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벚꽃이 예년에 비해 일주일 가량 빨리 피어나고 있다. 기상청 분석에 따르면 지난 2월 중 평균기온이 다른 해에 비해 2도 가량 높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새벽 문득 불꽃놀이처럼 피어나 천지를 화사한 자태로 뒤덮어 검은 땅을 선계로 변신시키는 벚꽃. 경남 하동의 쌍계사 십리 벚꽃길과 주변 명소를 들여다본다.봄의 전령사인 동백, 매화와 산수유가 피어나면 뒤를 이어 벚꽃이 피어날 차례다. 벚꽃이 화사한 자태로 우리 앞에 다가올 때면 봄빛이 더욱 완연해짐을 느낀다. 바람이라도 불어 꽃잎이 함박눈처럼 휘날리는 모습은 여행자들의 눈시울을 붉게 적신다.한꺼번에 흐드러지게 피는 모습이 장관이나 개화기간이 짧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벚꽃 감상 여행을 떠날 때에는 해당 군청 등에 개화 여부, 절정기 등을 문의한 후 찾는 것이 좋겠다.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의 십리 벚꽃길은 젊은 남녀들이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혼례길목’으로 불릴 만큼 환상적인 코스로 인정받고 있다.60년을 넘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구불구불한 개울을 따라 활짝 피어나면서 터널을 이룬다. 아침나절 화개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역광 속에 꽃잎이 빛나는 모습을 감상하는 방법이 인상에 가장 오래 남는다. 화개천 주변 보리밭도 초록색으로 물들어 벚꽃의 빛깔을 더욱 아름답게 살려준다.화개장터가 자리한 탑리에서부터 꽃길은 시작된다. 중간쯤에 이르러 두 갈래 길이 나오는 장소가 십리 벚꽃길의 압권지대. 벚꽃을 감상하고자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그 지점에 이르러 감탄사를 토해내지 않을 수 없다. 도시인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하는 벚꽃길을 산책한 후에는 노변의 찻집에 들러 화개녹차로 목을 축여보도록 한다.쌍계사 벚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새벽 무렵에 찾아가야만 한다. 오후 들어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 때문이다. 오전 일찍 벚꽃길을 걸어야만 만개한 벚꽃들로부터 환영인사를 올바르게 받을 수 있고 기념사진을 찍는 시간도 충분하다.벚꽃길이 마무리되는 지점에 명찰 쌍계사가 있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절집 답사로 이어진다. 국보 제47호로 지정된 진감선사대공탑비 등 문화유적이 많은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3년)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이 창건한 고찰이다.삼법은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 혜능의 정상을 모셔다가 삼신산(지리산)의 눈 쌓인 계곡 위 꽃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에 삼법은 각처를 헤매다가 지금의 금당자리에 모시고 절을 지어 옥천사라 했다. 840년에는 진감국사가 중국에서 차나무를 가져와 심었고 정강왕 때는 쌍계사라 이름을 바꿨다.그후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초산 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설선당, 팔영루, 금당, 육조정상탑, 적묵당, 청학루 등의 많은 당실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과 팔상전 영산회상도, 적묵당은 보물로 지정돼 있고 현판과 주련들이 많아 문화유산답사객들의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질 않는다.쌍계사가 차와 인연이 깊은 곳임은 주지의 사실. 매표소 가까운 계류가에 1981년 건립된 ‘차시배추원비’가 있는가 하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이를 다시금 증명이라도 하듯 쌍계사 안에는 쌍계다원(055-884-1373)이라는 전통찻집이 있어 또 한 번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쌍계사와 십리 벚꽃길을 뒤로 하고 화개장터를 들르면 더욱 흥겨운 여로다.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답고 골이 깊은 이곳 화개는 김동리의 단편소설인 <역마 designtimesp=23640>의 주무대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교통이 좋아지기 이전 화개장날(1일ㆍ6일)이 되면 장터가 비좁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큰 장을 이뤘다.그러나 장이 서던 자리에는 버스터미널이며 슈퍼마켓 같은 상점들이 들어섰다. 장날마다 화개를 찾는 상인들은 50~6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들은 소방파출소 주변에 모여 산나물이며 도토리묵을 팔고 국밥집, 재첩국집, 주막, 엿장수 등이 있어 훈훈한 인심을 만날 수 있다.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화개장터를 찾는 외지인들은 제법 많은 편이다. 가수 조영남씨가 부른 유행가 ‘화개장터’ 영향이라 여겨진다. 화개장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 노래가 흥얼거려진다.화개장터에서부터 하동읍내에 이르는 섬진강변 19번 국도는 흔한 말로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다. 중간에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designtimesp=23651>의 무대가 됐던 악양면 평사리가 있고 광양시와 하동을 잇는 섬진교 주변에는 하동포구노래비가 들뜬 여로를 더욱 달궈주고 그 아랫녘의 하동송림은 차분히 쉬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마무리할 공간을 제공한다.잠시 노래비에 적힌 노랫말을 음미해본다. ‘하동포구 80리에 물새가 울고/ 하동포구 80리에 달이 뜹니다/ 섬진정 댓돌 위에 시를 쓰는 사람은/ 어느 고향 떠나온 풍류랑인고/ 하동포구 80리의 굽도리배야/ 하동포구 80리에 봄을 실어라….’하동송림(경남 기념물 제55호)은 숲의 조성 역사가 250년을 넘는다. 조선 영조 21년(1745년)에 바람과 모래먼지를 막을 목적으로 섬진강변에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보배스러운 숲으로 변했다. 솔향기를 맡으며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공원이다.송림에서 좀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여수와 하동을 오가는 유람선 선착장이 나타난다. 이 유람선은 하동 기행의 새로운 명물로 부상하고 있다. 거문도관광여행사(061-665-4477)◆여행메모(지역번호 055)하동군청 문화관광과 관광진흥담당(880-2371). 화개면사무소(880-6051).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하동행 버스가 하루 6회 운행. 5시간 소요. 하동이나 구례에서 쌍계사행 버스를 타면 화개장터를 들르게 된다.하동읍에서 화개까지는 30분, 구례읍에서 화개까지는 20분 소요.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 전주나들목 → 17번 국도 → 임실 → 남원 → 19번 국도 → 구례 → 화개 코스 또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함양분기점 → 88올림픽고속도로 → 남원나들목 → 19번 국도 → 구례 → 화개 코스.하동읍내 음식점으로는 하동복요리(882-9090), 한정식을 하는 조선옥(883-7330)과 일신식당(884-4739) 등이, 쌍계사 입구에는 초가집식당(883-0509), 부산식당(883-1709) 등이 있다.맛집 ▶ 동흥식당초고추장 무친 재첩회 ‘새콤달콤’하동교육청 옆 동흥식당에서 재첩회나 재첩국 맛을 보면 섬진강을 가슴에 고스란히 쓸어 담은 느낌이다. 재첩은 염분이 적고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하는 조개류(일명 가무락조개)로 섬진강 일대에서 1년 내내 많이 잡힌다.동흥식당에서는 재첩을 살짝 데친 다음 알갱이만 건져 국물을 빼고 채 썬 배, 당근, 미나리, 오이와 그 계절의 싱싱한 채소를 초고추장에 섞어 무친 재첩회를 손님상에 내는데 새콤달콤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또 재첩의 해감을 빼낸 다음에 푹 끓여 소금으로 간하고 잘게 썬 부추를 넣은 재첩국은 시원한 맛과 뽀얀 국물, 산뜻한 부추의 향이 어우러진 음식으로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를 넣어 먹기도 한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말고 모두 마셔야 보약이 된다.재첩국은 간기능 활성화, 황달 증세 해소, 숙취 해소 기능이 탁월해서 특히 술 마신 다음 아픈 뱃속을 다스려주는 해장국으로도 일품이다. (055-883-8333, 884-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