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일본 손목시계 시장에서 시계메이커들이 부쩍 눈독을 들이고 있는 최고의 유망상품은 누가 뭐라 해도 전파시계다. 정확한 시간정보를 담은 전파를 수신해 자동으로 시간을 수정해주는 전파시계는 안테나 처리에 따른 디자인 제약으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형업체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수요가 늘고 품질개선이 뒷받침되면서 시장상황이 급변하고 있다.전자계산기메이커로 유명한 카시오가 60%대의 마켓셰어를 장악한 가운데 소수업체들의 과점 형태로 유지돼 온 판도가 세이코, 오리엔트 등 대형업체들의 참여로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손목에 차는 전파시계는 종전까지 본체의 상당부분에 스테인리스가 아닌 플라스틱이나 유리를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파가 스테인리스를 통과하지 못해 100% 스테인리스 본체 속에서는 안테나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문자판이나 밴드 등의 다른 곳은 몰라도 안테나를 덮는 부분만은 플라스틱 등의 재료를 쓸 수밖에 없었다. 본체 모든 부분에 금속을 사용할 수 없으니 품위가 떨어지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거의 완벽한 시간정보를 전달해주는 장점 때문에 전파시계를 차고 싶어도 스포츠, 레저용과 같은 느낌을 풍기는 탓에 나이든 소비자들은 욕구를 자제해 온 것이 일반적이었다.그러나 세이코, 오리엔트, 시티즌 등 대형시계메이커들은 올해 초부터 이 같은 단점을 해결한 스테인리스 전파시계를 차례로 선보이며 시장공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시티즌은 구동장치와 수신안테나를 독자적으로 개발, 금속으로 안테나가 덮인 상태에서도 전파수신이 가능하도록 했다. 판매가격을 개당 3만엔 전후로 책정한 시티즌은 지금까지의 디자인 제약을 해결했기 때문에 대기수요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지난해 50만개 팔려 ‘인기상승’세이코는 오는 6월에 전파시계 첫 제품을 투입할 예정이다.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ALBA’ 브랜드로 역시 3만엔 전후의 제품을 내놓고 수요확보에 나선다는 전략이다.일본 시계메이커들 가운데 고기능, 고가품 개발에 가장 의욕적으로 앞장서온 세이코는 전파시계가 디자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시장참여를 주저해 왔다.스포츠, 레저용의 이미지가 강한데다 선발메이커들이 중ㆍ저가 전략으로 판로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로 뛰어들 경우 이미지만 깎아먹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일선 판매점들로부터의 요구가 빗발치자 자존심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세이코는 디자인을 중시하면서도 제조원가가 높게 먹히는 것을 막기 위해 구동장치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전략을 동원했다. 독일 메이커로부터 수신안테나와 구동장치를 공급받는 한편 시계 뒷면은 유리로 만들어 수신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오리엔트는 ‘레거시’ 브랜드로 전파시계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케이스 외관은 세이코와 같은 방식의 스테인리스로 만들고 뒷면에 유리를 채용하기로 했다. 판매가격은 개당 2만8,000엔으로 잡고 있으며, 첫 생산물량은 1,000개로 게획하고 있다.대형시계메이커들의 추격에 맞서는 선발업체들의 시장 방어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카시오는 가격경쟁력을 살리는 한편 소형안테나를 밴드 속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외관을 개선한 제품으로 맞불을 놓는다는 전략이다.3월31일부터 시장에 투입할 또 하나의 신제품은 문자판의 둘레를 감싸고 있는 링이 빛을 내면서 문자판을 비추도록 하는 광발전 기능을 채택했다. 전파시계는 세시움원자시계에 기초를 둔 정확한 시간정보를 전파로 수신, 시각을 자동으로 수정하는 기능을 갖춰 쿼츠 시계 이후 최고의 기술혁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80년대 후반 독일에서 첫 제품이 등장한 후 일본에서는 일부 메이커들이 시장을 개척해 왔다.그러나 후쿠시마현과 사가현의 2개 발신국에서 전파를 발신하기 시작한 2001년 10월부터 일반인들의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으며, 지난해에만 약 50만개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규슈국에서 발신된 전파의 도달거리는 반경 900㎞로 한반도 전체를 커버할 수 있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