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기간 정해져 있지 않고 연체료 없어 주문 폭주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리드 헤이스팅즈씨(Reed Hastings)는 몇 년 전 비디오대여점에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제때 반납하지 못한 아폴로13호 DVD타이틀의 연체료가 40달러라는 점원의 말에 그는 할말을 잃었다.‘DVD타이틀을 반납하러 일부러 오지 않고 연체료도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헤이스팅즈씨는 얼마 후 회사를 하나 차렸다. 미국 최초의 인터넷 DVD타이틀 대여 회사 넷플릭스(NetFlix)다.넷플릭스는 DVD타이틀을 인터넷으로 주문받아 우편으로 대여해주는 회사다. 넷플릭스의 특징은 세 가지. 첫째, 정액제다. 한 달에 일정액을 내면 마음대로 빌려 볼 수 있다.둘째, 대여기간이 없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갖고 있으면서 여러 번 감상할 수 있다. 다만 한 번에 세 개 이상은 갖고 있을 수 없다.셋째, 우편으로 배달하고 우편으로 반납한다. DVD타이틀을 빌리러 차를 타고 멀리 갈 필요가 없다.고객들은 월 19.95달러를 내고 인터넷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DVD타이틀을 요청한다. 넷플릭스는 주문받은 DVD타이틀을 고객의 집까지 우편으로 보내준다. 고객은 DVD타이틀을 보고난 후 동봉된 봉투에 담아 가까운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된다.미국에서는 현재 넷플릭스와 유사한 인터넷 DVD타이틀 대여 사업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선두인 넷플릭스(www.netflix.com)를 비롯해 넘버슬레이트(www.numberslate.com), 렌트마이DVD(www.rentmydvd.com), 카페DVD(www.cafedvd.com) 등 30여개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인터넷 DVD타이틀 대여 회사들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를 제외한 다른 회사들은 정확한 매출발표를 꺼리고 있지만 매년 회원가입이 두 배 가까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넷플릭스는 2월에 회원수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98년 설립 후 5년 만이다. 넷플릭스 홍보담당자 린 브린턴씨는 “아메리카온라인(AOL)보다 가입자 증가율이 더 빠르다”고 설명했다.지난해 매출은 1억5,200만달러. 지난해(7,500만 달러) 대비 101%나 성장했다. 올해 매출목표는 2억3,500만~2억5,500만달러다. 넷플릭스는 특히 지난해 5월 나스닥(NASDAQ) IPO에 성공해 관심을 모았다.왜 인기인가?인터넷 DVD타이틀 대여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첫째,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일반 비디오대여점과 달리 별도로 전시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보유 DVD타이틀 종류가 절대적으로 많다.넷플릭스와 넘버슬레이트가 1만3,000여종, 렌트마이DVD 1만여종, 카페DVD가 4,000여종을 보유하고 있다. 일반 비디오대여점에서 구할 수 없는 각종 희귀영화와 외국영화도 많이 갖추고 있다.둘째, 고객들이 DVD타이틀을 빌리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땅덩어리가 광활한 미국은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빌리려고 해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실제로 몬태나에 살고 있는 카페DVD 고객은 회원가입 이유를 “가장 가까운 비디오대여점이 차로 4시간 거리에 있어서”라고 답했다.카페DVD를 운영하는 한국인 김성호 사장은 “산간지역 주민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특수지역에 근무하는 군인 등이 회원으로 많이 가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셋째, 정액제이기 때문에 비디오를 많이 빌려보는 사람일수록 유리하다. 미국 대형 비디오대여체인인 블록버스터의 1박2일 DVD타이틀 대여료는 4달러. 다섯 번만 빌려 보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여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인기비결이다. 블록버스터는 1분만 늦어도 이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내야 해 고객들의 불만이 높다.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우선 시장이 크다. 미국 전역이 시장이다. 인터넷이 연결되고 우편물이 배달되는 곳이면 그곳이 시장인 셈이다. 일반 비디오대여점은 지리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인터넷 DVD타이틀 대여 회사는 그런 제약이 없다.인터넷으로 주문을 받기 때문에 운영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장점이다. 인터넷으로 주문받을 수 있는 시스템, DVD타이틀을 보관할 대형 창고, 발송인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인터넷 DVD 대여 비즈니스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단점은 영화가 갑자기 보고 싶을 때 바로 빌려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주문에서 배달까지 시간이 짧게는 하루, 길게는 2~3일까지 걸린다.그러나 미국은 휴일을 즐기는 문화가 한국과 달라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브린턴씨는 “미국인들은 주말계획을 미리 세우는 경향이 있어 며칠 전에 DVD타이틀을 주문해 놓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배달기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미국 전역에 40군데의 발송센터를 갖고 있다. 고객주문 가운데 하루 만에 배달되는 비율이 50%에 달한다. 넷플릭스는 올해 말까지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미국에서 인터넷 DVD대여점이 성공한 것은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어 가능했다. 첫째, 거의 모든 산업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인터넷이다. 예전 같으면 보유 타이틀 목록을 정기적으로 우편으로 배달하고 두꺼운 책자에서 찾아 전화로 주문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인터넷으로 새롭게 추가된 목록을 금세 알 수 있고 제목을 몰라도 장르, 출연자, 연출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검색해 주문할 수 있다.둘째, DVD플레이어의 보급이다. 미국에서는 DVD플레이어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화질이 우수하고 가격도 100달러 남짓으로 큰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DVD플레이어 보급대수는 지난 2001년 1,300만대로 조사됐다. 미국 가전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세 가정에 한 가정꼴로 DVD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DVD타이틀이 비디오와 거의 비슷하게 나와 콘텐츠도 풍부한 편이다.DVD는 또 디지털이기 때문에 여러 번 재생을 해도 원래 화질이 그대로 유지된다. 일반 테이프 형태 비디오는 몇 번만 재생하면 화질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전국을 대상으로 대여하기에는 수명이 너무 짧다. DVD는 회전율이 아무리 높아도 화질 차이가 거의 없다.인터넷 DVD타이틀 대여 비즈니스는 한국에서도 나름대로 시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교적 저렴한 정액제, 여유 있는 대여기간, 집까지 배달되는 편리함은 한국에서도 큰 장점이다.한국에서도 성공가능한 비즈니스모델 전망문제는 한국은 지리적으로 좁아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조금만 걸어가면 비디오대여점이 있다는 것이다.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도 즉흥적일 때가 많다. DVD플레이어 보급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정액제는 그만한 제약을 충분히 누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디오 마니아들은 정해진 가격에 마음대로 빌려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인터넷 DVD타이틀 대여 회사는 또 다양한 장르를 총망라하고 있다. 추억의 영화, 예술성은 높지만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 못한 희귀영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영화 등 동네 비디오대여점에서 쉽게 찾지 못하는 타이틀을 빌릴 수 있는 것도 인터넷 DVD타이틀 대여 비즈니스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김성호 사장은 “향후 미국 전체 비디오 렌털 시장에서 인터넷 DVD타이틀 대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15% 정도가 될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분명 니치 마켓이 존재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