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많이 하는 기업 주가상승률도 높아...저금리 기조 장기화도 '메리트'

2000년 12월26일. 주식투자자 김모씨(51)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굴러온 복을 차버렸기 때문이다. 이날 김씨는 증권사 지점을 들러 직원에게 어떤 종목을 살지 조언을 구했다. 그 직원이 권한 종목은 ‘제일모직’.평소 코스닥 종목을 매매하던 김씨는 썩 내키지 않았다. 거래소 종목이라 코스닥에 비해 재미가 없어 보였다. ‘실적이 최대다. 예상배당률도 높다. 주식배당과 달리 현금배당은 배당락 제도도 없어졌다. 10% 이상 주가가 내리지 않는 한 이익이다’라는 긴 설명을 듣고서야 1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설명을 듣는 사이에도 주가가 올라 5,750원에 1만7,000주를 살 수 있었다.2001년 1월2일. 제일모직 주가는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 종가에 비해 10.6% 폭락했다. 물론 배당으로 현금이 빠져나가 기업이익이 줄어들 만큼 주가를 낮추는 배당락 제도로 인해 ‘자동적으로’ 주가가 빠진 것은 아니다.그해부터 배당락 제도는 없어졌다. 그보다는 오히려 투자심리가 주가하락에 한몫을 했다. 당시 많은 투자자들은 “오늘 사봤자 배당도 못 받으니 이 권리를 잃은 만큼 주가도 하락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김씨는 증권사를 급히 찾았다. 비록 직원은 ‘주가는 곧 회복할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불안해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그는 5,100원에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3월29일에 계좌로 세금을 제외한 배당금 663만원(1만7,000주×500원×(1-22%))이 들어온 것을 감안해도 손해였다.2003년 3월27일. 제일모직의 주가는 1만3,200원이다. 그동안 주가가 꾸준히 오른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주당 배당금이 매년 증가한 덕이 컸다. 제일모직의 주당 배당금은 2000년 500원, 2001년 550원, 그리고 지난해 600원으로 매년 증가했다.만일 김씨가 주식을 계속 갖고 있었다면 그가 투자했던 1억원은 2년이 지난 지금 2억5,245만원(1만7,000주×1만3,200원+2,805만원, 배당세전)으로 불어났을 터였다. 특히 2001년 5월 이후 3억원 이하의 투자금이면서 1년 이상 보유한 경우에는 배당세가 10%로 낮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2,805만원이란 배당금에 붙을 세금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배당투자 관심 높아져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일수록 주가도 오른다는 사실이 투자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며 배당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은행 금리가 4%대로 주저앉은 요즘은 더욱 그러하다.은행 금리보다도 높은 배당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고 주가가 오르면 시세차익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제도 관련 정부기관과 증권거래소 등도 ‘배당투자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돋보기참조)에 나서는 등 바야흐로 ‘배당투자 전성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실제 증권거래소 상장기업(12월 결산법인)의 지난해 배당금 총액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거래소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들이 주주들에게 배당한 금액은 5조8,846억원에 달했다.이는 전년 대비 52.9% 증가한 액수다. 주가를 배당금으로 나눈 시가배당률도 상승했다. 상장기업의 시가배당률 평균은 4.75%로 전년 대비 0.37%포인트 증가했고 은행권 금리 수준을 넘는다.그렇다면 지금껏 주식투자자들이 배당투자를 ‘외면’해 온 까닭은 뭘까. 무엇보다도 투자자들의 인식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즉 기업활동을 통해 번 돈을 배당하는 기업은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주가도 크게 오르기 힘들 것이라고 보는 투자자가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박수현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의 생각은 다르다.박연구원은 “지난 3년간 연평균 배당수익률이 5% 이상인 34개 종목을 분석해 봤다”며 “이들 종목의 주가수익률이 종합주가지수 수익률보다 좋았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일수록 주가상승률도 높다는 것이다.배당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한 다른 이유로는 그동안 국내 예금금리 수준이 높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금금리가 배당투자수익률보다 높은 마당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주식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은행금리가 낮아졌고, 이에 따라 다른 투자처를 노리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배당투자에도 관심이 몰리게 됐다.전문가들은 배당투자를 고려함에 있어 크게 네 가지를 유의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과거의 배당실적이다. 고배당을 실시한 기업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배당률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만일 배당률이 줄어든다면 투자자들은 ‘기업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품게 되고, 이는 주가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기업의 실적이 꾸준히 개선될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만일 순이익이 감소한다면 배당여력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배당투자 시점이다. 일반적으로는 배당기준일에만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배당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은 이때 한꺼번에 주식을 사려 한다.반면 주가는 이러한 재료를 미리 반영하기 때문에 실제 주가는 이보다 몇 달 앞서 오르는 경우가 많다. 비록 배당금은 받을 수 있더라도 배당수익률 면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다.돋보기 ① / 은행 금리 어떻게 될까상승하더라도 폭은 ‘제한적’앞으로 2~3년간 금리는 어떻게 움직일까. 만일 금리가 급등한다면 은행의 예금금리도 오를 테고 그렇게 되면 배당투자의 메리트가 ‘뚝’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앞으로 예금금리가 폭등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듯하다.서철수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전망”이라며 “반면 금리의 상승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한다.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시중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다. 시중금리(명목금리)는 실질금리와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우선 실질금리는 실질GDP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현재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5%를 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또한 전세계적인 경제상황을 보면 물가상승률에 대해서도 향후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시기다. 결국 시중금리의 추세선이 지금의 박스권을 깨고 상승 쪽으로 추세를 돌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돋보기 ② / 변화하는 배당 관련 제도시가배당률 의무공시제 도입배당투자 활성화를 위한 각종 제도 및 관계법령 개정작업이 한창이다. 우선 배당률 공시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바로 ‘시가배당률 의무 공시제’의 도입이다.지난해까지만 해도 배당을 지급하기로 결의한 회사들은 액면가 기준으로 배당률을 공시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정확히 얼마의 수익을 얻을지에 대해 혼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반면 시가배당률은 액면가가 아닌 주가를 주당 배당금으로 나누는 터라 투자자들은 손쉽게 시중금리와 배당수익률을 비교해 볼 수 있다.또한 앞으로는 분기별 배당도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반기배당까지만 허용돼 왔다. 따라서 배당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불확실성이 있었다.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제도 개선안은 이미 마련됐으며 재정경제부 및 법무부 관련부서에서 세부사항을 논의 중”이라며 “이르면 올해 안에 국회에 상정해 증권거래법과 상법 등 관련법을 개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또한 이르면 7월1일, ‘배당지수’도 도입될 전망이다. 이는 배당을 ‘잘하는’ 기업 여러 곳을 선정해 이 기업들의 주가를 이용해 지수를 만든다는 것. 이주호 증권거래소 정보통계부 통계팀장은 “장기투자를 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이 지수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금융기관에서 이 지수를 이용해 펀드를 만들면 개인투자자들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