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위기 몰렸던 브랜드들 지난 3년 사이 급성장, 회사 체질 개선이 '일등공신'

지난 1998년 이랜드의 여성 캐주얼 브랜드인 로엠(ROEM)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97년까지만 해도 매출액 500억원을 기록하며 잘나가던 브랜드였지만 98년 들어 190억원으로 추락하면서 회사에 짐이 되는 브랜드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직원들도 대거 떠났다. 한때 230여명이었던 것이 100명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대리점수도 자진폐업 등의 영향으로 167개가 94개까지 오그라들었다. 더 이상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회사에서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모든 사정이 악화됐던 것.하지만 끝까지 남은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월급이 정상적으로 나올지조차 불투명했지만 뛰고 또 뛰었다. 먼저 판매관리에 힘을 쏟았다. 재고율을 감소시키기 위해 제품의 판매주기를 도입기 → 메인기 → 잔여기로 구분해 마케팅을 펼쳤고, 원가절감 차원에서 구매다각화와 해외생산 비중을 높였다.박상균 로엠사업부 브랜드장은 “핵심 아이템 개발에 적극 나서 고객들에게 한발 다가서고, 1억 모델 매장 만들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대리점주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어냈다”고 설명했다.그결과 로엠은 2000년 들어 다시 정상궤도에 진입해 매출액이 2001년 310억원, 2002년 400억원의 급신장세를 기록했다. 영업이익 역시 2001년 60억원, 2002년 91억원을 각각 올리며 순항을 거듭했다.한때 퇴출 위기에 몰렸던 다른 브랜드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0년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제2의 이랜드 신화를 재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인 푸마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94년 이랜드가 의욕적으로 해외에서 도입했지만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회사의 사업방침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99년 매출액이 100억원이 안됐다.하지만 2000년 이후 회사 분위기가 바뀌고 불가능은 없다는 인식이 퍼지며 상황이 급변했다. 지식경영 도입을 계기로 상징 컬러를 그린에서 레드로 바꾸는 ‘브랜드 얼굴 바꾸기’ 작업을 벌였고, 내부 인테리어도 스틸 소재를 사용해 모던한 분위기로 바꿨다.제품 컨셉도 신세대와 여성들에게 맞춰 몸에 딱 붙는 제품을 선보였다. 스니커형 운동화인 ‘AVANTI’는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해 예약을 받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재래상권 중심의 유통망도 손질해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으로 매장을 옮겼고,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도 높여 나갔다.이 같은 노력은 곧바로 실적으로 연결됐다. 2000년 처음으로 100억원대에 들어섰고, 2001년에는 340억원으로 급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해 실적으로 무려 97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김은정 마케팅팀 대리는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뭉친 결과”라며 “올해는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외형보다는 내실, 수익보다는 고객가치’이랜드의 대표적인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브렌따노 역시 지옥에 갔다 살아온 케이스다. 93년과 94년 전성기를 누렸던 브렌따노는 90년대 중반 이후 지나친 확장으로 인해 오히려 수익성이 처지고 제대로 관리가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이후 270개가 넘었던 매장수가 125개까지 줄었고, 매출액도 곤두박질쳤다. 박정미 브렌따노사업부 본부장은 “당시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필요했고, 결국 고객중심에서 다시 생각하자는 직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우선 직원들이 자주 현장에 나가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엇을 원하고 어떤 구매패턴을 보이는지 정밀하게 조사했다. 아울러 기존의 액세서리를 과감하게 없애 이미지를 단순화했고, 제품의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지난해 49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브렌따노는 올해 65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랜드그룹의 실적은 2000년을 기점으로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의류 브랜드와 유통업체인 (주)이천일아울렛을 축으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역시 이랜드’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 특히 지난 3년 사이 이랜드는 ‘외형보다는 내실, 수익보다는 고객가치’라는 경영이념을 강도 높게 실천하며 재계 최고 수준의 성장률과 높은 순이익을 달성했다.회사가 한창 어려웠던 지난 98년 이랜드의 전체매출액은 5,490억원이었다. 특히 의류 브랜드들의 실적은 바닥을 기었다. 이어 99년에는 이보다 9.3% 늘어난 6,004억원을 올렸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는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다 2000년 이후 평균 20% 이상 급성장했고, 지난해에는 마침내 1조원(1조926억원)을 돌파했다. 순이익 역시 2000년 103%의 신장세를 나타내는 등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며 지난해에는 1,297억원을 올렸다. 회사창립 후 처음으로 ‘매출 1조-순이익 1천억원대 시대’를 연 셈이다.현재 이랜드는 모두 25개의 패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다 주얼리 브랜드, 패스트푸드형 피자 브랜드, 스파게티 브랜드,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 등을 각각 1개씩 보유하고 있다.패션 외의 기타 브랜드는 시장진입 역사가 길지 않아 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다만 의류사업 부문과 쌍벽을 이루는 유통업은 덩치가 아주 크다. 매출액만으로 보면 의류사업을 바짝 추격하는 수준까지 접근한 상태다. 결국 의류와 유통이 회사를 이끄는 셈이다.푸마사업부, 2년 연속 성과급 1,100%이랜드그룹이 급성장세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또 사업부별로도 조금씩 다르다. 나름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공통점은 있다. 먼저 회사의 체질개선이다. 평가 등 회사의 모든 시스템을 바꿨다. 외형을 중시하는 회사방침도 버렸다. 단적으로 매출액보다 현금흐름을 중시하기 시작했다.확실한 성과급제도 도입했다. 실적을 낸 만큼 보상해주기 위해서다. 지난해만 해도 실적에 따라 400~1,100%까지 성과급을 주었다. 푸마 사업부 직원들은 2년 연속 1,100%의 성과급을 받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장광규 전무는 “지식경영을 도입하면서 회사의 체질을 대폭 개선했고, 회사가 원하는 것을 직원들이 잘 따라준 덕분”이라고 설명했다.직원들의 마음가짐 변화는 또 다른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2000년 들어 혁신을 시도하며 회사측은 내심 긴장했다. 직원들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더욱 합리적인 시스템이 나오고, 이것이 큰 실적으로 연결되면서 너도나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실적을 인사고과와 성과급에 합리적으로 적용하면서 직원들의 참여 열기는 고조됐다.고객중심의 사업전개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직원들이 현장을 중시하게 되면서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기획하고 마케팅을 전개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간절기(계절이 바뀌는 기간) 상품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반팔티셔츠 등 여름용 상품을 한겨울에 출시하게 된 것도 이런 현장중시 마케팅에서 나온 산물이다.박정미 브렌따노사업부 본부장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객 입장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랜드의 성공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이랜드 입장에서 지금이 끝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경영을 잘하고, 성과를 냈다고 해서 목표를 이룬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세계화와 브랜드의 파워를 높이는 일이다.이런 일을 이루지 못하고는 언제까지나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경영진은 잘 알고 있다. 아울러 매년 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이응복 총괄 부회장은 “세계적인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파워 있는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며 “회사의 성장과 함께 이웃을 생각하는 회사로 거듭나도록 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돋보기 / 매장 월매출 1억 만들기고객수·구매율·객단가 높이면 ‘뜬다’로엠영업부 정수정 과장은 사내에서 ‘1억원의 여걸’로 통한다. ‘대리점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로 로엠 매장의 월매출을 1억원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작업에 착수한 것은 지난 2000년 5월. 로엠 종각점을 모델로 삼았다.당시 종각점은 월매출 5,000만원에 하루 방문고객수 170명, 구매율 35%, 객단가(손님 1인당 매출액) 4만원, 재구매율(다시 들러 물건을 사는 비율) 5%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후 정과장은 매장을 꼼꼼히 분석해 처방을 내놓았다.먼저 방문고객수를 늘리기 위해 마일리지제도를 도입해 고객관리를 철저히 하기 시작했고 카운터를 이동시켜 고객들에게 이동의 편의를 제공했다. 매장입구에는 기획상품을 비치했고 조명을 밝게 해 시선을 유도했다.구매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략상품을 활용하고 상품이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썼다. 아울러 피크타임에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서비스를 강화했고, 환불 100%로 만족도를 높였다.또 객단가를 높일 수 있게 맞춤형 코디를 제안하고 다양한 패션정보를 제공했다. 이밖에 고객관리 카드를 작성하고 사은품 증정 등을 통해 재구매율을 높이는 데 노력했다. 그결과 종각점은 1년 만인 2001년 5월 기준으로 월매출액 1억원, 구매율 55%, 객단가 5만원, 재구매율 10%라는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현재 이 매장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월매출이 2억원까지 치솟았다. 정과장은 “매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점주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며 “고객중심으로 마인드를 바꾸면 ‘월매출 1억 매장’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