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의 합은 곧 전체와 같다’는 사고 경향이 있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잘못에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이름을 붙여놓았다. 더구나 현실에서는 부분의 합이 전체와 전혀 다른 경우가 오히려 일반적이다.폴 크루그먼은 ‘구성의 오류’라는 개념으로 제조업의 인력감소가 전체 실업자의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한 바 있다.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이 서비스업의 성장과 고용확대를 불러온다는 보충설명도 물론 덧붙이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도 적잖이 안심할 수 있겠다.인구는 하위산업에서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상위산업으로 이동해 가는 것이 원칙이다. 거꾸로 말하면 하위산업에서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위산업으로 인력이동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걱정하는 탈농(脫農), 이농(離農)도 그런 현상의 하나다. 농업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제조업으로의 인구이동이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로 거꾸로가 아니다.농사만 짓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이는 너무도 분명하다. 아홉 사람이 농사지어 열 사람이 먹고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농사지어 열 사람이 먹고사는 시대가 됐다.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지금 모든 세금의 기본이 되어 있는 10일조도 농업시대의 유산이다. 아홉 사람이 농사지어 열 사람(정부를 포함)이 먹고사는 체제는 정말 오랫동안 계속돼 온 메소포타미아 시절부터의 제도다. 한국은 농사인구를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하고 농토 역시 더 감축해야 한다.노동시장에도 ‘구성의 오류’에 기반을 둔 비슷한 사고가 횡행한다. 노무현 당선자 주변인물들의 노동시장 유연성에 대한 최근의 발언들이 오늘 우리의 연구과제다. 물론 그들이 당선자의 측근이며 이 나라 경제를 꾸려갈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들의 ‘믿거나 말거나 식’의 발언에 주목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56%에 이를 정도로 노동시장이 충분히, 때로는 과도하게 유연하다”는 것이 당선자 측근들이 주장하는 골자다. 이 주장에 따르면 노동시장은 이미 과도하게 유연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지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동관련 제도와 법령이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과연 그들의 말대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크다.노동시장이 조직노동자와 비조직노동자로 이분화돼 있고 조직노동자의 비조직노동자에 대한 약탈이 (착취라고 해도 좋다) 구조화돼 있는 상태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경우라면 조직된 노동시장이 과도하게 경직되어 있는 것이 ‘56%의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한국의 대기업들은 불행하게도 국제시장에서 가격수용자(Price Taker)들이다. 주어진 가격대로 물건을 파는 입장일 뿐 스스로 가격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윤율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조직노동자들이 존재할 경우 대기업들은 임금부담을 고스란히 중소하청업체에 전가하게 되고 이는 비조직 상태인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비극으로 몰아가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노동시장 부문별로 유연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다만 56%라는 수치를 내세워 전체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를 논하기 시작한다면 해답은 없다. 지난 대선에서는 조직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분이 후보로 나와 비조직노동자를 걱정하는 장광설을 내놓기도 했다.실인즉 고양이 쥐 걱정인 꼴이다. 새 정부를 구성할 분들은 노동시장의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부분과 전체를 같이 봐주기 바란다. 온정적인 노조정책은 자칫 비조직근로자들에게 또 하나의 재앙으로 다가올 뿐이다. 오는 봄이면 정부는 바로 그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