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은물' 과 동화책 '테마동화' 로 어린이 . 학부모 파고들어

“우리는 봄에 씨를 심는 농부의 마음으로 모든 어린이에게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행복한 꿈을 심습니다.” 최재건 사장(48)이 이끄는 한국프뢰벨의 경영이념이다.한국프뢰벨은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았다. 유치원의 창시자인 독일 유아교육자 프리드리히 프뢰벨의 이름을 빌려 만든 이 회사는 25년간 오로지 유아교구 및 교재개발에만 전념하는 뚝심을 보였다. 그 결과 유아교재시장의 선두주자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주력제품은 창의력 배양을 위한 교구인 은물(恩物)과 다양한 어린이 교재다. 특히 매출액 중 30%를 차지하는 은물은 입학 전 유아를 둔 부모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히트했다. 은물을 모르는 부모를 가리켜 ‘은따’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했다.심지어 이를 구입하려는 소비자가 폭주해 은물 구입 신청 후 발송까지 6개월이나 걸렸다는 부모가 있을 정도다. 2000년 이후 비슷한 업체명으로 유사상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30여개까지 생성되기도 했다. 1837년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아이들의 이상적인 놀잇감으로 창안한 ‘은물’을 한국프뢰벨은 20여년간의 연구로 업그레이드시켰다.“은물은 은혜로운 선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자신이 창안한 교육 놀잇감을 하느님이 내려주신 은혜로운 선물로 여겼기 때문이죠. ‘유아교육은 놀이와 같다’는 기본이념을 바탕으로 검증된 교구를 판매합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여 개발하고도 교육이론에 맞지 않는다면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연구개발을 시작합니다.”교구와 교재 개발기간은 평균 3~4년 정도이며 2001년부터는 서울대와 산학협정을 통해 연구개발, 공급되고 있다. ‘프뢰벨연구소’라는 자체 연구소에도 유아교육을 전공한 30여명의 연구원을 갖추고 있다. 연구, 판매되는 제품은 은물 외에도 베이비스쿨과 테마동화, 위인전 등 20여종.블록과 공, 고리, 색판, 막대 등으로 이뤄진 ‘은물’세트 한 박스의 판매가격은 약 130만원. 월 4차례, 한 번에 40분씩 가정에 방문해 1대1로 은물의 원리를 유아에게 교육하는 방문교사 시스템을 이용하려면 별도로 월 6만2,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히트를 친 이유는 입소문 덕분이다.“광고 등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습니다. 2000년에 TV CF로 이미지 광고를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일절 광고를 하지 않았죠. 구전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은물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고객들이 그 경험을 다른 고객들에게 소개합니다. 조용히 프뢰벨에 대한 입소문이 번져가는 거죠.”영업 역할을 담당하는 교육상담역 사원이 7,000여명에 이른다. 특이한 점은 전국 각지에 총 20개의 지역사, 200여개 지국에서 활동하는 교육상담역 사원의 90%가 기존 고객이었다는 것. 프뢰벨 교재와 교구를 직접 사용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고 있다.“회사설립 당시에는 출판 방문판매원들이 남자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주부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회사에서 남자사원들은 고객들에게 많은 부담감을 준 것으로 판단, 전략을 바꿨죠. 주부사원을 팀으로 구성해 활동을 펼치도록 한 것입니다. 현재 주부사원들만이 현장에서 활동합니다. 방문판매 주부사원에 소비자들이 호감을 보인 것도 성장비결이라고 봅니다.”현재 국내 유아시장은 전체 4조원, 교구 및 교재시장의 규모는 연 8,000억~1조원이다. 한국프뢰벨의 지난해 매출액은 2,500억원으로 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창의력을 중시하는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 후 한국프뢰벨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99년 대비 2000년의 매출액은 47.6% 증가했고, 2001년에는 전년 대비 16.4%, 2002년에는 10.6% 증가했다. 이중 주력제품인 은물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98년 은물의 매출액을 100으로 볼 때 2000년에는 264, 2001년 284, 2002년 397로 성장했다.“처음부터 은물이 잘 팔렸던 것은 아닙니다. 1970년대에는 유아교육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아 고가제품을 살 수 있는 일부 소수에게만 공급이 이뤄졌죠. 198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 전반에 유아교육의 중요성과 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장이 크게 확대됐습니다.”1990년 전반에는 유아교육시장의 사업 비전을 파악한 타 업체들이 경쟁자 대열에 뛰어들었다. 다양한 업체가 설립되면서 유아교육시장이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프뢰벨은 대외경쟁력과 유아교재와 교구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베이비스쿨 시리즈, 테마동화 시리즈 등 신제품 연구개발에 전념했다. 또 고객사은행사 등을 열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결국 1990년 말부터 은물이 어머니들 사이에서 화제의 교육 놀잇감으로 떠올랐죠. IMF 환란 당시에도 매출감소에 영향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현재는 ‘은물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습니다.”한국프뢰벨은 판매수익금을 연구개발비에 재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소년소녀가장돕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프뢰벨 장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기’를 지속, 확장하기 위해서다.유아교육의 전문성과 차별성 있는 제품으로 유아교육 비즈니스에서 자생력을 갖췄다고 자평하는 한국프뢰벨은 수출구상도 하고 있다. 독일인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만든 ‘은물’을 토종기업인 한국프뢰벨이 업그레이드시켜 역수출하는 셈이다.“가구당 수익이 증가되고 조기유아교육에 대한 검증자료가 하나둘씩 나오면서 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인 유아 비즈니스에 수많은 업체가 뛰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외국의 프랜차이즈업체들도 국내에 들어오면서 국내 토종업체들이 고역을 치르고 있어요. 탄탄한 제품과 마케팅 전략이 없는 회사는 경쟁력을 갖지 못합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유아교육시장을 선도하겠습니다.”돋보기 / 한국프뢰벨은77년 설립… 상담교사만 7,000명1977년 10월 정인철 현 회장이 설립한 어린이 교육 전문업체다. 정회장은 창립 후 80년 경기도 의왕시에 제1공장을, 87년에는 프뢰벨 유아교육연구소를 설립했다. 93년 태국에 교재 ‘내 친구 시리즈’를 수출한 후 해외 교육 관계자의 관심을 받아왔다.그 결과 96년에는 태국 교육부 장관이 한국프뢰벨 본사를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97년 책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98년 문화의 날에는 대통령 화관문화훈장을 받는 등 다양한 수상경력도 갖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해외교류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2002년에는 캐나다 프뢰벨교육센터, 미국 프뢰벨재단과 자매결연을 맺었다.본사의 직원은 120명, 가정에 방문해 제품을 판매하는 교육상담역 사원은 7,000명이다. 1대1로 ‘은물’ 등 교구를 어린이에게 교육하는 방문교사는 3,000명에 이른다.최재건 대표이사 사장은 1984년 한국프뢰벨 총무팀에 입사해 96년 단행본 사업본부장을 거쳤다. 96년 서울프뢰벨 대표이사에 올랐고, 2000년 서울프뢰벨이 한국프뢰벨 사업본부로 통합되며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계열사로는 (주)프뢰벨미디어, 프뢰벨유아교육자료연구소, (주)프뢰벨 교육원, 동화연구소, (주)K자유학교, (주)베틀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