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퇴직자 150여명에 서비스 제공… 갑작스런 퇴직에 따른 불안감 해소

청춘을 다 바친 회사에서 어느날 갑작스레 나가라고 한다면 누군들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한 번 동승했으니 끝까지 함께 가자’는 온정주의적 경영이 먹혀드는 시대도 아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경험하면서 상당수 대기업들은 상시 구조조정의 시스템으로 돌아섰다.한마디로 언제라도 사람을 내보내는 체제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직장인들 사이에도 ‘팽’ 당하기 전에 요령껏 실속을 챙기는 것이 낫다는 의식이 팽배해졌다. 물론 논리적으로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구성원들의 로열티를 끌어내는 일이 어려워졌다.일하기 훌륭한 기업(Great WorkplaceㆍGWP)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 사람을 자르지 않는 회사로 잘못 이해한다. 그러나 ‘일하기 훌륭한 포천 100대 기업’ 중에서도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들이 많다.다만 그것을 실행하는 프로세스를 원만히 함으로써 나가는 사람이 배신감을 갖지 않게, 남아 있는 사람이 동요하지 않게 하는 능력을 보여줄 뿐이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떠나는 사람들이 다른 정착지를 찾아 조속히 안정될 수 있도록 아웃플레이스먼트(퇴직자의 재취업 창업 지원)의 제도를 갖고 있는 정도다.상시 구조조정의 시스템이 보편화되면서 국내에도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를 갖추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대표이사 부회장 윤종용)는 2001년 9월 인사부서 내부기구로 CDC(Career Development Center)라는 것을 설치했다. 바로 삼성전자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의 재취업이나 창업을 지원해주는, 아웃플레이스먼트 기구다.삼성전자 본관 지하 1층에 자리한 CDC에는 현재 3명의 전담인원이 있다. CDC의 지세근 차장은 “현재 데이터베이스를 더욱 확충해 나가고 있다”면서 “연간 150명 정도의 퇴직자가 이곳을 통해 아웃플레이스먼트의 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재취업에 성공하는 확률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삼성전자에 근무했던 사람이면 과거에 퇴사한 경우라도 CDC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정해진 양식에 따라 이력서를 제출하면 이곳에서 확보하고 있는 구인기업으로 연결이 이뤄진다.지차장은 주로 재취업을 알선해주는 업무에 치중하고 있으며 창업의 경우는 전문적인 창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는 정도로, 실제 창업에 성공한 실적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CDC는 애당초 퇴직자에게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주고 다른 한편으로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에는 삼성전자 출신의 고급인재를 공급한다는 두 가지 차원에서 시작됐다.그러나 회사에서는 CDC의 존재를 대내외적으로 홍보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퇴직자를 지원한다는 의도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퇴직을 유도한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으며, 다른 하나는 정작 재취업이 안된 사람이나 원하는 인력을 충원받지 못한 중소기업 등이 받게 될 실망감이 클 것이라는 우려에서다.그렇지만 CDC를 통해 재취업한 사람이 옛 동료들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회사에서 이런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상태다.전담부서를 두고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지원하는 삼성전자의 경우보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전문회사와 계약을 맺고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많다. CJ(옛 제일제당)는 명예퇴직자가 발생하면 이들에게 두 가지의 퇴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하나는 전문업체와 계약에 의한 아웃플레이스먼트의 제공이다. 통상 3개월 정도에 걸쳐 각 개인의 가치관에서 희망직종, 경력목표, 역량분석에서 시작해 재취업이나 창업이 이뤄질 수 있는 제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다른 하나는 베이커리(빵집) 창업의 기회다. 이 회사가 갖고 있는 ‘뚜레쥬르’라는 브랜드의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를 열게 해주는 것. 통상 근속연수 10년이 된 임직원 가운데 퇴직과 동시에 이를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이들에게는 무이자대출과 창업교육이 지원된다. 97년 이후 50여명의 임직원이 퇴직 후 베이커리를 창업했다. 또 한국애질런트테크놀로지의 경우도 정보통신(IT) 불황으로 인원을 감축하면서 전문업체와의 위탁계약에 의해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제공했다.퇴직자들은 대개 전문업체를 통해 재취업이나 창업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을 소개하고 사무공간 등 작업환경, 스스로의 역량 등을 검증할 진단프로그램, 그리고 다양한 재취업과 창업의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아무리 훌륭한 기업이라고 해도 경기 상황에 따라 인원감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사람을 떠나보내는 절차를 통해 사람을 중시한다는 철학을 보여주고 그 사람이 다시 안정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준다면 퇴직자에게 그 기업은 훌륭한 일터로 기억될 것이다.엘테크의 브레인스토밍‘충성을 다 바쳤는데 이럴 수 있냐’는 항변은 반드시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 심리구조를 잘 들여다 보면 인원감축의 프로세스에서 불만의 싹이 트는 경우가 오히려 많을지도 모른다.경기불황 속에서 2001년 미국 애질런트테크놀로지가 보였던 인원감축 과정을 지난해 <포천 designtimesp=23911>지가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다. 일제히 임금이 삭감되고 주변 책상의 주인이 사라져 갔다. 그럼에도 지난해 애질런트는 일하기 훌륭한 포천 100대 기업의 순위에서 31위를 기록했다. 순위는 그 전년도에 비해 15단계나 올라갔다.인원감축을 실시 하기 앞서 수개월 동안 CEO가 경영상황을 소상히 밝히고 어떤 근거로 이런 정도의 임금 및 인원삭감이 불가피한가를 설명하는 거듭된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다.경영진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밝히고 인원감축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지난해 조사에서 이 회사의 종업원들은 CEO의 열린 경영을 높이 칭찬하고 스스로들 존중받고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아웃플레이스먼트는 기업이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보여줄 수 있는 퇴직자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신뢰경영의 모델에 입각한다면 가장 근접한 것은 돌봄(Caring)을 통해 인간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고 이로써 신뢰를 얻게 해주는 제도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같은 서비스를 통해 갑작스러운 퇴직에 따른 불안감이나 당혹감에 완충을 가져올 수 있다.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재취업이나 창업을 위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퇴직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서적 안정을 주는 부분이다.두 가지 모두 유용한 측면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특히 혼자서 극복해내는 것이 쉽지 않으며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는 전자의 정보도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대개 시행되고 있는 아웃플레이스먼트는 전자에 치중하는 것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