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일본 금융기관들의 대출회수가 이어질 것

요즘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일본경제’다. 관심의 초점은 이달 들어 재차 불거지고 있는 ‘3월 위기설’이 가시화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3월 위기설의 실체는 이렇다.현재 일본경제는 ‘좀비경제’라 불릴 만큼 경제활력이 떨어진 지 오래다. 다시 말해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모든 신호(signal)를 준다 하더라도 경제주체들이 좀처럼 반응하지 않아 ‘강시경제’로 비유되고 있다.일본경제의 아킬레스건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음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사요나라 닛폰’이라는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외국자본과 외국기관들이 철저하게 일본경제를 외면하고 있다. 고이즈미 내각 출범 이후 강도 있는 개혁정책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일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이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고 추진하고 있는 대책이 세금감면책이다. 문제는 현시점에서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은 일본이 기대를 걸고 있는 감세정책이 경기부양 수단으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점이다.다시 말해 공급중시 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의 상징과도 같은 세율과 세수간의 관계를 그린 래퍼곡선(Laffer Curve)에서 세율이 최적조세율을 넘어 경제주체들이 부담을 느끼는 비정상적인 지대(Abnormal Zone)에 놓여 있어야 한다.그래야 세금이 감면되면 생산과 소비의욕이 고취돼 경기가 부양되고 세수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현재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 보는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현재 일본은 세율이 높아 소비와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일본 국민들의 소비와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은 측면이 더 강하다.재정적자 GDP의 132%로 세계 최고이런 상황에서 감세정책을 추진할 경우 경기부양 효과보다 후유증이 더 크게 우려된다. 무엇보다 감세로 세수가 줄어들면 이미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일본의 재정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현재 일본의 재정적자는 GDP의 132%로 세계에서 최고수준이다.다른 한편으로는 감세로 늘어난 일본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정부가 의도한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저축으로 이어질 경우 일본경제 전체로 봐서는 총수요가 줄어들어 경기가 더욱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저축의 역설(Saving’s Paradox)에 빠진다는 의미다.금리체계도 흔들릴 수 있다. 감세로 재정수지가 악화될 경우 궁극적으로는 국채발행을 통해 늘어난 재정적자를 보전해야 한다. 이 경우 정책금리는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시중금리는 크게 상승(국채발행 증가 → 국채가격 하락 → 국채수익률 상승)해 정책금리와 시중금리간의 스프레드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결국 자체적으로 일본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수단이 소진됨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인접국 혹은 경쟁국들의 힘을 빌려 경기를 부양할 목적으로 엔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그동안 일본 시오니카 재무상이 엔/달러 환율의 적정수준이 현 수준보다 약 30엔 정도가 높은 150~160엔이라는 발언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문제는 일본의 이런 엔저 정책은 인접국들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일본이 엔저 정책을 추진해 개선된 경쟁력은 자체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접국들의 경쟁력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만약 이런 특성을 외면하고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엔저 정책을 고집할 경우 인접국과의 통화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접국들은 일본의 엔저 정책에 따라 경쟁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엔화 가치를 내린 폭만큼 인접국들도 자국의 통화가치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 문제는 올 들어 아시아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경제주체들, 현금흐름 개선해야문제는 일본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이 유동성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빌려준 자금을 회수할 경우 유동성 부족 문제가 여타 아시아 국가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이 또 한 차례 혼란을 겪게 된다는 시나리오가 바로 3월 위기설의 실체다.그렇다면 실제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가위기(Major Crisis)와 경제주체 위기(Minor Crisis)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국가위기란 외환이 부족해 발생하는 위기인 데 반해 경제주체 위기는 개별 경제추제들의 현금흐름(Cash Flow)상에 문제가 있어 생기는 위기를 말한다.현재 일본은 외환보유고가 4,600억달러 이상이 될 정도로 외화가 풍족한 국가다. 따라서 외화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국가위기(IMF 위기)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면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악화된 경제주체들의 현금흐름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이번처럼 회계연도 결산이나 반기 결산을 앞두고 각각 ‘3월 위기설’과 ‘9월 위기설’에 항상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무엇보다 수출에 미치는 타격이다. 아직도 미국에 이어 제2교역국인 일본경제 침체와 엔/달러 환율의 천수답(天水畓)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일본이 위기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대일수출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일본 금융기관들의 대출회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현재 정책당국에서는 일본 금융기관들의 대출규모가 50억달러 내외인 점을 들어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물론 외환위기 초기에 250억달러 내외였던 때에 비교해서는 정책당국이 낙관할 정도로 분명히 적은 규모다. 유념해야 할 것은 국내 기업들이 98년 이후부터 값싼 엔화 자금을 많이 활용해 온 점을 감안하면 엔화 차입 규모가 의외로 크다는 점이다.지난 97년 11월 이후에도 일본 금융기관들은 당시 한국정부가 파악한 규모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미국 유럽계 자금보다 앞서 회수에 들어감으로써 외환위기를 낳게 한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한 적이 있다.현시점에서 정책당국자의 섣부른 낙관론보다 신중한 자세가 곱게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엔화 자금회수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겪을 어려움에 대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