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불황이 뭔지 몰라요.’‘실리콘힐’로 불리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자리잡은 델컴퓨터가 정보기술(IT)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에서도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999년 180억달러이던 매출이 올해 330억달러(추정)로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기간에 꾸준히 이익을 내면서 올해는 20억달러를 웃돌 전망이다.또 델의 공격적인 경영도 주목받고 있다. PC와 서버 시장에서 ‘세계 1위’를 굳힌 이 회사는 최근 데이터저장장치(스토리지), 네트워크장비, 프린터, 핸드헬드컴퓨터, 매장관리시스템(POS)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매출이 격감하고 적자에 허덕이면서 사업철수나 매각 등으로 ‘축소지향’의 경영을 하는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기업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최근 아시아 및 유럽지역 국가의 미국특파원들을 초청, 기업설명회를 가진 자리에서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37)은 “지난 9개 분기 동안 산업 평균보다 20% 이상 성장해 왔다”고 자랑했다.이 같은 고속성장의 배경에는 원가를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경영시스템이 있다. 델은 인터넷이나 전화로 주문을 받아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영업방법을 택해 싼 값에 컴퓨터를 파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델컴퓨터의 호황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효율적인 생산공정과 정보시스템이 경쟁력의 핵심이다.델의 생산공정은 주문형 생산(Build-To-Order) 무재고가 특징이다. 고객이 주문을 해야 부품발주가 이뤄진다. 부품은 2시간마다 공장으로 배달되며 그 즉시 생산라인에 투입된다. 완성된 제품은 공장에 대기 중인 트럭에 곧바로 실어 배달한다. 부품이나 완제품이 공장에 머무를 틈이 없다. 재고나 부품 보관기간은 평균 7시간에 불과하다.이 같은 효율적인 공장운영은 정보시스템이 떠받쳐 주고 있다. 델은 제품주문에서 부품조달 및 관리, 생산공정 관리, 애프터서비스(AS)를 처리하고 있다. 또 고객문의의 절반은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있다.델은 이 때문에 연구개발도 생산기술에 집중한다. 이 회사 공장의 벽에는 150여건의 특허증서가 걸려 있으며 이것들은 대부분 생산에 관련된 것들이다. 3,000여명의 연구개발인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연간 4억4,000만달러의 연구개발비를 이 부문에 주로 투입한 결과다. 델 회장은 “인텔,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에서 나온 기술을 재개발해 유용한 기술로 만드는 데 연구개발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델 회장은 신규사업 진출 타이밍을 잡는 데 독특한 기준을 갖고 있다. ‘표준화’가 그것이다. 델 회장은 “첨단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는 비싸고 마진도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술이 일반화되고 수익성도 낮아진다. 이때 우리는 이 시장에 진출한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 제품이 표준화단계에 접어든다. 델 회장은 “표준화된 제품을 값싸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한다.이 때문에 ‘아주 간단한 델의 비즈니스 모델’을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고 있다. 델 회장은 “10여년 전에 우리 모델을 따라 직판에 나선 PC업체가 여럿 생겼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앞으로 5년 내에 매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델의 자신감 넘치는 공격경영을 저지할 경쟁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