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력 비율이 전체의 40% 차지, 네트워크도 부서별로 잘 짜여져

한국P&G(대표 앨 라즈와니)는 최근 노동부가 선정한 올해의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에 꼽혔다. 공직에 여성채용 목표제가 실시되는 것을 비롯해 노동부가 이 같은 기업을 선정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가 여성의 경제활동에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같은 조건이면 남성인력을 쓰겠다는 것이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며, 유엔이 조사한 ‘여성권한척도’에서 한국은 세계 64개국 중 61위로 꼴찌권이다.이런 상황에서 한국P&G의 ‘다양성 존중’이란 정책과 그 일환인 PSW(People Supporting Womenㆍ여성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P&G의 여성 인력 비율이 전체의 40%, 부장급 이상에서 27%, 임원회의에 참석하는 비율로는 약 30%라는 사실은 결코 정책이나 프로그램으로 ‘겉치레’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96년 5월에 입사해 불과 3년 3개월 만인 99년 8월에 부장이 된 마케팅 담당 김지영 부장(30)이나 역시 마케팅 능력과 국제감각을 인정받아 10년 만에 마케팅담당 상무가 된 이수경 상무(37)의 경우는 철저한 능력 위주의 평가보상을 입증한다.한국P&G의 본사 HR팀에서는 해마다 PSW워크숍을 기획, 실시한다. 이 같은 교육프로그램을 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여성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며, 그것이 곧 PSW네트워크가 된다.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한국P&G의 PSW네트워크는 세 가지다.첫째, 본사 영업팀의 네트워크다. 총 13명으로 구성된 영업팀의 네트워크는 월 1회 정기모임을 통해 친목도모와 경험공유, 활동계획을 수립 실천한다. 둘째, 조치원공장의 여성 네트워크다. 공장의 사무ㆍ생산직 여직원 1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마지막은 지난해 11월에 교육받은 본사 사무직 여직원들이 주축이 돼 발기된 모임으로 6명에서 출발해 네트워크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각각의 PSW네트워크는 인트라넷 안에 개별 페이지를 할당받아 진행사항을 계속 올려놓으며 사례 등을 공유한다. 물론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은 필요에 따라 정기ㆍ비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한다. 회사의 리더십팀(Leadership Team)이 워크숍에 동참함으로써 공감대를 넓혀가고 필요한 지원을 주요 안건으로 처리한다.P&G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충실한 복리후생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적인 정서로 인해 이들 프로그램을 실제로 활용하는 데 많은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회사의 원칙에는 육아휴직에 대한 기준이 분명히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여직원들이 출산 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PSW네트워크인 본사 영업팀 중심의 모임에서는 모임을 리드하는 여성매니저들이 업무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육아휴직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근무기간의 능률을 높일 수 있다는 개념을 수립하고 이를 적용해 가고 있다.이밖에도 직장과 가정의 생활을 합리적으로 병행하는 법, 업무에서의 다양한 노하우, 커뮤니케이션 스킬, 향후 진로 문제 조언 등 정신적 물리적 도움이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진다. 그 결과 한국P&G에 근무하는 여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근속연수 역시 길어지고 있다.인사팀의 이종구 팀장은 “여직원들조차 알아서 잘 활용하지 못했던 여성의 권리를 찾게끔 도와주면서 동시에 남자직원들에게도 그 권리의 사용이 당연함을 주지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한다.회사에서는 PSW네트워크가 월1회 갖는 정기모임 등에 들어가는 모든 부대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또 일본 쪽의 PSW네트워크와 공동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하며, 이 경우에도 모든 경비를 지원한다.PSW를 통해 회사가 기대하는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 의해 제한됐던 여성능력의 계발이다. 무한경쟁과 세계화된 시장에서는 과거와 같은 제품과 가격경쟁에서의 우위 이상으로 내부 인적자원의 효과적인 활용이 절실하다. 때문에 여성 스스로 여성들의 조직적 성장을 도모하고 여성 친화적인 업무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PSW의 배경이 되는 가치는 다양성의 존중. 한국과 일본의 경우 단일민족이라는 특성상 남녀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진정한 다양성은 피부색이나 성별, 생활스타일, 나이 등과 무관하게 모든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고 이차장은 지적한다.전세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브랜드 제품을 다루는 P&G라는 다국적 기업으로서 다양성 지향 정책은 당연한 경영전략이라고 설명한다.실제 한국P&G만 해도 취급하는 브랜드 제품이 10여 가지에 이르고 오랜 경험상 다양성을 갖춘 조직이 동일한 조직에 비해 보다 높은 성과를 낸다는 것이 160여년의 P&G 역사를 통해 입증됐다는 주장이다.한국P&G에서 경계하는 것은 PSW에 대한 회사의 지원이 오히려 여성에 대한 특별한 배려로 인식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남녀를 떠나 능력과 잠재력 본위로 구성원을 바라보고 존중하는 동등한 대우라고 회사는 강조한다.엘테크의 브레인스토밍한국P&G의 PSW와 그 배경을 이루는 가치는 기업을 훌륭한 일터(GWP)로 이끄는 신뢰경영(도표참조)의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다. 신뢰를 낳기 위해서는 존중(Respect)과 불편부당(Fairness)함이 충족돼야 한다.PSW는 특히 성장에 대한 지원과 관심 배려가 자발적으로 구성되고 회사에서 지원되는 사내의 네트워크를 통해 실천되도록 함으로써 회사에 의한 직접 관리 이상의 효과적인 제도가 되고 있다.즉 자발적 네트워크의 형태를 띰으로써 소속감, 공동의 지향점,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부수적으로 가져오고 있다. 신뢰경영의 요소인 재미(Fun)는 항간에서 오해되고 있듯 리더의 유머와 위트를 통해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소속감, 함께하는 지향점, 인간관계의 중시 등을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불편부당함과 관련해서도 PSW는 좋은 제도다. 회사에서 경계하듯 PSW는 여성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합리적 차별의 인정과 그 향유를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여기에 그 배경을 이루는 다양성의 존중, 개인존중이란 가치를 통해 능력 본위의 평등한 보상과 평가, 공평한 기회의 제공이 동시에 지켜짐으로써 불편부당한 개인에 대한 대우로 연결된다.‘군중 속의 고독’이란 표현처럼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성이 느끼는 역차별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수량적으로 목표치를 정해놓고 반드시 그것에 도달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그 이면에 부작용을 남긴다.미국에서는 초등학교의 소수인종 비율을 수적인 목표에 맞추는 시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원거리통학을 하는 폐해를 낳았다는 보고도 있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과 인위적으로 남녀, 인종, 연령대별 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다르며 이는 역차별의 함정에 노출돼 있다.가장 이상적이라면 PSW와 같은 제도가 없으면서도 모든 구성원에게 존중과 동등한 기회, 대우가 제공되는 조직일 것이다. 현실이 이상과 다르다는 전제하에서 PSW는 훌륭한 제도로 평가된다.글로벌 기업 중에는 노조가 없거나 유명무실한 데 비해 PSW와 같은 자발적인 네트워크가 잘 정비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PSW나 앞서 소개했던 한국애질런트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들, 다양한 동호회 조직, 자원봉사활동 조직의 정비와 이에 대한 회사측의 적극적인 지원은 궁극적으로 구성원이 노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을 상당부분 대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