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ㆍ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최근 몇 년간 저금리 기조와 금융권의 가계대출 확대 정책이 맞물리면서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났다. 2002년 9월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부채는 424조원에 이른다. 외환위기 전후로 가계부채가 200조원 내외였으니 몇 년 만에 가계부채가 두 배 이상 크게 늘어난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78%에 달하는 규모이고, 가구당 부채는 2,906만원으로 도시근로자 가구 연간소득액의 92%에 이른다.가계부채가 이처럼 크게 늘어나자 가계부실과 그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 금융부실 증가, 경제위기 재발과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가계부채는 우리 가계가 감당 불가능한 규모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현재 가계부채 규모는 감당가능한 수준이긴 하지만 잠재적 위험성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가계부채가 감당가능한 규모라고 보는 이유는 저금리 때문이다. 따라서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기만 한다면 현재의 가계부채 규모는 다소의 무리가 있더라도 감당할 정도의 수준은 된다.물론 복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계부채가 가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4분기만 해도 정부의 강력한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는 27조원이 늘어나 여전히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2003년 중반에 가계부채가 500조원을 넘어설 것이다.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과거에 비해 신용능력이 떨어지는 계층의 가계부채가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신용카드 관련 대출이 크게 늘어나 앞으로 이들의 부실 확대가 우려된다.이처럼 가계부채의 잠재적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정부와 금융기관이 일방적인 가계부채 억제책을 펴고 있어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갑자기 가계대출을 축소할 경우 기본적으로 상환능력이 있는 가계조차도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환을 위해 소비를 줄인다거나 주택을 매각하는 등의 대응이 불가피한데, 이는 부동산가격 폭락과 소비위축 등을 초래해 필요 이상의 경기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자칫 일어나지 않아도 될 신용대란을 오히려 조장할 수 있다.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계부채가 더 이상 크게 늘어나지 않으면서 안정화될 수 있도록 미세조정(Fine Tuning)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나 금융기관들은 갑작스러운 가계대출 축소전환과 같은 충격요법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늘어나는 신용불량자들에 대해서도 개인워크아웃 제도 등을 활용해 충격을 최소화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