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형 펀드’ 등 별난 상품 출현 예고… 한투운용, 조직개편 등 발빠른 대응

자산운용업법이 통과되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증권업계다. 그중에서도 특히 투신운용, 투신증권 및 자산운용사 등의 투신업계가 가장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운다. 장기적으로는 투신업계의 판도변화까지도 가능하다는 예상이다.이들은 운용자산이 다양해진다는 것과 이제까지는 증권사나 은행 등으로 제한돼 있었던 펀드판매사가 늘어난다는 것 등을 가장 큰 이슈로 받아들이고 있다.이제까지 투신운용사나 자산운용사가 펀드에 편입할 수 있었던 운용자산은 주식과 채권 및 주가지수 선물 옵션 등으로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자산운용업법은 운용자산의 제한을 대폭 없애게 된다. 원한다면 금을 사고팔아 이익을 내는 ‘금 펀드’나 곡물에 투자하는, 예컨대 ‘콩 펀드’ 등 무엇이나 다 나올 수 있다. 현실적으로 투신업계가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장외파생상품과 부동산.특히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안투자(Alternative investment)라고 해서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고 있는 운용방식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해지는데, 이는 헤지펀드들이 대표적으로 구사하는 방법이다. “요즘같이 달러가치가 하락할 때 ‘금 매매’를 통해 펀드수익률을 끌어올렸다”는 등의 외신보도는 이런 운용구조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그리고 펀드 안에 운용자산으로 또 다른 펀드를 편입하는 ‘펀드 오브 펀드’ 같은 상품도 가능해진다. 결국 자산운용업법이 자리를 잡으면 앞으로 수많은 형태의 새로운 펀드들이 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식시장의 등락에 관계없이 일정한 수익을 추구하는 유형의 펀드들이 다수 출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한투운용은 한발 앞서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편에 속한다. 지난해 12월 조직개편을 통해 ‘프로젝트 운용부’를 만들었다. 정순호 부장은 “앞으로 주식이나 채권뿐만 아니라 장외파생상품, 금, 부동산 등 제한 없이 다양한 상품에 투자를 할 수 있게 되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개편한 부서”라면서 “여러 투자 방법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다른 투신운용사들도 상품개발팀 등의 부서에서 비슷한 전략을 검토 중이다.판매·운용수수료 더욱 박해질 듯한편 자산운용업법은 그동안 증권사와 은행만 가능했던 펀드판매를 투신운용사, 자산운용사, 보험사까지도 가능하게 확대할 예정이다. 펀드판매사가 다양해진다는 것은 투신계열 증권사(한투, 현투, 대투증권)에는 심각한 위협이 된다. 비교적 양호한 수익원을 가진 일반 증권사와는 달리 투신계열 증권사는 수익의 대부분을 펀드판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특히 운용사들은 증권사를 거치지 않는 직접 판매가 가능해지면 법인고객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공산이 크다. 간접투자펀드 수탁고의 60% 이상이 법인자금인 현실을 고려하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그러지 않아도 떨어지고 있는 판매 및 운용 수수료는 점점 더 내려갈 것이다.이에 대해 투신협회 관계자는 “경쟁이 너무 심해지면 고객들은 대형사,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회사를 중심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중소형사들이 지금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 있으며, 이 같은 상황에서 중소형사가 살아남으려면 ‘파생상품 전문운용사’나 ‘리스크관리에서 독보적인 운용사’ ‘독특한 마케팅 노하우가 있는 운용사’ 등으로 특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진단했다.이렇게 경쟁이 심해질 경우 외국계 운용사가 선전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이에 대해 모건스탠리가 대주주인 랜드마크투신운용의 최홍 사장은 “단순 수익률보다 고객에게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케팅 위주의 전략이 주효하게 된다는 생각에 더욱 확신이 간다”고 말했다.한편 보험사들 또한 자산운용업법이 통과되면서 영향을 입게 된다. 펀드와 유사한 성격의 보험인 변액보험이 이 법의 우산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특별계정기획파트의 민성천 과장은 “자산운용업법이 워낙 큰 그림만 그려 놓고 많은 내용들을 시행령으로 미뤄 놓아 조심스럽게 추이를 지켜 보는 중”이라면서 “수탁사를 어디로 정할 것인지와 전산문제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보험사와 관련해 이보다 더 뜨거운 이슈는 자산운용업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보험사들도 펀드판매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이 회사 법인마케팅팀 박준범 과장은 “법인고객을 대상으로 한 수익증권판매 시장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고객뿐만 아니라 소매영업에서도 전국적으로 20만여명의 보험모집인들이 펀드를 팔기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수 있다. 이와 관련, 삼성생명은 곧 펀드판매 관련 TF팀을 구성할 예정이다.또한 자산운용업법의 주요 취지 중 하나가 수탁사의 역할을 늘려서 투자자의 보호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별도로 수탁사를 두지 않아도 됐던 보험사와 은행이 수탁은행을 따로 둬야 한다. 또 공정한 펀드운용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집중결제시스템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증권예탁원 등 인프라와 관련된 업계가 가장 앞서서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돋보기 / 재경부 vs 금감원 ‘신경전’‘간접투자시장 활성화’ vs ‘별로 달라질 것 없다’금융사들이 직접적으로 접하는 감독당국은 금융감독원이다. 하지만 자산운용업법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재경부. 더구나 자산운용업법을 둘러싸고 양쪽이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나타내고 있어 업계는 목을 길게 빼고 양쪽을 주시하며 진행 추이를 가늠하고 있는 상황이다.“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난 후 시행령 제정에 돌입하면 오히려 법안을 만들 때보다 훨씬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그래서 나온다. 주무부서인 재경부는 이 법안이 “간접투자 시장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면서 많은 기대를 걸고 또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이에 반해 금감원 관계자의 표현은 좀 달랐다. 금융감독원 신해용 자산운용감독국장은 “이미 있던 법을 하나로 모으는 것뿐이기 때문에 별로 새롭거나 크게 달라질 일도 없다”고 말했다. “이 법의 근본 취지가 업종별이 아닌 기능별로 가자는 것이니까 앞으로 감독기구 또한 기능별로 재편돼야 맞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재경부와 금감원은 매우 다른 답변을 했다.(현재 감독당국 조직은 은행, 비은행, 증권과 같이 업종 중심으로 나뉘어 있다.) 재경부는 “미래의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금융업종간 장벽이 허물어지는 추세이기도 하고,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반면 금감원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감독 기준이 하나면 그에 맞춰 동일하게 감독하면 될 뿐”이라고 대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투신사의 한 임원은 “이 법이 재경부와 금감원, 양쪽의 영향력 크기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미묘한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