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으로 나라 전체가 난리다. 여기저기서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릴 정도다. 기업들 역시 올 한 해 경기가 예상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인식 아래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각종 경제지표도 빨간불투성이다.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3%포인트나 내려간 4%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달아 나오고 있고, 소비심리지수도 바닥상태를 나타내고 있다.20대 실업률이 8.5%로 2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는가 하면 경제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주식시장은 빈사상태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미 시작된 대이라크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경제회복 속도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하반기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업들은 잔뜩 몸을 숙인채 경제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투자도 대폭 줄인 상태다.하지만 이런 불황의 한쪽에서는 표정 관리하기에 여념이 없는 업종들이 있다. ‘불황이 오히려 고맙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불황 속에서 뜨는 업종들’이다. 지난해 이후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서는 특수를 누릴 정도로 번창한다는 후문이다.대표적인 비즈니스로 중고품 시장을 들 수 있다. 경기가 위축되면서 중고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관련사업 역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중고가전시장에 소비자들이 몰리고, 관련 프랜차이즈업체까지 등장했다. 경차와 소형차 중심의 중고자동차 시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서울 장안평 등지의 중고차 시장에는 소형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고, 판매량 역시 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경기불황으로 실업자가 늘면서 취업과 창업컨설팅 시장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온라인 취업 관련 업체에는 이력서가 쇄도하고 있고, 헤드헌팅 업체들 역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에는 최근 2~3년 사이 대졸자 취업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여파로 젊은층이 대거 몰려들고 있는 모습이다.창업컨설팅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20~30대의 창업이 크게 늘어난데다 50대 전후에 직장을 그만둔 중장년층이 가세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예년에 비해 창업에 대한 교육 또는 상담을 받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3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저가형 유통업체와 외식업체들 역시 불황이 즐겁다는 표정이다. 저가형 유통업체들의 경우 ‘다른 곳이 더 싸면 그만큼 환불해준다’는 구호까지 내걸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심지어 한 인터넷 쇼핑몰 업체는 ‘절반가격에 물건을 판다’는 구호를 내걸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어쨌든 이런 저가공세는 한푼이라도 싼 가격에 물건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고, 실제 적잖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연체율 늘며 채권추심업 고속성장외식업체들의 선전도 눈에 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값비싼 음식을 자랑하는 곳보다 실속 있는 가격에 내실 있는 맛을 자랑하는 외식업체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저가형 고기전문점을 지향하는 계경목장의 최계경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각 점포당 매출이 크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창업희망자들의 문의도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금융업계에도 불황이 즐거운 분야가 있다. 바로 채권추심이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면서 빚을 대신 받아주는 채권추심이 큰 활기를 띠고 있는 것. 특히 최근 들어 카드사 등의 연체비율이 지난해에 비해 3~4배씩 늘어나면서 일감이 크게 증가해 전문인력 확보에 애먹을 정도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대부업체들 역시 ‘급전대출자’가 밀려들고 있다. 정상적인 시용거래가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자는 높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부업체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업계는 신용불량자가 늘어날수록 영업이 잘된다”며 “그런 면에서 요즘은 최고의 전성기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불황은 일반기업들에 경비절감을 요구한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한 줄일 것은 줄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상황을 활용해 큰 이익을 내는 회사들이 있다. 바로 에스코(Energy Service CompanyㆍESCO) 관련 업체들이다.주요업무는 에너지 절감 설비를 시공하는 것. 92년 국내 최초로 에스코전문업체로 등록한 삼성에버랜드를 비롯해 한국하니웰, SK, LG건설, 에너지솔루션즈 등 국내에서만 70여개 업체가 활동 중이다. 삼성에버랜드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업계 전반적으로 지난해에 비해 약 50%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이밖에도 불황을 먹고사는 업종들은 또 있다. 간판제조업, 점포정리업 등도 경기가 나빠야 뜨는 전형적인 업종들이다. 불황이라 점포의 주인이 자꾸 바뀌다 보니 간판 역시 덩달아 교체의 대상이 되고, 이를 만들어주는 간판업체가 은연중에 득을 본다. 청산 비즈니스로도 불리는 점포정리업 역시 망한 회사나 점포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적잖이 재미를 본다.흔히 영원한 승자는 없다고들 한다. 더불어 영원한 꼴찌도 없다고 한다. 따뜻한 곳이 있으면 추운 곳이 있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비즈니스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항상 잘나가는 사업이란 없다.어렵다가 다시 희망이 보이고, 절망적인 것 같지만 언젠가 다시 희망의 빛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새옹지마의 세계가 바로 비즈니스 세상이다. 지금의 불황을 탓하지 말고 묵묵히 일하다 보면 다시 밝은 미래가 우리 곁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