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대기업만 100여개, 자산총액 20조원 넘어

재계판도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빅뱅에 비유될 정도로 순위변동이 심하다. IMF 외환 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들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반면, 체질개선에 실패한 기업들은 쇄락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일부 기업들이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며 태풍의 핵으로 등장, 재계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흔히 재계의 판도를 읽는 잣대로는 2가지가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산총액이다. 국내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마다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재계의 랭킹을 매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지나치게 덩치 위주로 기업을 평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그래서 요즘 들어 자주 이용되는 것이 매출액 기준이다. 자산총액에 비해 기업의 역동성과 활동성을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정부가 여전히 자산총액 기준으로 기업순위를 정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여기서도 일단 자산총액 기준으로 재계의 판도를 살펴보고, 매출액 면에서의 변화도 함께 소개한다.결론부터 말하면 몇 년 사이 재계판도에 부침이 있었고, 2003년 역시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2000년 4월 자산총액 기준으로 랭킹 10위 안에 들었던 기업집단(재벌) 가운데 지난해에도 톱10에 들었던 곳은 7곳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에 1위였던 현대가 8위로 처졌고 (주)대우, 쌍용 등은 아예 모습을 감췄다.현대차·한화 순위 상승 탄력받아대신 현대자동차그룹,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이 새로 자산총액 기준으로 10대 재벌에 포함됐다. 전체적으로 삼성이 단연 앞서는 가운데 LG와 SK가 위상을 다지고 있으며 현대차가 2001년 5위에서 지난해는 4위로 한 계단 올라선 것이 눈에 띈다.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앞으로 SK와 현대차, 한화 등의 행보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일례로 SK의 경우 최근 공격적인 경영으로 영토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양대 주력회사인 (주)SK와 SK텔레콤 산하에 정보기술, 인터넷, 생명공학 관련 자회사를 만드는 한편 신용카드사업 등을 통한 사업다각화에도 적극 나설 태세다. 재계에서는 SK텔레콤 가입고객과 SK주유소 이용고객이 향후 SK그룹의 엄청난 자산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현대차는 내수와 수출이 함께 활기를 띠면서 큰 폭의 순이익을 내는 등 경영여건이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어 기업경영을 하는 데 한결 여유를 갖게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용카드 시장에 진출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동차전문그룹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다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지난해 12월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를 인수한 한화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올해 한화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재계판도를 뒤흔들 주요 변수로 꼽고 있다. 특히 대한생명 인수를 계기로 지난해 11위에서 올해 8위권으로 껑충 뛸 것으로 분석되는데다 김승연 회장이 대한생명의 경영을 직접 챙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향후 한화그룹 전체에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조용하지만 강한 그룹’으로 정평이 나 있는 롯데의 움직임도 재계판도를 바꿀 큰 변수다. 롯데는 지난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도파백화점과 TGIF를 인수한 데 이어 유통업계 지존인 롯데백화점 고객을 바탕으로 신용카드와 금융서비스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매출액 기준으로 재계의 변화판도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이 현대자동차그룹이다. 지난 2000년 현대에서 계열분리돼 독자경영을 하고 있는 현대차는 당시 5위였던 매출액 기준 랭킹이 2001년 4위, 2002년 3위로 수직상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에는 “2002년의 경우 56조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SK그룹을 제치고 재계 3위로 부상했다”고 공식발표했다.매출액에서는 삼성의 독주가 지난해에도 계속돼 약 137조원의 매출액을 올린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LG 역시 110조원을 넘기며 2위 자리를 확고하게 지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톱10그룹 가운데 롯데의 선전도 눈에 띈다. 2000년 9위였던 롯데는 2001년 8위로 상승했고, 지난해에도 매출액을 늘려 7위 자리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분석된다.올해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면에서 재계판도를 바꿀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매각예정 기업을 어디가 차지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재계에서는 관측하고 있다.자산총액 9조원대 가스공사, 누가 인수하나현재 매각예정 기업으로 분류되는 대기업은 공기업을 포함해 100여개에 이른다. 총자산규모만 2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자연 인수합병(M&A) 결과에 따라 재계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물론 큰 폭의 순위변화도 예상된다.특히 자산총액이 무려 9조1,000억원에 이르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전력의 5개 발전자회사, 파워콤, 대한통운, 현대석유화학 등 덩치가 큰 기업을 인수할 경우 자산총액이 수직상승해 재계판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단적으로 한국가스공사의 자산총액이 두산그룹(9조원)보다 오히려 많은 상황이다. 현재 LG정유와 SK, 포스코 등의 국내 기업과 엑손모빌, 로열더치쉘 등 외국계 기업들이 인수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치고 있는 상태다. 다만 덩치가 워낙 커 새로운 주인을 맞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한전의 5개 발전자회사에 대해서는 에너지 관련 국내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SK, LG, 한화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여기에다 미국의 미란트와 엘파소 등 외국계 기업들도 인수경쟁에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인 상황이다. 이밖에 대한통운의 인수에 신세계, 제일제당, 롯데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올해 경영환경은 지난해보다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 역시 지난해보다 낮아져 5%대에 턱걸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업들로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역량확대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격적인 경영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재계판도를 뒤바꿀 기업이 있는가 하면 수성에 힘을 쏟으며 기회를 엿보는 기업들도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올해는 매물로 나온 대기업을 인수하는 곳과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이 재계순위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역시 재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