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개방의 문을 닫을 경우 세계경제는 불황으로 치달을 듯

최근 세계경제가 이라크전쟁이다 북핵문제다 해서 침체 분위기가 역력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괴질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까지 확산돼 어수선하다.‘어느 정도 잡혀가고 있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괴질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감염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주목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4월 첫째주까지 사상자 62명을 포함해 괴질 피해자가 약 2,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문제는 괴질 감염지역이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 등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경우 괴질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초기보다 마지막 단계에 급증했던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의외로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이라크전쟁에다 괴질까지 겹쳐 세계경제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역사적으로 괴질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의외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14세기 페스트의 창궐은 유럽에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불황을 가져왔다. 이 기간에 유럽경제는 약 20년간의 장기침체로 중국 등 아시아경제에 훨씬 뒤처졌다.그후 괴질과 같은 전염병으로 세계경제에 충격을 준 것이 1930년대 대공황 시절이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이후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인한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인 피폐는 생활수준의 저하와 위생의 퇴행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결핵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으며 일본과 중국까지 결핵의 공포는 확산됐다.결핵은 1940년대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명할 때까지 괴질이나 다름없이 인류와 경제를 위협했다. 결국 이것이 ‘찰리 채플린’으로 연상되는 세계적인 대공황을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다.가장 최근에는 1980년대 초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 발생해 세계경제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이 원인불명의 질병이 가장 크게 창궐한 나라가 미국이었다는 사실과 이 기간에 미국경제가 가장 심각한 불황기를 통과 중이었다는 사실은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이처럼 괴질과 같은 전염병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큰 것은 무엇보다 경제주체들의 경제하고자 하는 심리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괴질과 같은 전염병은 세계경제가 침체될 때 발생한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때는 괴질이 발생할 경우 세계 국민들을 심리적으로 공황(Panic) 상태에 몰아넣어 경제활동을 크게 위축시켰다.괴질에 따라 사람의 이동을 제약시키는 것도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이미 이번 괴질에 따라 우리나라도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지역에 항공권예약률이 30% 이상 급락하고 있다. 주요 국가들은 자국민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지역을 방문하거나 이들 지역에 속한 국민들이 자국을 방문하는 일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최근처럼 이라크전쟁과 괴질 등으로 어려울 때 세계경제가 ‘디플레’ 혹은 ‘공황’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세계수입창고의 역할을 하는 미국이 어떤 입장을 보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한동안 국제화ㆍ세계화의 상징이었던 미국이 갈수록 ‘개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점이다.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개방화 정도는 세 가지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사람의 이동과 △상품의 이동 △자본의 이동 면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점이다.현재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반덤핑관세(Anti-dumping Tariff)와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s)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국가 중의 하나다.반면 다른 국가에는 개방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치의 양보가 없는 야누스적인 얼굴을 하는 것이 미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번에도 이라크전쟁과 괴질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속에서도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무려 57.3%의 상계관세를 부과한 것은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최근 들어서는 자본의 이동에 있어서도 통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미 재무부는 외국기업들에 대한 세제 강화를 골자로 한 법인세법을 마련했다. 이 법은 소득공제규정(ESR)을 강화해 미국 내 외국기업들이 본사(모기업)로부터 빌린 차입금에 대한 이자를 순익에서 공제해 주는 한도를 대폭 축소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사람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부시 행정부는 9ㆍ11테러 이후 외국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사진촬영, 지문채취, 신상정보 제공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대상자의 범위를 기존의 4개국에서 35개국으로 확대하는 법을 마련했다. 인권침해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이 법의 시행으로 미국으로 사람의 이동은 줄어들고 있다.문제는 현재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상이 너무 커질 대로 커졌다는 점이다. 미국경제는 1991년 3월 이후 10년간 장기호황으로 현재 세계소득(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5%에 달할 만큼 절대적이다. 세계수입창고로서 세계 각국 경제의 완충역할을 담당해 미국경기 모습에 의해 세계경기의 진폭과 주기가 결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국제투자자금의 절반 이상이 미국에 유입된 상태다. 특히 포트폴리오 자금의 미국에 대한 투자비중은 훨씬 더 높은 상태다. 또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세계 최대 이민유입국으로 개도국 국민들에게 ‘꿈과 이상’(American Dream)을 심어줬던 국가다.이런 미국이 개방의 문을 걸어 잠글 경우 세계경제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일단 미국이 세계 제일의 수입창고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상품거래 통제로 세계무역증가율이 1% 감소될 경우 세계경제 성장률은 0.25%포인트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자본의 통제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심각하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내 자본의 이탈로 미 달러화 가치가 20% 떨어질 경우 세계경제 성장률은 최소 0.5~1%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물론 미국 내 자본의 이탈은 역자산효과(자본이탈 → 주가하락 → 자산소득 감소 → 소비둔화 → 경기침체)로 미국과 세계경기를 침체시키는 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바로 이런 점이 빈곤문제와 함께 글로벌화의 단점이기도 하다.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반세계화 단체들이 최근 들어서는 세계경제에서 미국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운동의 방향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결국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세계 공동 발전과 인류공영을 목표로 창설될 국제기구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동시에 각국간의 공조체제도 강화돼야 이라크전쟁, 괴질로 점철되는 최근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문제 역시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