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교육외 생활 전반 지도하고 고민상담 해줘…회사는 후견인에 매월 5만원 지급

취업난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대졸 취업난, 박사급 수난, 갈 곳 없는 이공계는 물론이고 ‘재취업은 꿈도 못 꾼다’는 얘기가 농담이 아니다. 웬만한 기업체 신입사원 입사경쟁률은 거뜬히 수십대1을 넘어선다. 일견 경쟁률이 높은 만큼 우수인력들이 선발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기업들은 아무리 우수인력이 들어와도 신입사원의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그들이 새로운 기업문화에 적응하고 직무수행 능력을 갖추도록 일정기간 훈련과 지도가 필요하다. 기업의 입장에서 득실을 따진다면 높은 입사경쟁률보다 교육받은 (투자가 집행된) 사원들의 낮은 이직률이 훨씬 득이 될 것이다.최근 몇 년 사이 멘터(Mentor)제를 도입, 시행하는 국내 기업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언제라도 입사희망자들이 줄을 서 있기에 뽑아놓은 신입사원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멘터제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교육받은 신입사원들이 떠나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는 유용한 제도다.보험회사 특성 고려 도입멘터는 그리스신화의 오디세우스가 자식교육을 부탁했던 선지자인 멘트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조언자 후견인을 의미한다. 기업의 멘터제는 선배사원이 후배사원의 업무 습득은 물론이고 업무 외의 개인생활 등 각종 애로사항에 대해 조언을 하며 회사생활에 적응을 돕는 조직관리 기법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포스데이타, 하나은행, LG에드, 한국P&G 등 많은 기업이 다양한 명칭의 멘터제를 실시하고 있다.동부화재(대표 이수광)도 최근 멘터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2002년 7월에 입사한 20여명과 올해 초 들어온 47명의 신입사원에게 각각 후견인이 맺어져 있다. 후견인은 신입사원과 같은 부서의 선배사원으로 최소 2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인사파트의 백승휘 주임은 “보험회사의 특성상 전문적 업무가 많아 같은 부서의 선배사원이 후견인이 되는 방향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후견인이 수행하는 역할은 직무교육을 시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제도 도입의 취지대로 사회인으로, 기업의 일꾼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생활 전반을 지도하고 고민을 상담한다.전체적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부서에 배치받는 신입사원의 환영행사를 기획하고 개인 물품이나 PC를 챙겨주는 일에서 후견인의 역할은 시작된다. 후견인이 사전에 하는 일은 ‘신입사원 연간 양성 계획서’를 제출하는 일이다. 신입사원이 부서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개인적 친밀도를 높여나가면서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회사가 부여하는 연구과제를 함께 수행해 제출하며 매월 신입사원의 활동일지를 평가하는 업무도 후견인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신입사원이 작성한 스스로의 활동사항과 학습내용을 제출받아 평가한 후 이를 부서장 결재 후 인사팀에 제출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후견인은 신입사원이 담당업무를 원만히 수행하는 데 어떤 교육과 학습사항이 필요한지 적절한 지도를 한다. 후견인들의 활동은 피후견인이 입사 1년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끝난다. 이때 평가와 포상의 절차가 있다. 원칙적으로 후견인은 1년 동안 변경 불가이다.이 같은 공식화된 활동 이외에 후견인은 일과가 끝난 후 신입사원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고 부모의 생신을 축하해 주기도 하는 등 다양한 개인사에도 동참하게 된다. 물론 개인사에 대한 관여는 철저히 두 사람간 관계의 성숙도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회사는 매월 5만원의 지원금을 후견인에게 준다.멘터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신입사원이 후견인의 지도를 잘 수용하는 것 이상으로 후견인이 얼마나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중요하다. 동부화재는 이 때문에 업무능력, 인사고과, 리더십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해 부서장의 추천을 받아 멘터링위원회를 거쳐 후견인을 선정한다.후견인은 1년간의 역할 수행으로 사내에서 요구받는 4학점의 이수를 대체하는 혜택만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 혜택 이상으로 스스로의 리더십을 점검하고 사회 초년 시절을 되새겨볼 수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혜택이다.“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무관심 속에 능력을 꽃피워 볼 사이도 없이 도태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깨에 우리 회사의 미래가 있고 여러분의 손에 의해 미래의 CEO가 길러진다는 사명감을 갖고 후배사원 육성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후견인의 성실한 지도를 당부하는 사장의 편지에 멘터제에 대한 동부화재의 기대가 묻어난다.엘테크의 브레인스토밍동부화재의 후견인 제도에는 “고참 과장급들도 후견인으로 지원할 만큼 호응이 높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입사원의 후견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리더십을 키워보기도 하고 스스로의 신입사원 시절을 돌이켜 볼 수 있다. 돌이켜 본다는 행위는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결코 손해가 되지 않는다.최근 ‘일하기 훌륭한 기업’(GWP)으로의 변화관리 프로젝트를 위해 만난 모 기업 간부는 “요즘 입사경쟁률이 100대1을 넘고 있는데…”라며 굳이 훌륭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입사지원자가 넘쳐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그러나 경쟁률이 100대1이라고 해도 그 경쟁이 꼭 해당 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의 경쟁률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대학의 입시경쟁률이 수십대1을 훌쩍 뛰어넘지만 1년 후 어떤 학과는 대부분이 빠져나가 편입학 시장으로 들어간다.훌륭한 기업, 좋은 대학이나 학과라는 인식에 따라 인재가 몰려들어 조성된 경쟁률이 아니다. 취업난 속에서 나타난 경쟁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직률을 낮출 수 있는 제도 시스템, 그리고 기업문화다. 기껏 교육을 시켜놓았는데 떠나간다면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교육투자의 원가도 뽑아내기 어렵다.멘터제는 사회초년병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신입사원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경계도 반드시 필요하다.멘터제는 통상 동부화재의 경우처럼 업무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서의 선배사원이 후견인이 되는 경우와 업무와 무관한 선배가 후견인이 되는 경우로 나뉜다. 어떤 경우이든 후견인과 피후견인의 관계가 양자간 경험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절대적 상하나 지배복종의 관계가 될 우려는 있다.GWP를 향한 신뢰경영의 개념적 측면에서 멘터제는 관심과 배려, 성장을 위한 지원 등을 포함하는 개인존중(Respect)과 밀접하다. 나아가 소속감이나 팀플레이를 통해 일하는 재미와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측면도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