리하라고 강조했던 것. “경제교육의 왕도는 따로 없다고 봅니다. 다만 원칙을 정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엄길청 경기대 교수엄교수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 크게 세 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15세가 넘으면 ‘공짜’ 용돈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돈을 줄 때는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나중에 다시 갚게 하든가 청소나 심부름 등을 해 부모에게 뭔가 기여를 하도록 했다. 무임승차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또한 돈은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는 것이라는 점을 일러줬다. 저축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여기에는 저축을 할 경우 이자가 붙기 때문에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일깨워 줄 의도도 포함됐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아이들이 돈을 언제 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도 생겼다. 왜냐하면 통장에 돈을 넣어둘 경우 이자가 붙기 때문에 이자를 챙길지 아니면 그대로 써버릴지를 결정해야 했던 것.마지막으로 엄교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예컨대 부모에게 무엇이든 그냥 달라고 해서는 안되고 빌려달라고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가령 아이들이 모자나 가방 등이 필요할 경우 집안에 있는 물건이라도 그냥 갖다 쓰게 하기보다 부모에게 빌려달라고 말한 다음 사용하게 했다.형제 사이에도 이런 점은 분명히 하라고 가르쳤다. 동생이 형의 허리띠를 일시적으로 쓸 경우 그냥 갖다 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빌려달라고 해 동의를 받은 다음 사용하도록 했다.김준희 웅진닷컴 대표김대표는 슬하에 모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요즘치고 다소 많은 편이지만 자신만의 분명한 경제교육으로 아이들이 잘 성장하는 것 같아 아주 뿌듯하다고 말한다. 김대표가 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가장 큰 원칙은 ‘공짜는 없다’는 것. 아이가 어떤 물건을 갖고 싶어 할 경우 절대로 공짜로 사주는 법이 없고, 물건값의 일부를 부담하게 한다.한번은 셋째아이가 자전거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가격을 알아보니 새것은 16만원, 중고는 4만원이었다. 아이에게 어느 것을 사든 25%를 부담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고민 끝에 중고를 사겠다고 했고, 25%인 1만원을 내라고 했다.아이들에게 물건값의 일부를 부담시키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일부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특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절제하는 훈련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대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살 때 일정액을 부담시키는 만큼 돈을 벌 기회도 자주 준다. 집안일을 돕도록 하며, 청소도 시킨다. 또 할머니가 아플 때는 간병을 들게 하고 그에 걸맞은 돈을 준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일정한 액수의 돈을 주고, 아이들은 이것을 모았다가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부모에게 말해 함께 구입한다.김대표는 “이런 생활습관 덕에 우리 아이들은 대가없이 생기는 공짜를 바라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의식을 또래들보다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에 다니는 큰딸은 학비, 식비 이외의 거의 모든 비용을 아르바이트로 벌어서 쓰고 있다.김대표는 평소 좋은 경제교육은 부모가 올바르게 돈을 벌고,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돈은 반드시 땀 흘려 노력한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인가를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