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B(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맥주)는 겉모양만 맥주를 닮았을 뿐 사실은 주세법상 맥아주스로 분류되는 ‘무늬만 맥주’다. 용기와 라벨디자인은 맥주를 쏙 뺐지만 알코올함량은 많아봤자 0.5% 전후다. 4~5%가 대다수인 일반 맥주에 비하면 맹물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시장에 등장한 것은 20년이 다 돼가지만 별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그런데 이 NAB가 2002년 하반기부터 갑작스레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도쿄 외곽의 한 대형 주류도매점에서는 여름을 낀 반년 동안 1,000상자를 팔기 힘들었던 NAB가 2002년 가을부터 한 달에 1,000상자 넘게 팔리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퇴물 취급을 받던 과거와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주류업계 관계자들은 NAB의 인기원인을 두 갈래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경찰의 음주운전단속이 강화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건강에 대한 관심고조로 저칼로리 음료를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일본경찰은 음주운전이 사회적 골칫거리로 부각되자 개정된 도로교통법을 2002년 6월부터 시행하면서 단속기준과 벌칙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남자의 경우 630㎖들이 맥주 1병을 마시고 핸들을 잡으면 단속기준을 넘어 선다는 것이 일본경찰의 설명이다.음주운전 문제가 다른 나라들보다 심각하지 않지만 경찰이 눈을 부릅뜨고 단속 그물을 좁히겠다고 하니 NAB를 찾는 주당이 늘어났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입품을 중심으로 10여종의 NAB를 취급하고 있는 오사카의 한신백화점 주류매장에서는 지난해 연말 NAB가 최고인기상품 중 하나로 대접받았다.고객들 중에는 음주운전단속을 의식해 NAB를 사간다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건강을 이유로 간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NAB를 마신다는 사람도 적잖았다고 매장 직원은 말했다. 최근에는 교외의 패밀리레스토랑과 골프장, 고속도로휴게소에서도 NAB를 판매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NAB는 칼로리 섭취를 억제하려는 사람들에게도 필수 기호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위스키메이커인 산토리가 판매 중인 ‘파인 브루’의 경우 1캔당 열량은 63㎉에 불과, 일반 맥주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맥주를 마시는 기분을 즐기면서도 거의 취하지 않고 칼로리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알코올과 칼로리 때문에 술을 멀리했던 주당들에게 NAB는 반가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때문에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NAB가 맥주의 대용품 차원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는 ‘단맛을 없앤 탄산음료’로 또 다른 시장영역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토리의 와다 류오 맥주사업부 과장은 “생산규모가 커져 가격만 다운시킬 수 있다면 발포주처럼 독자적인 고객층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고객층이 엷었던 까닭에 일본시장의 NAB는 독일, 영국 등 유럽산 수입제품이 판로를 상당 부분 장악해 왔다. 소형 주류회사와 무역업체들이 들여온 외국제품이 시장을 주도함에 따라 일본 맥주회사들은 신제품 개발과 판촉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그러나 시장전망이 밝아지자 일본 맥주회사들의 태도도 급변하고 있다. 산토리와 삿포로맥주가 2002년 여름부터 직접 생산을 시작한 데 이어 기린과 아사히는 수입품으로 시장확보에 본격 나섰다.전문가들은 NAB의 시장싸움이 맛과 가격에 좌우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발효를 억제해 알코올 성분을 제거하면서도 어떻게 맥주의 본 맛을 최대한 지켜내느냐가 주당 확보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술이 아니라 주세를 내지 않으면서도 NAB의 소비자가격은 맥주 유사품인 발포주와 거의 비슷하게 책정돼 있다고 지적, 이를 얼마나 더 끌어내리느냐가 수요 확산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