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염가 판매전략 . 지나친 획일화 . 광우병 파동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
“일선 점포에 직접 나가 최신정보와 시장의 흐름을 캐치해낼 수 없다면 (자리에서) 깨끗이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예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구차하게 회사에 남아 있느니 차라리 일선을 떠나겠습니다.”지난 3월5일 아침, 일본 외식업계의 최강자로 손꼽히는 일본 맥도널드의 6,000여 임직원들은 사내 전자메일을 통해 전달된 한 통의 편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메일을 열어본 직원들은 한결같이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탄식과 함께 수군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회사가 어렵다고 해도 회장이 물러날 것까지는 없는 것 아닌가.” “오너가 손을 떼면 회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직원들의 얼굴에는 충격과 함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역력했다. 그로부터 23일이 지난 3월28일 오후. 갓 찍어낸 잉크냄새를 풍기며 가판대에 꽂인 석간신문들은 ‘카리스마를 떠나보낸 거함’이라는 타이틀로 이날 치러진 일본 맥도널드의 주총 소식을 상세히 전했다.그리고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최근까지 회장직을 맡아온 후지타 덴씨(77)가 맥도널드와의 인연을 정리한 후 경영일선에서 완전 은퇴했다고 보도했다.아무리 대형 외식업체라 해도 햄버거 전문 체인 기업에 불과한 일본 맥도널드와 이 회사 창업자의 이야기를 일본언론이 빅뉴스로 다룬다는 것은 외국인의 시각에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과잉 보도일 수 있었다.회사 덩치와 인지도에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일본 기업들이 적잖은 상황에서 패스트푸드인 햄버거를 만들어 파는 한 기업에 그토록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는 것은 지면 낭비가 아니냐는 비판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그러나 일본 맥도널드와 후지타 덴이라는 인물이 일본 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뉴스 밸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에게 일본언론의 보도 태도는 호들갑이 아니었다. 마땅히 전해야 할 것을 독자들에게 알린 ‘당연한 처사’였다.후지타 덴씨의 은퇴는 일본 외식업계가 배출한 스타 최고경영자의 퇴장을 알리는 동시에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천하무적’을 자랑해 온 일본 맥도널드가 일대 전환점에 섰음을 시사하는 신호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후 일찍부터 자기 사업에 손대 큰돈을 모은 후지타씨가 일본 맥도널드를 세우고, 이를 최강자 기업으로 키운 과정은 일본 외식업계의 현대화 발자취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햄버거를 범국민적 먹거리로 정착시키겠다며 초염가 전략을 밀어붙이기 시작한 지난 94년 이후 일본 맥도널드는 가격파괴의 기수이자 디플레 수렁 속의 유일한 승리자로 일치된 평가를 받아왔다.지난 71년 도쿄 긴자에 첫 점포를 개업한 일본 맥도널드는 96년 2,000점을 돌파한 후 99년 3,000점을 넘기는 등 일본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영업망을 파죽지세로 확장해 왔다.2001년 여름에는 수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증시(자스닥)에 상장했으며 상장 직후부터 시가총액에서 야후재팬과 선두를 다투는 등 최고우량주로 자리잡았다. 회사측은 창립 후 최근까지 팔린 햄버거를 개수로 세면 모두 131억개에 달하며 점포를 찾은 고객은 모두 80억여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31년 동안 벌어들인 누적 경상이익은 약 3,100억엔에 달했으며, 연간매출은 4,000억엔대를 달린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국민들이 1인당 100개의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은 셈이 되며 점포를 찾아와 돈을 치른 고객은 전세계 인구와 맞먹는 실적을 쌓았음을 수치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일본언론과 외식업계 관계자들은 부하 임직원들의 간곡한 호소를 뿌리치고 일선에서 물러난 후지타씨의 은퇴와 관련, 강력한 카리스마와 기발한 장사수완으로 무장한 최고경영자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이와 함께 초염가 전략과 지속적인 내부 경영혁신으로 경쟁업체들을 압도해 온 일본 맥도널드의 경영노선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비상한 두뇌회전과 날카로운 직관력, 그리고 가격파괴 햄버거에 대한 애정으로 회사를 이끌어 온 후지타씨의 은퇴에는 최근 1~2년의 시장 환경 변화가 직격탄이 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일본 맥도널드는 2000년부터 ‘평일 반액’의 할인판매 기법을 구사, 햄버거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염가 먹거리로 정착시킨 데 이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를 59엔으로 더 낮춰 파는 등 철저한 가격압축 전략을 고수해 왔다.지나친 저가판매가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수익을 갉아먹는다는 판단하에 한동안 평일 반액 행사를 중지하기도 했지만 기본노선은 어디까지나 ‘이코노’ 햄버거였다.하지만 소비가 얼어붙고 일본경제가 디플레 수렁 속으로 점점 더 가라앉아도 일본 맥도널드의 초염가 햄버거는 2002년 이후 부쩍 한물간 먹거리로 취급받아 왔다. 가격을 내려도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은 전과 같지 않았다.궁리 끝에 고품질, 고가격을 표방한 신메뉴로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매출은 내리막길을 달렸다. 2002년 3월 결산(2001 회계연도)에서는 손익계산서의 이익 항목이 29년 만에 붉은 글씨로 채워졌다.경영진의 물갈이를 통해 회사분위기를 쇄신한다는 이유로 후지타 사장이 회장으로 올라가고 젊은 임원에게 사장 지휘봉을 맡겼지만 사정은 바뀌지 않았다.미국 본사, 부사장 일본에 파견키로업계 관계자들은 세계를 무대로 최대한 값싸게 식자재를 조달해 원가를 낮추고 동일한 메뉴를 일본 어디서나 같은 가격에 판매하는 맥도널드의 전략이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지나친 획일화가 소비자들의 잠재적 저항을 자극한데다 돈을 더 치르더라도 조금은 다른 메뉴를 먹고 싶다는 욕구가 맥도널드에는 역풍이 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을 휩쓴 광우병 파동이 햄버거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부추긴 데 이어 건강을 위해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려는 소비패턴이 빠른 속도로 퍼진 것도 악재가 됐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관계자들은 시장상황이 예측치 못한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모든 묘책을 물거품으로 만들자 후지타씨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 같다고 추정하고 있다.몸이 쇠약해지면서 2002년 2월 한때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노력과 안간힘에도 불구, 여건이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깨끗이 물러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증시는 후지타씨가 사내 전자메일을 통해 은퇴를 발표한 다음날인 3월6일 맥도널드 주가를 120엔이나 밀어올리면서 투자자들도 그의 결심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최강자의 자리를 오래도록 누려 왔어도 명실상부한 일류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재로 수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인을 주가로 알려 준 셈이다.후지타씨의 은퇴는 일본 맥도널드의 경영방식과 소유권 향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상태다. 합작 파트너인 미국의 맥도널드 본사는 창업자인 후지타씨가 물러날 경우 그가 갖고 있는 주식에서 1주를 넘겨받아 절반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해 놓고 있다.현재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 본사로서는 단 1주만 더 가져도 자신들의 의지대로 일본 맥도널드를 끌고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미국 맥도널드는 부사장을 일본에 파견해 지휘봉을 잡게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언론은 미국 맥도널드가 2002년 4/4분기 결산에서 지난 65년 상장 이후 최초로 적자를 낸 원인이 투자대상인 일본시장의 난조에 따른 것이었다고 지적, 앞으로 미국 본사에 의한 수술과 개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초염가 전략을 발판으로 창업자와 회사 모두가 화려한 명성을 누려 왔지만 이제는 외부 노하우와 두뇌에 재도약의 가부가 좌우되게 됐다는 분석이다. yangsd@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