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비싸기로 악명이 높았던(2㎞ 기본운임 660엔) 일본의 택시가 가격파괴 바람에 휘말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토교통성이 꼭 1년 전인 지난 2002년 2월1일부터 ‘자유화’의 물꼬를 터 준 후 업체마다 요금인하 및 차종 다양화의 깃발을 높이 들고 고객확보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본 택시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싸움은 요금 한 가지만의 경쟁이 아니다. 요금을 내렸다지만 디플레이션 수렁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소비자들이 지갑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버스나 지하철만 죽어라 이용하는 상황에서는 택시는 아직도 머나먼 이웃일 뿐이다. 때문에 택시회사들은 생존을 위한 아이디어 싸움에 사력을 다하면서 기발한 서비스 개발에 목을 걸고 있다.인재파견회사가 운영하는 신설 택시회사 ‘아웃 테크놀로지’는 고령자 및 노약자 시중 서비스에서 활로를 찾는 대표적 업체다. 이 회사는 회원제 방식으로 고객을 확보, 월 2~3회씩 도쿄 외곽으로 나들이를 시켜주는 서비스를 기획 중이다.월 회비는 5만엔으로 예정하고 있으며 실비 정도만 부담하면 장거리 여행도 시켜주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이용고객들이 고령자인 점을 감안, 운전기사는 모두 여성으로 충원할 방침이다. 2월 중 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다.가나가와현을 영업거점으로 삼고 있는 ‘엔 케이 캡’ 등 10개 택시회사는 치매에 걸린 고령자가 집을 나갔을 때 고령자를 찾아주고 보살펴 주는 서비스를 검토 중이다. 차량에 장착돼 있는 전지구 측위시스템(GPS)을 활용, 차량 운전자끼리 긴밀한 연락을 취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택시 특유의 기동력을 바탕으로 24시간 대기하면서 고객의 요청만 있으면 언제든 출동할 태세를 갖출 방침이다. 이들 10개 회사는 이에 앞서 지난해 가을부터 ‘Q타쿠’(택시의 앞 글자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라는 이름으로 생활 구원 서비스를 선보여 고객들의 대호평을 받고 있다.Q타쿠는 장보기 등의 심부름 대행(10분에 500엔),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됐을 때 긴급출동(1,500엔부터) 등의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기민한 대응으로 고객층을 빠른 속도로 넓혀가고 있다.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의 이용건수는 약 460건으로 도입한 지 4개월 만에 약 3.5배나 늘어나는 눈부신 증가세를 기록했다. 고객이 승차해 있는 틈을 활용한 통신판매도 택시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타큐슈에 본사를 둔 다이이치 교통산업은 법인고객들과 제휴, 차내에 상품 카탈로그를 비치하고 주문까지 받아주는 방식의 통신판매를 계획 중이다.택시를 보다 편리한 시민의 발이 되게 하고, 이를 통해 경영난을 타개하도록 하려는 아이디어 짜내기에는 주무 관청인 국토교통성도 한몫을 거들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지난 1월 말부터 도쿄와 가와사키시 일대를 대상으로 택시를 이용한 신서비스 실험에 착수했다.500명 정도의 모니터요원을 모집, 장보기 대행에서 어린이의 학교, 학원 동행 및 애완동물 수송 등에 이르기까지 택시들이 ‘돈맥’을 캘 수 있는 사업이 어떤 것인가를 고객의 목소리를 통해 정밀 분석하고 있다.한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개정 도로운송법이 실시된 지난해 2월 이후 12월까지의 11개월간 136개사가 택시사업에 새로 뛰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불황으로 손님을 태우지 못한 빈 택시가 잔뜩 거리를 메우고 있어도 기존 업체를 위협하는 경쟁사는 급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적용하던 통상운임을 내려 받겠다고 신청한 회사는 360개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경쟁은 전에 없이 치열해지고 요금인하 싸움으로 수입마저 오그라든 시련 속에서 고감도 서비스를 외면하곤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전환기를 맞았음을 일본 택시회사들은 보여주고 있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