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BP컨설팅 조사결과, 192계단 뛴 9위에 올라

특정 기업에 대한 외부의 평가와 시선은 보는 사람의 눈과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소비자 입장과 종업원의 잣대가 같을 수 없듯 관찰자 고유의 기준과 관심, 이해관계에 따라 기업과 그 기업의 인상을 재단한다.하지만 기업을 보는 눈이 엇갈리는 경우는 또 있다. 특별한 관계가 없는 제3자와 평가대상이 된 기업의 내부 사정을 잘아는 동종업계 경쟁업체가 동시에 점수를 매길 때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간단히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기업에 대한 평가는 산업계로부터, 그리고 현장을 뛰는 비즈니스맨들로부터 나올 때가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함께 싸우며 부닥치고,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이들은 특정 기업의 장단점을 일반인들보다 소상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니혼게이자이신문 designtimesp=23869> 계열의 닛케이BP컨설팅이 최근 공개한 ‘2002년 일본기업 브랜드파워 조사’ 결과는 산업계와 일반인들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이 같은 거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일반소비자 2만4,000명과 기업인, 샐러리맨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소니는 토털 파워에서 양 부문 모두 1위를 차지,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최강의 브랜드임을 입증했다.소니는 2001년에도 1위를 휩쓸었으며 전세계적 정보기술(IT)산업의 불황과 사업구조 재편으로 순익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불구, 일본 국민들의 절대적 사랑이 변치 않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그러나 소니를 제외하면 순위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일반소비자 부문에서 토털 파워 2위를 차지한 도쿄디즈니랜드와 3위의 후지텔레비전, 4위의 스타지오 지브리(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실종 designtimesp=23876>을 만든 회사)는 기업인, 샐러리맨들 대상의 조사결과에서 상위 랭킹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혼다, 도요타, 닛산자동차 등 일본 자동차산업을 이끄는 트로이카업체가 차례로 2~4위에 올랐다.가장 눈길을 끈 것은 샐러리맨 연구원인 다나카 고이치씨(43·사진)를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배출, 일약 세계언론의 주목을 받은 시마즈제작소의 대약진이었다.일본의 옛 수도 교토에 본사를 둔 시마즈제작소는 2001년 토털 파워에서 202위로 까마득히 밑으로 처져 있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무려 192계단을 건너뛰며 베스트10에 진입했다. 21위에서 4위로 점프한 닛산자동차와 18위에서 8위로 뛰어오른 캐논도 상당한 업그레이드에 성공했지만 시마즈제작소에 비하면 견줄 바가 못된다.전체적으로 종합해 본다면 기업인, 샐러리맨들을 대상의 브랜드 파워 조사결과는 걸출한 최고경영자(CEO)와 스타급 사원의 존재가 얼마나 회사 이미지를 좌우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단적인 예가 시마즈제작소의 경우다. 시마즈제작소는 도전정신, 고객중시, 최고경영자의 매력, 본받을 점, 근무하고 싶은 의욕, 인재의 산실 등 6가지 항목으로 나눠 실시된 조사에서 ‘인재 부문’ 1위를 차지했다.2위의 소니, 3위의 도요타자동차를 제친 결과이며, 일본산업계에서 박사가 가장 많다는 히타치제작소와 특허의 요람이라는 캐논은 베스트10에서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인간형 로봇 ‘아시모’와 연료전지 자동차를 만들어내 어깨가 으쓱해진 혼다도 인재의 산실 평가에서는 시마즈제작소보다 3계단이 처진 4위에 머물렀다.조사를 실시한 닛케이BP컨설팅은 시마즈제작소가 토털 파워 9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오로지 인재 부문의 1위 효과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른 5개 항목에서는 상위에 근접하지 못했던 교토의 중견기업 시마즈제작소가 기라성 같은 대기업들을 제치고 192계단을 수직상승한 것이야말로 인재의 산실로 비쳐진 덕분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사실 다나카 고이치씨가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2002년 10월 이후 시마즈제작소는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노벨상 효과를 누려 왔다. 다나카씨가 보통 사람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신분이 바뀐 것 못지않게 시마즈제작소는 ‘기술의 보고’ ‘묵묵히 기술과 연구에만 매달리는 첨단 우량기업’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했다.시마즈제작소의 매출규모는 2,000억엔에도 미치지 못한데다 2000~2001회계연도 연속 적자를 냈지만 언론은 다나카씨의 수상 발표 후 ‘기술 벤처의 원조’ ‘하이테크 기업들의 정신적 지주’로 연일 치켜세웠다.도쿄증시에서는 시마즈제작소 주가가 한동안 상한가 행진을 지속했으며 물밀 듯 밀어닥친 취재요청에 직원들이 거의 일손을 놓아야 했다. 지난 3월28일 다나카 기념연구소 오픈에 맞춰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수상발표 후 거의 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 수십명의 일본 보도진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회견장으로 기자를 태우고 간 교토의 택시기사 기무라 마사아키씨는 “노벨상발표 후 시마즈제작소로 가자는 외부 승객이 매일 한두 명씩 꼭 있다”며 “시마즈제작소와 다나카씨는 교토의 자랑이자 긍지”라고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시마즈제작소가 노벨상으로 얻은 이미지 업 레이드 효과에 대해 일부 일본언론은 ‘대당 1억엔을 호가하는 이 회사의 질량분석기가 3대 더 팔렸다(약 3억엔)’고 농담을 던진 적이 있다.그러나 기자와 만난 야지마 히데토시 회장은 “노벨상의 효과를 어떻게 산술적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고 정색한 후 “수조엔의 돈과 수십년의 시간을 쏟아부어도 얻기 힘든 명예를 거머쥐었음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시마즈제작소가 다나카라는 영웅의 인기를 등에 업고 단숨에 스타기업으로 발돋움한 것과 달리 닛산자동차는 카를로스 곤이라는 ‘백전노장’의 최고경영자를 앞세워 대약진에 성공, 주목을 끌었다.닛산은 토털 파워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올렸지만 세부 평가항목에서도 비교적 고른 점수를 받아 기업의 전체 실력과 이미지가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회사는 특히 최고경영자의 매력에서 1위, 본받을 점에서 10위에 랭크돼 카를로스 곤 사장을 중심으로 임직원이 똘똘 뭉쳐 밀어붙인 ‘닛산 리바이벌 플랜’이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있음을 입증했다.곤 사장은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 도요타자동차의 조 후지오 사장과 재계의 정신적 지도자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을 제치고 최고 인기 경영자로 인정받았다.‘살인 청부업자’ ‘잔인한 코스트 커터’(원가삭감 기계)로 혹평을 받았던 지난 99년의 취임초와는 너무도 판이하게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닛산이 적자 수렁에서 벗어나 흑자 궤도를 질주하기 시작한 2001년 상반기만 해도 일본재계와 언론의 그에 대한 대접은 크게 엇갈렸다.사람을 자르고 협력업체를 윽박질러 이익을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며 반강제의 구조조정이 얼마나 효과를 내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이 적지 않았다.하지만 닛산이 부채 제로(0)의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난 지금, 곤 사장이 일본재계와 국민들로부터 누리는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게 사실이다. 소니는 지난 4월 이데이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곤 사장을 사외이사로 모시고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머리를 숙였다.한국속담에 ‘잘 키운 ○, 열 ○ 안 부럽다’는 말이 있지만 2002년 브랜드파워 조사는 기업이 받는 대접도 걸출한 인물, 스타 한 명으로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셈이었다.