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새벽바다 키토 내츄럴 대표지난 98년 폐암으로 타계한 고 최종현 SK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회고록 <황제경영은 싫다 designtimesp=23411>가 출간돼 화제다. 이 책을 펴낸 주인공은 지난 81년부터 3년간 최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정원교씨(59). 지난 97년 SK에서 상무이사로 퇴직한 정씨는 이후 키토산생산업체인 ‘새벽바다 키토 내츄럴’을 경영하고 있다.회고록에 등장하는 최회장은 ‘근엄한’ 재벌총수가 아니라 해외출장 중 호텔 객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가 하면 만년필을 잃어버리고 며칠간 끙끙대는 ‘보통사람’이었다. 또 기업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겼던 인간중심의 경영철학을 간직한 휴머니스트 경영자로 기록돼 있다.지난 79년 당시 (주)선경 인사과장으로 입사한 정씨는 2년 만에 회장비서실로 옮겨 최회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비서출신. 국내는 물론 20여회의 해외출장을 함께 다녀와 최회장의 눈빛만 봐도 심중을 헤아리는 최측근으로 통했다. 그래서인지 기억을 더듬어 그려낸 최회장의 일상생활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그는 청탁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은 꼿꼿하고 합리적인 경영자로 최회장을 기억했다. 가령 최회장과 친밀한 관계였던 회고록 속 K씨와 관련한 일화가 그런 경우다. 주변에서 K씨에게 계열사 경영을 맡길 것을 권했지만 “가까운 사이라고 중책에 기용할 수는 없다”며 단호하게 물리쳤다. 사실 K씨는 회장의 친동생이었다.아울러 기업경영에서 남달리 사람을 중시했던 ‘인간경영’ 철학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담아냈다. 최회장은 ‘1년이나 2년을 밀어주고 끝내서는 곤란하다. 10년, 20년, 30년을 참고 기다리며 지원해야 비로소 그 열매가 맺어진다’고 늘 말했다고 한다.SK를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운 최회장이지만 다소 엉뚱한 면도 있었나 보다. “최회장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어요. 가령 사무실에 책상을 3개씩 붙여놓으면 ‘왜 3개씩 붙여놓았지’ 하고 물어서 담당자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현상이건 범상하게 보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합니다.”최회장이 타계한 지 만 4년이 지난 지금에야 회고록을 펴낸 이유에 대해 “최회장의 경영철학은 지금도 여전히 귀감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 기업 CEO들이 도덕적 탈선, 무분별한 사업확장 등으로 국가경제를 위기에 빠트리는 것을 보고 경종을 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 잘 키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 위주의 경영철학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생생하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그는 “회고록이 용비어천가로 비쳐질까봐 두렵다”며 “가능한 최회장의 어법을 그대로 옮길 정도로 사실 기록에 충실했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