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는 글로벌 기업인 휴렛팩커드(HP)에서 분사한 다국적 기업이다. 미국의 본사는 벌써 3년째 일하기 훌륭한 ‘포천 100대 기업’에 선정되고 있다. 한국애질런트는 2002년 <한국경제신문 designtimesp=23522>이 선정한 훌륭한 일터 20대 기업에서 우수기업으로도 뽑혔었다. 국내외적으로 훌륭한 일터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연초부터 이 회사 건물의 각 층에 투명한 아크릴 상자가 하나씩 등장했다. ‘15㎝×25㎝×12㎝’ 크기의 작은 상자다. 투명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단단히 열쇠가 채워져 있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면에는 “애질런트의 마음을 담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있다.이름 하여 ‘피드백(Feedback)상자’라는 것이다. 회사측은 “경영진이 구성원의 의견과 목소리를 여과 없이 투명하게 수용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피드백상자는 본사의 각 층과 지방사업장에 총 9개가 설치돼 있다. 구성원들은 각자의 의견이나 칭찬하고 싶은 사원, 개인적인 고충을 적어 이 상자에 집어넣는다. 제안사항은 파란 봉투, 칭찬사항은 노란 봉투, 개인적 고충은 빨간 봉투와 같이 색깔이 정해져 있고 색깔별 봉투가 비치돼 있다. 그렇다고 꼭 봉투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봉투가 아닌 다른 것을 활용해도 된다.피드백상자는 군생활을 하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원수리함’과 같은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 주목할 만한 획기적인 제도는 아닌 것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 중의 하나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로써 중요한 것은 의견이나 고충이 접수됐을 때 그것을 처리해 가는 과정이다. 그 처리과정에 따라서 제도는 살아 움직일 수 있고 무의미한 것으로 묻혀 버릴 수도 있다.피드백상자는 사장실에서 직접 관리한다. 매월 정해진 날짜에 상자 속의 제안 고충 사안들이 수거된다. 사장은 사원들이 피드백을 통해 제안한 내용들을 검토하고 각 관련부서와 함께 답변을 정리한다.답변이 전달되는 채널은 세 가지 이상이다. 먼저 인트라넷을 통해 정해진 날짜에 각 의견과 이에 대한 상세한 답변이 전직원들에게 알려진다. 물론 개인적 고충에 관한 사항인 경우 이는 개별적인 방식을 통해 전달되고 대안이 제시된다.의사소통에 인간적인 면 강조회사에 바람직한 제안일 때는 전 임직원의 월례회의인 커피토크(Coffee Talk)를 통해서 전달된다. 제안자에게는 간단한 선물이 주어진다. 시행 첫 달에는 사내 뉴스레터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제안, 사내 행사시 선물증정을 추첨으로 하지 말고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자는 의견 등이 접수됐다.그렇다면 왜 피드백상자란 것을 만들었을까. 구성원의 의견을 접수하는 채널이 없었을까.이에 대해 회사측은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애질런트는 커뮤니케이션 형태나 방식에서 다양하다. 첨단의 방식에서 전통적인 방식,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채널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채널, 또 구성원 상호간의 채널 등 다양한 형태를 필요로 한다. 피드백상자는 그중의 하나다.”한국애질런트는 물론이고 많은 국내 기업들이 인트라넷이라는 첨단의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갖추고 있다.그러나 대개는 첨단의 방식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무대 뒤로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인트라넷이면 되는 세상에 “무엇 때문에 피드백상자와 같은 고전적인 방식이 필요한가”라는 인식에 빠지기 쉽다.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간의 의사소통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효율성만을 강조한 기계적인 소통에 일방적으로 의존한다면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인간적인 면을 집어넣어야 하는 셈이다.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김유숙씨는 “아무리 신속한 전자정보시대라고 해서 e메일이나 인터넷만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적으로 대면해 대화를 통해 쌓아가는 라포르(Rapportㆍ공감)를 형성하기 힘들다”며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피드백상자는 다른 커뮤니케이션 채널들과의 연계 채널 중의 하나다. 이를 통해 얻어진 제안이 커피토크란 대면적인 채널을 보완하게 되고 다시 ‘마니또 프로그램’이란 구성원 상호간의 장벽을 허무는 제도로 연결됨으로써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 채널로써의 위치를 정립하고 있다.한국애질런트에는 이밖에도 사내 뉴스레터와 인트라넷 노사협의회 등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운용되고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제도의 운영은 근본적으로 쌍방향의 오픈된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갖추겠다는 회사의 일관된 정책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일이 원만히 추진되는 데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엘테크의 브레인스토밍신뢰경영을 통해 훌륭한 일터(GWP)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강조돼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커뮤니케이션 체계이다.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대한 강조와 오픈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일관된 정책의 수립은 기업을 구성원 중심의 유기적인 공동체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경영진이 구성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믿음을 주어야 하고 그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자주 등장해서 눈으로 확인(Visible)시켜 주는 표현 양식들을 갖춰야 한다.입사해서 몇 년이 지나도 사장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들다면 구성원의 입에서 불평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회사와 관련된 사항을 회사 밖의 거래처 사람을 통해서 듣고 경영진의 활동을 오로지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효율적인 방식을 통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이 인트라넷과 같은 비대면적인 방식이라면 또 다른 형태의 채널을 갖출 필요가 있다. 때로는 매우 전통적인 형태의 대면적인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피드백상자는 전통적인 방식의 의견수렴채널이며 이것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이름이 그렇듯이) 피드백을 주는 과정이 잘 정비돼 있어야 한다. 또 이것만이 단독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 중의 하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채널 상호간의 보완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제안이나 의견 고충이 어떤 채널과 단계들을 거치면서 수렴돼 들어가도록 할 것인가를 구조화시키는 노력과 이에 대한 피드백 과정이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결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