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파워 . 해외네트워크 막강 자신감...업계 "열악한 재무구조 극복이 관건" 지적

1월21일 서울 중구 대우빌딩에서 열린 대우인터내셔널의 기자간담회장. 밝은 표정으로 등장한 이태용 사장(57)은 2003년 사업계획과 미래비전에 대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발표했다. 주요내용은 수출중심 경영전략으로 초일류 종합상사로 도약하겠다는 것. 이사장은 “올 상반기 중에 워크아웃을 졸업하겠다”며 “오는 2007년까지 매출액 7조5,000억원에 순이익 1,750억원을 올리겠다”며 기염을 토했다.5년 후, 10년 후에도 신사업 진출이 아닌 ‘수출’ 한길로 먹고 살겠다는 이사장의 발표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LG상사, SK글로벌 등 4대 종합상사는 최근 다양한 신사업 진출을 통해 ‘종합상사’라는 무늬 벗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오죽하면 ‘돈 되는 것은 뭐든지 한다’는 일념으로 패션, 영화, 하우스맥주 등 별별 사업으로 진출하고 있을까. 이런 와중에 대우만이 ‘독불장군’처럼 수출전문기업으로 살아가겠다는 이유는 뭘까.워크아웃 특수상황도 작용대우인터내셔널(전 (주)대우)은 어떤 회사인가. 지난 67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설립한 대우그룹의 모기업으로 지난 70~80년대 현대종합상사와 수출액 1, 2위를 다툰 국내 종합상사의 대표주자였다.적어도 대우그룹이 ‘몰락의 길’을 걷기 직전까지는 그랬다. 2000년 3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가 그해 12월 3개 회사로 분할되면서 상사 부문은 대우인터내셔널로 독립했다. 당시 부채비율이 940%에 달할 정도로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 여파가 이어져 분할 첫해인 2001년 990억원의 적자를 내며 휘청거렸다.2002년 겨우 전열을 정비하고 재도약, 210억원(추정치)의 순이익을 올리며 ‘회생’의 불씨를 살려냈다.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비율도 343%로 대폭 줄였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당당한 ‘무역전사’였던 종합상사업계가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종합상사의 시대는 끝났다’고 서슴없이 외칠 정도로 종합상사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이 색 바랜 구호인 ‘수출전문기업’이라는 수익모델로 성공하겠다니, 그 배경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대우인터내셔널이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은 ‘워크아웃 중’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주된 배경 가운데 하나다.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싶어도 자금사정이 좋지 않을뿐더러 채권단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인터내셔널은 수출전문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 자신감은 경쟁사와 비교해 경쟁우위를 갖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물론 4대 종합상사와 대우인터내셔널의 처지 및 미래비전이 서로 다른 점을 감안해야 한다.우선 종합상사 경쟁력의 바탕인 해외네트워크가 튼튼하게 구축돼 있다는 것. 이사장도 “대우의 해외네트워크야말로 경쟁사에 비해 월등하다”고 자랑한다.그 이유가 뭘까. 대우인터내셔널은 47개 지사와 53개 해외투자법인 등 100개의 해외거점이 있다. (표 참조) 특히 세계 각지에 골고루 진출한 상황이다. 중국에 34개를 비롯해 유럽 14개, 중동 6개, 아프리카 10개, 중남미 4개 등 오대양육대주에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해외주재원도 약 200명으로 가장 많다. 일단 수적으로는 경쟁사 무역 부문을 앞서는 셈이다.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수적 우위는 물론이거니와 질적으로도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최근 화제를 모은 미얀마 해상광구가 그런 경우다. 대우인터내셔널이 6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이 광구는 예상매장량이 가스 10조㎥로 향후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광구개발권을 따낸 과정이 대우인터내셔널만의 노하우라고 은근히 자랑한다.대우가 미얀마에 진출한 것은 지난 86년. 당시 미얀마는 내전 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런 와중에 대우는 지사와 투자법인을 설립하는 등 미얀마에 대한 투자를 늦추지 않았다. 대우가 몸살을 앓고 있던 2000년 8월께였다.미얀마 군부의 최고지도자가 지사장을 불렀다. 그는 “대우가 힘들다고 들었다. 도와주고 싶다”며 선뜻 벵골만의 광구개발권을 내놓았다. 이렇게 획득한 광구개발권이 대박을 터뜨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우가 수십년 동안 닦아놓은 해외네트워크는 워크아웃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맨파워’가 뛰어나다는 것도 대우가 거듭 자랑하는 점이다. 경쟁사와는 달리 상사형 전문인력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의 무역 부문 인력은 837명. 이중 37%인 307명이 해외근무 경험이 있다. 특히 과장급 이상 375명 중 79%인 296명이 해외근무 경험을 갖고 있을 정도로 상사 노하우가 뛰어나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그렇다고 해도 대우가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핵심인력이 대거 이탈하지 않았을까. 물론 적잖은 인원이 중간에 떠났지만 핵심인력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대우 관계자의 설명이다.이는 해외네트워크망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만큼 해외근무 가능성이 높다는 메리트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워크아웃 중임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 충원도 별 걱정이 없다는 입장이다. 반기별로 15명씩 뽑는 수시채용에 평균 15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을 정도로 취업인력이 몰렸다고 회사측은 밝혔다.삼국간 거래비중 30%로 가장 높아삼국간 거래 및 중국 비중이 높다는 것도 대우가 수출전문기업으로 나가겠다는 비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종합상사들의 올해 사업계획 중 빠지지 않는 부문이 바로 삼국간 거래 비중을 늘리고 중국진출에 회사역량을 집중한다는 것이다.삼국간 거래는 외국 국가간의 무역을 중개하는 것으로 종합상사의 경쟁력을 재는 척도 중의 하나다. 따라서 막강한 해외네트워크와 정보망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말 기준 대우인터내셔널의 삼국간 거래 비중은 전체수출액의 30%에 달할 만큼 우수하다. 이는 비교적 삼국간 거래가 활발한 SK글로벌의 23%보다도 높다.삼국간 거래와 더불어 중국진출에도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떠오르는 시장’ 중국을 잡아야만 무역 부문의 위상을 지킬 수 있다는 게 종합상사들의 입장이다. 지난 90년 한ㆍ중수교가 있기 전부터 중국시장을 중시해 온 대우는 현재 100개의 해외네트워크 중 34개가 중국지역에 집중돼 있을 정도로 중국 거래비중이 높다. 2001년 중국지역에 710억달러를 수출해 전체수출액 중 약 21%를 기록했다.계열분리라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계열사 수출대행이 전혀 없다는 점도 대우인터내셔널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다. 국내 종합상사가 위기에 처한 것은 계열사 수출대행 의존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계열사 수출대행 수익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하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용도가 중요한 상사업계의 특성상 워크아웃기업의 한계는 뚜렷할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박진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계열사 대행물량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전형적인 상사형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영업이익으로 차입금을 줄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송계선 동원증권 애널리스트도 “수출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 수익원 창출이 어렵다”는 쪽에 무게중심을 뒀다.대우인터내셔널이 이런 업계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뚫고 ‘마이웨이’에 성공할 수 있을까. 대우인터내셔널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이제 종합상사는 죽었다’는 업계 중론을 뒤엎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